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완벽한 강사는 없다
간호학원 강사가 되었다. 찜질방 여탕 수리공 박반장이라는 나의 주업에 아주 기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이 이질적인 단어가 어느 날 툭. 인생에 끼어들었다. 막상 '강사'라는 이름을 붙여보니 이왕 하는 거 잘. 해보고 싶다.
강의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도 전부터 나는 내가 되고 싶은 강사의 모습을 머릿속에 한가득 그렸다.
1. 지식이 머릿속에 다 저장돼서 칠판만 봐도 말이 술술 나오는 강사
2. 미소를 잃지 않으며 싱그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강사
3. 중간중간 동기부여도 해주는 따뜻한 멘토 강사
4. 지난 시간 복습으로 흐름을 이어주는 기억까지 챙겨주는 강사
5. 시험 포인트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실속 있는 강사
6.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인간미 넘치는 강사
현실은?
"와... 이게 되나?"
말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늘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그들의 입에 집중하느라 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말이라는 게 그냥 나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PPT없이도 술술 말하는 그 사람들을 존경했다. 청중을 바라보며 말하는 그들의 여유로움에 넋을 놓았다. 반면 나는? 말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싶고. 질문 하나에 당황해서 뺨까지 빨개지고. 단어가 기억 안 나서 손으로 허공을 계속 휘젓고 있었다. (마치 거기 단어가 둥둥 떠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의 준비는 매번 쉽지 않다. 한 시간 강의에 몇 시간이나 쏟아붓는다. 내가 알아도 이해하기 쉽게 '잘' 말하는 게 중요하다는 당연한 진리. 이제야 철저히 깨닫는 중이다. 그런데도 강의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입꼬리가 자꾸 올라간다. 그걸 본 아들이 묻는다.
"엄마. 강의하면 돈도 버는 거야?"
"벌지~ 많진 않은데. 그래도 조금은 벌어. 왜?"
"하도 재밌어하길래... 돈 안 받는 줄 알았지."
...아. 이 얘기는 내 강의 인생의 슬로건으로 박제해야겠다.
"하도 재밌어하길래. 돈 안 받는 줄 알았지."
'강의'는 결국 사람을 바꿀수도 있다. 내가 교육채널 유튜브 이은경 선생님 강의를 그렇게 들었던 이유도 결국 말 한 마디에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눕고 싶다가도 일어나게 되고. 집안일이 귀찮다가도 손이 가게 되고. 심지어 마감도 해야 할 것 같은 의욕이 생겼다. 그런 힘이 있었다. '슬기로운 초등생활'이라는 유튜브를 들으며 나는 초등생활보다 나 자신의 삶을 더 슬기롭게 살고 싶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삶의 태도를 건드리는 말.
완벽한 사람 타고난 사람만 강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강의도 하시는 학원 원장님도 지금은 완벽하시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래. 나도 지금은 버벅대고. 눈은 칠판-책-학생-책-칠판-책 왔다갔다 하고. 말꼬리가 애매하게 끝나고. 질문하면 머리가 하얘지지만. 그래도 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잘 할수 있다. 완벽한 사람이 강의하는 게 아니라. 강의하면서 완벽해지는 거였다.
강사의 삶이 내 인생 2막일까? 아직은 모른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계속하게 될지. 이 길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강의를 하고 나오는 날. 내 얼굴은 아주 싱그럽게 구겨져 있다. (기쁘게 피곤하고. 피곤하게 기쁜 상태)
인생 2막이라는 게 꼭 거창해야 하나? 나는 지금 내가 나답게 웃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