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할 땐 정장. 수리공일 땐 후줄근한 운동복

'퍼스널 브랜딩' 그게 뭔가요?

by 다몽 박작까


N잡러에도 '결'이 있다. 나는 결이 좀 다른 N잡러다. 한 직업은 찜질방 여탕에서 "아. 저기 또 고장 났네."하며 맨발로 수도꼭지랑 샤워기를 뜯어고치는 일이고. 다른 직업은 간호학원에서 "여러분. 이건 시험에 자주 나오는 부분입니다." 하며 깔끔한 단정복 차림으로 마이크를 잡는다.


일명,

찜질방 여탕 수리공 vs 간호학원 강사.


극과 극이 만나면 뭐가 될까? 전혀 예측 불가한 나의 삶이 된다.


사실 강사를 하기 전. 나는 늘 운동복이었다. 게다가 화려하지도 않았다. 검정 반팔. 검정 긴바지. 검정 바람막이. 왜? 탕 안은 무채색이어야 하니까. (시선 분산 안 되게) 옷이 화려하면 튀고. 예쁜 옷을 입으면 '저 사람 뭐지?'가 된다. 찜질방에서 일한다는 건. 늘 물에 젖을 수 있다는 공포와 함께 사는 것이다. 수도꼭지라도 고치는 날이면 맨발로 들어가야 하니 슬리퍼도 무용지물이다. 고치는 와중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니 검은 반팔과 검은 긴바지는 그야말로 정답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건 옷이 아니라 방어구에 가까웠다. 오물, 땀, 물줄기. 온갖 얼룩으로부터 내 자존심을 지켜주는 전투복.






문제는 강사 일이 시작되면서 벌어졌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하러 갔던 첫날. 나는 편하고 단정한 게 좋다고 생각해서 남방에 니트 조끼. 검은 바지. 운동화를 입었다. (아. 지금 생각해도 뭔가 아니다.) 학원에 도착하자 학생들이 출석카드를 찍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옆에 섰다. 그런데 실장님이 내게도 말했다.


"학생분. 출석카드 찍으세요."

"...실장님 저 강사인데요."


처음엔 어려 보여서 그러나 했는데 아닌 것 같다. 그날의 나는 강사의 포스가 전혀 없었다. 복장이 곧 정체성인데. 나는 그날 복장도 표정도 말투도 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 강의 때 나는 과감히 예복을 꺼냈다. 결혼식 전 백화점에서 '이건 정말 오래 입을 수 있어요.'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산 그 옷. 그 예복을 꺼내 입었다. 내 안의 '찜질방 여탕 수리공'은 웅성거렸다.


"이 옷 입고 고치긴 어렵겠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옷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말이 다르게 나온다. 톤이 달라지고 내가 하는 말이 나도 신뢰가 생기고. 학생들 눈빛도 이상하게 달라지는 것 같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옷이 목소리의 볼륨을 조절할 줄이야.


강사를 하며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게 있다. '내가 보는 나' 말고 '남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찜질방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은 조용한 고치는 사람'이다. 강단에 서면 '말 잘하고 믿음 가는 전문성 있는 강사'가 되고 싶다. 그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 그게 퍼스널 프랜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냥 나답게 살겠다는 말은 멋있지만 사실은 '나답게 보이게 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브랜드는 브랜드를 만든 당신이 말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브랜드는 브랜드를 선택한 사람들이 말하는 그 무엇이다.'


-마티 뉴 마이어 저서. <브랜드 갭> 중-


내가 아무리 "저 찜질방 수리도 잘하고 강의도 진심으로 합니다." 라고 외쳐봐야 사람들이 보기엔 검은색 옷을 입고 다니는 그 모습이 '브랜드'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내가 보이길 원하는 나를 만들어보려 한다. 비록 그 시작이 예복을 꺼내 입는 일이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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