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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Sep 07. 2022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바뀌는 것들

우리 집 주말은 일주일 중에서 가장 북적이는 날이다. 집 입장에선 조용하던 주중에 비해 급격하게 시끄러워지는 날이고, 바람 잘 날 없는 날이고, 그리고 하루 종일 소리가 왕왕 나는 날이기도 하다. 뭐 대부분 집도 그러할 수 있겠으나, 우리 집의 가족 구성원이 살짝 특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남편,


우리는 주말부부다. 남편이 사업을 하는 관계로 뉴욕에서 일하다 주말에 이곳으로 온다. 우리  댕댕이들의 격한 환영을 받기 위해서라도 근무처를 옮기지 못할 정도로 녀석들의 환영의식은 집안 온도를 바꾸어 버리기에 충분하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거의 바뀌지 않은 패턴 같은 것인데 항상 귀에 핸드폰을 대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들어온다. 그만큼 회사 일이 많다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전화를 붙잡고 다니는 것은 연예 때부터 버릇이  것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전화를 많이 해서인지 나이에 비해 귀가 잘 안 들려서 유난히 큰소리로 통화를 하며 들어오는데 우리는 이미 남편의 요란한 대화 소리 이전에 알고 있다. 강아지 두 마리의 격한 환영 울부짖음에 '아, 차가 드라이브로 진입하고 있구나', '아, 차가 도착했구나!', '음, 이제 차고 문이 열리겠군', '그렇지, 잠깐 서서 통화를 이어가고 있군', '어? 왜 아직 안 들어오지?' 하며 내가 현관문을 열라치면 일단 남편은 한 손엔 핸드폰을 귀에 대고 한 손으로 손을 번쩍 들어 손 인사를 한다.


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이미 안경 낀 눈은 나무 바닥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물론 두 마리의 강아지와 가끔 큰 딸이 기르는 고양이의 방문으로 바닥부터 소파에 이르기까지 손만 가져다 대면 털이 산재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내 눈으로는 절대 가늠할 수 없는 그렇게 작고 보드라운 털이 왜 남편의 눈에만 포착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돋보기를 껴야 하는 나이니 할 수 없지만, 남편 또한 이미 눈이 나쁜 데다가 노안까지 와서 그리 좋은 눈은 아닐 터인데 왜 그리도 강아지 털에서부터 온갖 자잘한 생활 먼지가 그리도 잘 보이는지 나로선 이해되지 않는다.


아직 귀에서 핸드폰을 떼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훑고 있다.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남편이 오기 전에 청소기를 돌려보고 소파의 먼지를 털어보고 나름 주부로서의 일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발버둥을 쳐보지 않는 건 아니다. 나름 변명을 하자면, 요즘엔 다이슨이라는 청소기가 나와서 세계적으로 비슷한 무게의 청소기를 주부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내가 미국에 온 20여 년 전에는 미국 집에 카펫이 많아서인지 한국처럼 간편한 청소기가 아니었다. 생김부터 크고 튼튼하게 무거워 보이고 돌돌 돌아가는 배터리부터 달랐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무거운 돌덩이를 낑낑거리며 위아래 카펫을 문지르는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청소 담당이 되어 버린 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암튼 나의 청소 실력은 그때부터 사라지고 나보다는 힘센 남편이 청소에 대한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더구나 카펫은 먼지가 잘 보이지 않아 한국처럼 매일 청소기를 돌리지 않아도 별 티가 나지 않은 장단점 또한 주중의 청소에 대한 게으름을 부추기는데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처음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긴 있었더랬다. 나도 일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이긴 하지만 남편도 열심히 일하다 주말이면 가족을 보겠다며 그 먼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왔는데 오자마자 또 청소를 하는 남편이 불쌍하긴 했다. 그래서 소파에 앉아있다가 청소기가 내 발밑을 지나갈 때쯤엔 다리를 들면서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뻔뻔함이 일상이 되어 발을 들면서 '여기 아래도 먼지 있어'라며 잔소리를 더 한다. 얼마나 얄미울까나!!!


