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저녁 - 용눈이 오름, 웅스키친 편
오름을 오른 뒤에야 처음으로 제주를 여행한 기분이다.
제주에 참 여러번 다녀갔는데 오름은 처음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은 제주에 올 때마다 유명한 관광지들이 참 궁금했다. 일을 하기 위한 출장이 아니라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됐을 때, 제일 먼저 갔던 곳은 협재 해수욕장, 그리고 그 다음은 말도 안되게 도깨비 도로와 러브랜드였을 정도. 이제 제주의 왠만한 관광지는 다 가봤기 때문에 더이상 기대가 없는건지, 아니면 이제야 제주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건지 오름을 오른 뒤에야 처음으로 제주를 여행한 기분이다.
1. 용눈이 오름
우도에서 배를 타고 나와 곧바로 용눈이 오름으로 향했다. 오름 좀 올라봤다 하는 사람들에게 용눈이 오름은 이미 한물 갔다(?)는 제주도 지인의 조언이 있었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 하고 싶은대로 하고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용눈이 오름 주차장에 도착하니 본인도 오랜만에 올라보고 싶다며 좀 전의 그 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셋이 오름을 올랐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걷기 좋았다.
성큼성큼 앞서 올라간 지인 덕분에 우리도 속도를 내서 순식간에 꼭대기까지 올랐다. 아- 좋다. 그리 높은 위치도 아닌데 하늘과 맞닿아 있는 기분이다.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사방으로 아무리 멀리 봐도 건물이 안보인다. 정말 완벽한 자연이다. 내려가고 싶지 않다. 한동안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U는 '그만 내려갈까?' 물으면 자꾸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했다. 그렇게 답해줘서 나도 좋았다.
고요하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용눈이 오름에서 내려와서 지인이 안내한 제주 향토 음식점에 갔다. 주인 할머니께서 직접 키우셨다는 고사리로 만든 비빔밥과 묵밥을 시켰는데 둘 다 정말 꿀맛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문을 닫으려는 식당에 사정사정해서 들어간 터라, 식당 사진도 음식 사진도 남길 여유가 없었다. 용눈이 오름은 꽤나 외진 곳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조금 더 외진 곳에 있는 식당을 찾아 갔으니, 이 동네는 이 시간에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다는 할머니 말씀이 이해가 된다.
저녁을 먹고 게스트하우스 입실 시간이 끝나감을 깨닫는다. 부리나케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데 아무래도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다. 늦은 밤이었지만 오늘 아메리카노를 한 잔도 마시지 못했으니 커피를 좋아하는 U와 나는 카페가 보이는대로 차를 세우기로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에 반짝이는 건물이 있어 차를 세웠다. 또 문 닫을 시간이 다 됐단다. 간신히 테이크아웃 커피 두 잔을 샀다. 그런데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웅스키친이었다. 웅스키친은 커피가 참 맛있다. 음식도 맛 보았다면 '커피도'라고 했겠지만.. 아쉽다.
오늘과 내일은 슬로우트립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아늑하고 조용하다.
우도에 갔다가 용눈이 오름까지 올랐으니 정말 긴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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