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 월정리 해변에서 와인마시기
서울에 살면서 63빌딩을 못가본 사람에게 서울 촌놈이라 한다. 제주에 살진 않지만 성산일출봉을 못가봤으면 제주 촌놈인가? 제주 여행을 여러번 했음에도 못가봤으니 제주여행 촌놈 쯤으로 해두자. 촌놈 극복을 위해 성산일출봉에 오른다. 날마다 봉우리에 오르고 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참 좋다.
1. 성산일출봉
어제의 그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에 의하면, 국제적인 휴양지로 등록되려면 연평균 일조량이 300일 이상 되어야 하는데 제주는 흐린 날이 너무 많아 휴양지로 등록이 어렵다고 한다. 이 날도 역시나 비가 오진 않았지만 상당히 흐린 날이었다. 하지만 어찌나 긍정 에너지가 폭발 중인지 햇살이 뜨거운 것 보다는 살짝 흐린 날이 더 좋았다.
일출봉을 오를 때 입구에서부터 같이 출발한 사람들과 은근한 경쟁을 하게 된다. 특히나 나보다 연세가 있는 분들이 앞서 나갈 때면 허벅지에 불이나게 쫓아 올라갔다. 주위 풍경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올라갈 법도 한데 다들 정상만 보며 기를쓰고 올라간다. 종아리에 알이 생기도록 용을 쓴 덕분인지 일출봉 정상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날이 흐려 아쉽게도 멀리까지 내다 볼 수는 없었다.
2. 칠돈가
달랑 감귤주스 한 잔을 마시고 등산(?)을 했으니 몹시 배가 고프다. 오늘은 무조건 흑돼지 구이를 먹기로 하고, 네비에 제일 가까운 칠돈가를 찍었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애매한 시간, 늘 대기줄이 늘어서 있는 곳이지만 다행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뭐든 잘 풀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대기줄이 길었더라도 좀 기다리고 먹지 뭐~ 어차피 시간은 많고 할 일도 없는데! 했을 우리.
무계획으로 여행을 온 우리는 보통 자기 전에 내일 아침에 뭐 할까?를 고민했고, 점심을 먹으며 오후에 뭐 할까?를 의논했다. 그리고 마음이 내키는대로 다녔다. 고기를 먹으며 오후에 뭐 할까?를 고민하던 중 고기를 구워주시던 분이 뭐 어디 갈거 있냐며 월정리 해변에 가서 술이나 마시란다. 콜! 완전 땡긴다!!
3. 쇠소깍
바로 해변에서 술을 마시기에는 너무 대낮이라 근처 쇠소깍에 들렀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월정리 해변에서 마시는 와인에 있다. 시간이 맞으면 쇠소깍을 운행하는 나무 뗏목을 타고 싶었는데 휴가철인지라 한참 뒤의 뗏목만 자리가 있었다. 투명 카약도 자전거 보트도 모두 예약이 꽉 찼다. 아쉬웠다.
U와 여행을 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따로 또 같이'가 정말 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처음 여행을 계획하며 3일은 함께 하루는 각자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막상 다니다보니 렌트한 차가 1대 뿐이고, 취향이 비슷하다보니 가고 싶은 곳이 같은데 굳이 흩어질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여행지 곳곳에서 우리는 함께이면서 동시에 혼자였다. 쇠소깍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기로하고 각자 이어폰을 꽂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들었다. 그 시간만큼은 하늘 아래 바다 앞에 나 혼자였다.
4. 월정리 해변
월정리 해변에서의 시간은 우리 여행의 정점이었다. 바다 앞에 앉아 각자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스무 번쯤 반복했다.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가 있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함께 있고, 만족스러운 와인 한 병과 음악이 있다. 근 몇 년간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이었다.
날이 저물며 월정리 바다는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빨간 얼굴의 두 여자는 남의 가게 앞에 주차를 해두고 택시를 타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다. 씻고 누워서도 설레는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나날이 더 행복했던, 제주여행기 3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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