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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Nov 30. 2023

텔레비전을 큰방으로 옮겼다


집이 좁을수록 가구 배치가 관건이다. 올 초 이사를 오고 난 후 아이들에게 방다운 방을 꾸며주게 되어 뿌듯했었다. 딸들 방은 해결되었지만 나의 공간은 공동거실이 되었다. 책은 5학년둘째보다 내가 더 많이 보는 것 같은데 너무 흔쾌히 방을 내어준 것 같아 지금에서야 조금씩 후회가 밀려온다.



둘째 방이 언니방보다 넓기 원래 있던 이인용크기의 책상을 둘째 방으로 넣기로 했다. 음 조건은 나와 같이 쓰기로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책상이 크다하여 공부그릇까지 넓어지는 그런 일은 없다. 그렇다고 공 매일 할 분량을 꾸준히 해주길 바랐건만 그런 것도 아니다. 딱히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아  꾸며준 보람도 없고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았다. 책상이 넓은 만큼 어지르더라. 잡다한 물건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둘째 방에 들어갈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 대책이 필다.






소파를 넣자던 남편의 의는 가볍게 제쳐두고 아직도 먹을 걸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드디어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을 큰방으로 옮겼다. 소파사건(?) 뒤 한번 더 남편에게 어필하였더니 다음날 큰방으로 옮길 수 있도록 기사님이 오셨다.



방을 만들어  것도 내 뜻이었고 큰방으로 텔레비전을 옮긴 것도 다 내가 원하던 그림이었다. 물론 다 나만을 위한 일은 아니다. 딸아이는 자기 방을 너무나 좋아했다. 텔레비전을 큰방으로 옮긴 후 남편은 실내자전거를 타며 여유 있게 티브이를 시청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흡족했다. 거실도 조용했다. 이렇게만 유지된다면 정말 고객만족도 최상의 후기가 나올 뻔했으나 점점 생각지도 않은 변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잠들기 전까지 보질 않나 TV시청을 위해 큰방에서 저녁상을 차리는 수고로움까지 생겼다. 다시 거실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텔레비전만 큰방으로 옮기면 모든 게  원하는 대로 될 줄 알았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실에서 글을 끄적이고 있던 어느 날 내 앞에서 짱짱하게 볼륨 높여 유튜브를 보는 남편. 이럴 거면 옮긴 의미가 없지 않은가. 큰방으로 옮길 것은 텔레비전만이 아니었다. 남편의 몸과 영혼까지 함께 옮겼어야 했다. 텔레비전은 방으로 들어갔지만 남편은 무슨 수로 옮기나. 그러고 보니 남편은 늘 텔레비전을 보면서 휴대폰도 함께 보는 멀티인(?) 사람이었다. 글을 쓸 때만큼은 모든 소리가 거슬린다. 그렇다고 또 대놓고 들어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슨 대작을 만드는 것도 아니면서 있는 없는 내색은 하기 싫었다.



이번주 회사 관련 자격증시험이 있다는 남편은 거실테이블에서 노트와 펜을 들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한번 보고 중얼거리며 천장을 올려다본다. 남편이 글씨가 있는 이를 보는  오랜만인 거 같다. 거실이 공부방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 이번주면 끝이겠지만 꽤나 열공을 하는 남편을 보니 나도 함께 글에 집중하게 된다. 아예 없을 때보다는 신경이 쓰이긴 한다.







아직도 내 자리인 듯 아닌 듯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가며 거실로 와 눈도장을 찍는다. 집에 아무도 없을 시 거실만큼 평화로운 곳이 없다. 이곳을 나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저나 글쓰기 줌수업과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해 본 독서모임을 병행할수록 구석진 자리가 또 눈에 밟힌다. 텔레비전이 있는 큰방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거실은 모두가 왔다 갔다 집중이 안된다. 남은 건 둘째 방. 이제 그 넓은 책상자리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때다. 둘째에겐 네가 정리를 잘 못하여 자리를 반납하는 대신 엄마와 책상을 함께 쓰면 깨끗할 것이라며 설득했다.

 


오늘도 부캐(작가)를 본캐로 바꾸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며 거실둘째 방을 기웃거린다. 이젠 나의 자리가 없다며 투덜대는 시간조차도 아깝게 느껴진다. 행복한 고민은 잠깐, 일단 어디든 눌러앉자. 그곳이 나의 자 래를 결정짓는 유일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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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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