그때부터 시작이다. 우리 집의 반란은. 남편의 대화 소리, 강아지들의 격한 환영 세라모니, 아들과 하이 파이브 그리고 며칠간의 공백에 있었던 잡다한 수다... 드디어 집에 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이번엔 아들,   

            

그런 아빠가 힘들어 보이는지 오시기 전, 이젠 힘센 아들이 청소기를 돌린다며 야단법석이 난다. 강아지들도 이리저리 무서운 굉음의 기계를 피하느라 컹컹 소리가 나고 난 또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나만 그러나? 남편이 할 때는 괜찮은데 아들이 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ㅎㅎ) 조금 쉬고 싶은 마음도 달아나고 화장실 청소라도 한다며 장갑을 낀다.               


아들 또한 아빠를 닮아 가는지, 딸들한테는 없었던 깔끔 병이 생기는 건지, 잠자기 전에 방이며 침대보며 청소기로 말끔히 먼지를 걷어내야 비로소 잠자리를 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먼지가 아들의 밝은 눈에는 너무도 선명히 보이나 보다.   

             

내 침대 시트까지 꼼꼼히 치워주는 아들^^


아들은 한국으로 치면 고2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집에서 청소나 하고 있다면 말도  된다며 큰일  일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나마 딸들을 키울 때는  또한 한국에서  새내기 엄마였기에 미국 시스템을 몰라서 공부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물어다 주어야 안심이 되었었다. 좋은 일로 작용이 되었는지 아니면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은  아닌지 몰라도 그때는 젊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한 교육이었다고 자화자찬(?) 해본다.               


하지만 이미 둘을 대학을 보내보고 이제는 대학원과 사회생활을 하는 딸들을 보니 고등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에만 매달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대학을 가려는 아이라면 공부는 학교 성적만 적당히 유지하고(학교 등수가 나오지 않는다) 대입시험 때 한두 달 바짝 공부해서 점수만 올려놓으면 된다. 공부 이외에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여러 각도로 집중해서 찾고 부모는 그 일에 적극적으로 서포트 해 주는 게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걸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들은 아마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공부를 안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3시에 집에 오면 강아지랑 산책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학교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아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그림을 미술학원가서 일주일에 두 번 4시간 동안 그린다. 대입시험 SAT는 저번 주에 처음으로 봤는데 한 번만 기회가 있는 게 아니니 두어 번 봐서 좋은 점수로 대학에 보내면 그뿐이다. 미국에서 학교 다니는 모든 아이는 천국행 열쇠를 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적인 면만 보면 미국의 앞날은 밝다.


그리고 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른 주로 가면서 자연히 독립하게 되었다. 물론 같은 주에 있는 대학을 간다 해도 의무적으로 1년 정도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기에 반강제로 독립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 딸은 차로 4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대학이라 자연히 대학 기숙사로 들어갔고 1년 뒤에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번 해에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직장을 잡아  다른 독립의 근거지가 되었다. 한국이라면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할  있는 거리고 여자이기 때문에 굳이 나가서  이유가 없고 특히나  살림하면서까지 직장을 다니는  시간과  낭비라는 생각을 분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다르다. 물론 모든 가정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18세가 되면 대학을 가든 직장을 잡든 독립을 하게 된다. 다시 부모 집으로 들어간다 해도 서로 렌트비를 주고받는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 같은 값이라면 간섭받는 부모 집보다는 남의 집이 낫겠지??ㅎㅎ 


이렇게 독립된 딸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시끌벅적거리는 주말엔 합체가 된다. 금요일, 직장 일이 일찍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온다. 명분은 자기 강아지가 보고 싶다는 이유가 크겠지만, 집밥이 그리운 생각이 더 많으리라 짐작해본다. 집밥이 그리운 아이가 난 또 그리 고맙다. 막내가 아들이라 그런지 딸처럼 엄마와 재잘거리는 맛이 없고 나 또한, 아이와 살살 이야기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타인의 등장으로 강아지들의 소란스러운 장면이 아니면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그런 주중의 삶에서 180도 바뀌는 주말의 시끄러움이 얼마나 행복한 소란스러움인지 지금도, 나중에도 잊지 못할 명장면일 것이다. 뉴욕에 있는 우리 든든한 큰딸이 오는 추수감사절이 벌써 기다려진다.



