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소호, 빅토리아 피크, 피크트램 편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 햇수로 3년째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연봉협상을 했는데, 늘 그렇듯 회사 사정이 어쩌고 저쩌고... 겨우 3년차 대리가 출산휴가로 100일이나 자리를 비운 팀장 자리까지 채워가며 열심히 일했기에 회사라는 집단이 어떤 곳인지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심 기대했나 보다. "이게 최선이신가요?" 대표님과 독대 자리에서 눈물을 쏟고 "휴가지에서 충분한 고민 후에 돌아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라고 뱉어내고 회사 동료와 늦게까지 맥주를 마시고,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와 또 새벽까지 맥주를 마시고. 그리고 나서 짐을 싸고 잠은 거의 한숨도 못자고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휴가를 쓸 수 없는 회사는 아니지만 몇일씩 연달아 휴가를 내는 일이 어렵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3일짜리 휴가를 내서 해외 여행을 떠나는 거다. 그런데 이런 기분으로 떠나야 하다니, 거지 같다.
그래도 공항에 도착해서 짐도 붙이고 홀가분하게 식사도 하고 면세품도 찾고,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충분한 고민은 개뿔, 벌써 다 까먹었다.
홍콩 공항에 도착해 AEL티켓과 빅토리아 피크 트램 티켓을 샀다. 한국 블로거들은 대단하다. 블로거들이 알려준대로만 찾아가면 전부다 살 수 있다. 홍콩에 가면 1일 1잔 해줘야한다는 허유산 망고주스 A1 까지. 홍콩 여행 중 생각보다 허유산이 눈에 많이 띄지 않아 딱 두 번 마셨던 것 같은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사 마셨던 허유산의 맛을 잊을 수 없다. 홍콩에 또 가게 된다면 그 때도 제일 먼저 허유산 A1 노젤리를 사서 마셔야지.
AEL을 타고 홍콩역으로 간다. 아직은 홍콩에 온게 실감나지 않았다. 홍콩역에 내려 우리가 묵을 호텔 앞까지 태워다 준다는 셔틀버스를 찾아 탔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순조롭다. 역시 블로거의 힘은 대단하다.
1. 미드레벨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
호텔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소호 거리로 나섰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글쎄, 관광책자에 소개될 정도로 대단한 것은 없었다. 현지인들이 출퇴근을 위해 사용하는 에스컬레이터. 그냥 우리 동네에 찻길 건너라고 있는 육교와 같은 것. 굳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보기 위해 소호에 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뜯어 말리겠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당시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의 도시가 도대체 얼마나 더 발전을 하려는 건지, 사방이 공사중이었다. 한국보다 날씨도 상당히 더웠고 살짝 짜증이 나려던 찰나, 타이청 베이커리를 발견했다.
2. 빅토리아 피크 스카이 테라스
행복 총량의 법칙과 길 헤매기 총량의 법칙
행복 총량의 법칙처럼, 길 헤매기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인천에서부터 소호까지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모든게 순조로웠던 우리는 본격적으로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소호에서 빅토리아 피크까지 구글맵을 켜고 걸어서 찾아 가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왜 택시 탈 생각을 못 했을까 싶기도 한데, 어쨌든 친구 덕분에 지도를 보고 걸어서 찾아갈 수 있었다. 초행길을, 그것도 오늘 처음 발을 딛은 타국에서 지도를 보고 20여 분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다니!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해 준 친구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걸어가는 중에 당장이라도 야생동물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공원도 보고, 주먹 크기 만한 달팽이가 있어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기도 했다. 덕분에 얻은 추억들, 즐거웠다.
홍콩 여행 첫째 날,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뿌듯했고 만족스러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과일과 우유를 샀다.
결제를 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시기에 계산줄인가 했더니, 이 마트에서는 영수증을 모아오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나보다. 아무리봐도 우리가 관광객 같으니 영수증을 달라고 기다리신 모양.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고, 세상 살아가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내일은 <잊혀지기 전에, 홍콩 여행기 2일차>로!
내일 만나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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