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의 제국]
“야! 이 toRl야!
네가 그렇게 인상 쓰고 있으면 내가 잘못한 것 같이 보이잖아!
내가 그거 너무 싫고 기분 더럽다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의 자세는 마치 투수가 공을 던진 후 모습 같았다.
그의 손은 디자인팀장의 뺨을 후려친 후 그의 왼손 쪽으로 가있었다.
맞으면서 고개를 돌렸던 디자인팀장은
뺨에 손을 댄 채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넵… 죄송합니다.
제가 대표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저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건데…
진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도대체 내가 몇 번을 그러냐. 너 그러는 게 나를 더 자극한다고.
내가 얼마나 기분 나쁜지를 몇 번이나 말했잖냐.”
도대체 얼마나 잘못했길래,
여자 직원의 뺨을 또 때리나 싶었는데,
그냥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고 그랬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나머지 직원들은
다른 곳을 쳐다보며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기에 끼었다가 불똥이 튀기 싫었는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인지,
우리 모두는 이번에도 방관자가 되었다.
나는 그 순간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으나 나서지 못했다.
위험에 처한 약자를 구하지 못한 나도 결국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방관자였다.
뉴욕의 지하철 역에서 30분가량 그의 푸념을 듣고 나서야
우리는 코리아타운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 첫날이라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힘들었는데,
그의 푸념까지 들으니 기운이 빠져서 배가 엄청 고팠다.
무쇠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뉴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점이 모여있는 도시 중 하나다.
2024년 기준으로 뉴욕에는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이 68곳이 있다.
우리가 9박 10일 동안 여행 중 매일 점심 저녁을 다 방문해도 남을만한 숫자다.
매일 저녁에 방문해도 겨우 9곳밖에 방문하지 못한다.
저 멀리 뉴욕에 가서 하루하루 경험하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첫날부터 코리아타운에 갔다.
가게 이름은 그리운 miss KOREA였다.
어제 한국에서 뉴욕으로 왔는데, 첫 방문한 저녁 식당이 그리운 한국이라니…
나는 아직 한국이 그립지 않았는데 말이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이런 식당이 어떤지 제안을 한번 해볼 수는 있지만,
그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왜 이렇게 오리지널 한국 입맛이냐고!!!’
라며 속으로 외쳤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미스코리아의 후기에는 대부분 신선한 재료와 품질로 승부하는 고깃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는 돼지고기, 소고기를 못 먹었기 때문이다.
양고기를 제외한 다른 고기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고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냥 김밥천국에 가서 메뉴를 시키는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나는 닭볶음탕을 먹었다.
이 먼 곳에 와서 닭볶음탕이라니…
놀라운 것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한국식당을 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식당이었다.
다음날에는 BCD, 북창동 순두부집.
그다음 날은 더 큰집이었다.
순간 이태원에 온듯했다.
그래도 내가 언제 뉴욕에 와보겠냐는 위안으로 즐기기로 했다.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빌딩, 록펠러센터, 더 하이 라인, 첼시 마켓,
센트럴파크, 타임스퀘어, 뉴욕 현대 미술관, 브라이언트 공원 등등.
영화 속에서 봤던 곳들, 사진으로만 봤던 곳들을 내 눈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9박 10일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iOS 개발자와 그가 한참을 대화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개발팀장, 무슨 일이야?”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