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는요
1년여간의 기본간호학 수업이 드디어 끝났다.
수업이 끝난 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지막 강의 주제가 ‘임종 간호’였던 만큼,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과 예상치 못한 소식으로 힘들어했던 경험이 스쳐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것은 ‘헛된 희망’이라는 개념이었다.
의료 현장에서 헛된 희망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다. 실현 가능성이 낮거나 불가능한 상황에서 부풀려진 기대를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헛된 희망은 의료 현장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취업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더 많은 학위나 자격증을 따면 성공할 것이다.”
한때 나도 이러한 말을 믿으며 살아왔다. 분명 노력을 통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사회의 현실은 달랐다. 대학생 때 열심히 인턴십을 하며 취업 준비를 했지만, 내가 일했던 기업이 채용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의욕조차 생기지 않았다.
헛된 희망은 채용 시장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얼마 전 엄마가 한 광고 링크를 보내왔다. “이 크림만 쓰면 팔자 주름이 완전히 없어집니다”라는 메시지에 엄마는 꼭 이 크림을 사야겠다고 했다. 며칠 후 크림의 효과를 물었지만, 예상대로 만족스러운 답은 듣지 못했다.
나에게도 그럴듯한 헛된 희망이 있었다. “이 자격증만 따면 취업이 될 것이다.” 물론 자격증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노력한다. 그 이유는 내가 얻은 자격증이 언젠가는 내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작은 기대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도 헛된 희망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든 관계가 득과 실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대는 욕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의 기대를 점점 줄여나갔다.
기대를 줄이면서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헛된 희망으로부터 어떻게 속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했다. 먼저는, 네 상황을 스스로 잘 인지하고 파악하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아, 나도 분명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 대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능력은 현시점에서 어느 정도인지, 무엇이 부족한지 등 말이다. 또한, 나의 노력 외에도 운, 환경 등 언제나 변수가 있고 그러한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었다.
이외에도 네 스스로가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면 그것을 쪼개고 쪼개어 현실 가능한 일일 목표를 만들어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었다. 그러한 일을 통해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구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는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분명 다른 것이 있을 거라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과 더불어 요즘 드는 작은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나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친구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냥 너와 함께 있는 게 좋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다는 말이 나를 따뜻하게 했다.
어릴 때는 부모님, 친구, 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많았고, 사회생활 후에는 상사와 회사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되면 좋고, 안 돼도 좋다.” 법륜스님의 강연 중 “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이 좋은 일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2025년을 앞둔 지금, 나는 새해 계획을 정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한 해.”
더 이상 헛된 희망을 품기보다, 현재의 순간을 차분히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