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동시에 간호사를 그만두었다. 찜질방집 며느리가 되고 아이를 키우며 찜질방 작은 사모님이 되었다. 무늬만 사모님일 뿐 실상은 여탕 내 N잡러 수리공이다. 고칠 것들을 고치며 기술을 키워가다, 갑자기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간호학원 강사다. 강사가 된 배경은 '코로나'다.
코로나로 찜질방이 휘청했다. 2019년 12월에 시작된 코로나가 지속될수록 찜질방은 더욱 힘들어졌다. 땀과 비말이 필수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중목욕탕은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약 40%의 대중목욕탕이 폐업되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동네에서 볼 수 있던 목욕탕의 절반 가까이 사라졌다는 거다.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끊긴 상황에서 공공요금 인상으로 유지비 마저 대폭 상승했다. 심각한 위기였다. 어머님은 계속 적자를 보며 대출을 받아 유지하다 그것도 힘들다고 하셨다. 점점 폐업의 위기가 가까이 오고 있었다. 결혼 후 간호사를 그만두고 9년이나 경단녀가 되었다. 다시 병원에 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사실 다시 내 본업인 간호사가 되려고 했던 건 처음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일에 대한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면서 그 욕망을 잠식한 건 아무래도 아이들 케어였다. 대학병원이 아니라 동네 작은 병원으로 눈을 낮추면 재취업은 가능했다. 그런데 보통 9시부터 7시까지 근무하는 특성상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병원에 다시 가는 건 쉽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워킹맘이 되는 것은 주변에 도움이 필요했다. 다시 병원에 돌아가려면 애들이 중학생은 돼야 할 텐데. 그때 내 나이는? 간호사로 경단녀로 오래되었는데 할 수 있을까? 였다.
단순히 내 커리어를 위한 도전에는 주저했다. 그러다 생계가 위협되니,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간호구인구직사이트인 '널스잡'을 기웃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시기에 친구의 인스타에서 이런 메시지를 보았다.
"학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선생님 수업내용은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아요.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얘 무슨 선생님 됐나? 궁금증을 못 참는 나는 바로 물어보았다. 무슨 일을 시작하였길래 이런 좋은 메시지를 받았는지 말이다. 친구는 간호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와 대화하며 자세히 일에 관해 물었다. 생각보다 강의 준비 시간 길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힘들기도 한데, 그만큼 보람도 되고 재밌다고 했다. 마침 학원에 그만두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 있다면서 일하고 싶으면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 순간을 '운명이라 쓰고 타이밍이라 읽는다'고 부르기로 했다. 원장님과 면접을 봤고 다행히 합격하여 바로 한 달 뒤 일을 시작하게 됐다. 놀라운 건 그 다음 주. 그만두려던 선생님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셨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면접 본 게 일주일만 늦었으면 이 자리는 없었다. 와... 인생은 진짜 타이밍이다. 심지어 그 타이밍은 늘 '기웃기웃'하는 사람한테만 온다.
그렇게 나는 찜질방 여탕 수리공 박반장이자 간호학원 강사가 되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가 나라는 사람 안에서 한솥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전엔 간호학원에서 '이건 간호 윤리의 기본입니다.'라고 외치고 오후엔 찜질방 여탕 경첩을 갈며 '이건 기초공구의 기본입니다.'를 외쳤다. 한쪽에선 간호윤리. 한쪽에선 경첩 윤리. 나는 지금 인생에서 아무도 안 시켜지만 너무 열심히 살아버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살아보니 이런 말이 실감난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
코로나는 B도 D도 아니었지만 그 사이에서 내가 한 작은 선택들. 친구에게 연락한 것. 면접 본 것. 기웃거린것. 그 모든 게 나를 또 다른 삶의 페이지로 데려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찜질방 수리공'이라는 한국적인 직업과 '간호학원 강사'라는 전문적인 직업 사이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다 보면 '나'라는 사람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걸 되찾기 위해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일은 늘 조용하지만 단단한 반항이다. 경단녀였던 내가 찬란하게 실패한 도전도 있었고 속상하게 접은 꿈도 있었지만. 지금은 찜빌방에서 드라이버를 들고도 강의실에서 마이크를 잡고도. 둘 다 나답다고 느낀다. 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직도 내 인생의 제목은 '다음 회 예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