비로소 내가 된다
나른한 주말을 보내고 나면 항상 빠르게 가버리는 직장인의 월요일.
주말 내내 쉬면서 충전시켜 둔 만땅 에너지를 들고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눈 앞에 저녁시간이 다가와 있다. 특히 회사의 내년을 계획해야 하는 4분기를 보내다 보면 그 내년이 바로 눈 앞에 다가온 것 같은, 아니, 마치 내가 지금 그 해를 먼저 살고 있는 듯한 이상한 시간 개념이 자리 잡고는 한다. (내가 11월을 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챈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정도.) 그러니 그 격분의 4분기 중심에 있는 나의 월요일은 그 여느 월요일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화장실을 가는 복도에 보이는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낸 저녁이 월요일만큼 어색할 수 없다.
오늘도 역시 더 그러했다. 내년 계획을 위해 이것저것 인터넷 서칭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 점심시간이 지나고 회의 몇 건을 하다 보니 오후 5시. 그리고 부장님이 부탁한 자료를 만들다 보니 퇴근시간. 가을 햇볕이 가득했던 점심시간의 하늘은 어느새 뉘엿뉘엿 저물어 새까맣게 까만 가을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가을밤을 보면서 아, 밤이네. 월요일이니 이쯤 마무리하고 퇴근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또 나는 시간을 기억하는 것을, 시간이 지나간 흔적을 한 땀 한 땀 새기는 행위를 잊은 듯했다. 흘러가는 시간을 무심히 걸어온 듯했다. 다가오는 아침을 무심히 맞이하고 다가오는 저녁을 마치 당연히 오는 것처럼 맞이하고. 집에 돌아와 커튼이 쳐진 나의 방 안에서 사부작사부작 집안일을 하며 다시는 안 올 그 가을밤을 무심결에 보내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늘 가을밤은 달과 함께 걸었다.
이어폰을 꼽고 앞만 보고 걷던 그런 밤들보다는, 빨래 바구니에 켜켜이 쌓여있는 빨래를 해야 하는 근심이 가득한 그런 밤들보다는, 하늘을 보면서 달과 함께 걸었던 오늘의 가을밤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싶어 졌다. 집으로 걷는 길이 조금은 느리게 갔으면 했다. 지나가는 시간들을 지나온 길에 천천히 하나씩 놓아주고 맞이하고 있는 시간을 달과 함께 맞이하고 다가오는 시간들을 달과 함께 걷고 싶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집으로, 하늘에 눈을 떼지 못하고 걸었다.
시간을 지나오는 나를 오늘만큼만 이라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통째로 잊고 싶은 시간들을 끝끝내 잊어버렸다면, 찰나의 한 조각이라도 남기고 싶은 시간들을 쉬이 잊어버리게 되었다면, 잊었던 시간들 속 그때의 나는 그 시간의 통로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오늘 그 가을 달은 나의 시간들을 함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