누구나 그런다. 인생 뭐 있냐고, 사는 게 고만고만하다고,

살다 보면 다 똑같아지는 게 사람 인생이라고...


맞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계 어디서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 싶다. 어디에 살던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개척하며 사는 것이고 그 인생에 누구와 함께 걸어가느냐가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스스로 청소의 달인이라 말하지만, 한국에서 10년을 사는 동안 청소와는 거리가 멀었던 남편이었다. 부부가 싸우고 밖으로 나가보지만 1시간 이상 머무를 곳이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다 보니 행복한 삶의 길은 무거운 청소기를 스스로 들어야만 한다는 걸 터득한 것이지 싶다.


미국 땅에 떨어진 아이들은 얼굴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채로 성장기를 거치면서 느껴야 했던 다름의 인식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가족의 힘으로만 견디어 내야 했다.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국에 살면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생활의 한 조각의 퍼즐이 내 노년의 삶까지 투영된다면 난 그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대견하다' 말해주고 싶다. 이민은 부모의 결정이었으므로 즐거운 일, 슬픈 일, 속상하고 기분 좋지 않은 모든 일을 감내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이민 1세대의 아픔은 타국 생활의 힘듦도 있지만, 책임에 따른 인내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이민 2세대의 아픔은 다르다.


2세들은 언어가 미숙할 수밖에 없는 1세대 부모를 대신해 자신보다 어른다운 모습으로 사회에 대항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그러면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알게 되고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 빠른 성장을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립심이 강하고 뭐든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에 따른 책임도 따른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된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겪는 아픔이 한국의 일반 가정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것들을 알기에 밖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서로가 보듬고 행복을 찾아가려는 도약을 위한 조용하지만, 힘이 되는 안식처가 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맛난 집밥으로 대신해 주어야 한다. 갈수록 치솟는 물가가 주부들의 주머니 열기를 주춤하게 만들지만, 아직도 우리 집에선 20년째 '일요일 아침엔 빨간 떡볶이' 유지되고 있고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맛나게 끓여줄  있음에 감사해서 주말의 북적임이 너무도 행복하다.



아이들의 소란함이 끝난 고요한 밤에 뒷마당 넘어 깊은 숲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숲과 잔디 경계 언저리에 매일같이 풀을 뜯으러 오는 사슴 가족의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가끔 수박 껍질을 통째로 던져놓기도 하고 조금 상한 과일을 주기도 하면서 사슴을 애완동물로 기르면 어떨까? 라며 웃음 짓기도 한다. 그런 기품 있는 엄마 사슴이 조용히 아기 사슴을 보는 고갯짓도, 사고를 당했는지 뒷다리를 절룩이며 무리를 이끌고 앞장서서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아빠의 당당한 뒤태도, 그저 엄마 아빠의 근거리에서 열심히 땅에 코를 박고 풀을 뜯는 어린 꽃사슴들, 그렇게 예쁜 눈망울 가족 모두가 어딘지 모를 그들만의 보금자리로 모습을 감추었다.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도 짝을 찾아 떽떽 울어대는 새들도, 심지어 가을이 어서 오기만을 초저녁부터 외쳐대는 귀뚜라미의 칼칼한 울음소리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숲속 동물 모두 그들만의 보금자리로 들어가 버리고 인간의 눈에는 그저 컴컴한 암흑의 세계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루 종일 힘들었던 세상의 모든 동물은 가정이라는 그 어떤 자리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으리라. 고요한 숲 언저리에 지친 나의 몸도 살짝 얹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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