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엉덩이에게 사과

by 다몽 박작까


찜질방 여탕 안에는 올라가서 해야야 할 일이 꽤 많다. 올라가서 하는 일들은 버라이어티 하고 다이내믹하다. 직접 몸을 들어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 일들이다. 그런데 이 일을 하다 보면 주저앉을 틈도 없이 먼저 떨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내 엉덩이로. 그것도 제법 큰 소리를 내며.





만능 수리공 사모님(박반장)으로 진화 중인 나는 대부분의 작업을 '처음 해보는 것'으로 채워가고 있다. 세신사분들이 "작은 사모님~ 이번엔 또 뭘 달려고요?" 할 정도로 올라가야 할 일은 많다. 처음으로 '어딘가 위'에서 했던 일은 '다용도 스프링 용수철'을 다는 작업이었다. 이건 황토사우나라는 곳에 문이 저절로 닫히게 하는 장치다. 정확히 말하면 문을 대충 닫고 나가는 분들의 양심을 대신해주는 작은 금속 히어로다. 원래 스프링이 달려 있던 자리라 고리도 있고 구조도 완벽. 즉 '스프링만 걸면 끝'인 작업이었다.


황토사우나는 항상 75도쯤 유지된다. 공기로 숨 막히는 곳. 입장하자마자 내 얼굴이 김치볶음밥처럼 빨개지는 곳이다. 문높이도 많이 높지 않아 의자 위에 올라가면 되었다. 그래서 얼른 끝내고 나올 생각에 바로 옆 이슬사우나에서 플라스틱 의자 하나를 가져와 황토사우나 문 앞에 세웠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쓱 걸고 쓱 내려올 예정. 3분컷이다, 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게다가 목장갑을 끼고 있으니 왠지 내가 좀 멋진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흘낏흘낏 쳐다봤고 그 중 몇 명은 '쟤 뭐 하는 거지? 라는 눈빛을 발사하고 있었다. 나는 맨발로 당당히 의자 위에 올라섰고 의자도 나를 반쯤 받아줬다. 그리고 반쯤은 배신했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꽈 - 당'


의자를 밟고 일어서려 하는 그 순간 뒤로 벌러덩 하면서 엉덩방아를 쾅! 하고 찧었다. 황토사우나의 정중앙에. 그 소리는 내가 태어나서 낸 가장 큰 타악기 소리였다. 사람이 넘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둔탁하고 우렁찰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놀란 손님들이 "괜찮으세요?" 하고 달려오는데 나는 재빠르게 벌떡하고 일어났다. (늘어난 용수철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속도보다 더 빨랐을듯) 순식간에 일이었다. 놀란 건 나였는데 왜인지 안심시켜야 할 사람은 그분들이었다.


"네네! 저 괜찮아요. 하나도 안아파요. 진짜. 제가 워낙 튼튼해서요. 많이 놀라셨죠?"


안 아프긴. 무지하게 아팠지. 내 엉덩이 뼈들이 지금쯤 단체로 대책회의를 열고 있을 정도로.


의자 위에 올라섰을 때의 높이는 꽤나 있었다. 다행이라면 내 엉덩이가 워낙 볼륨감 있는 편이라는 거다. 쿠션감이 남다르다. 좋게 말하면 충격흡수. 나쁘게 말하면 큰 면적으로 골고루 망신을 당했다. 게다가 양쪽 엉덩이가 균등하게 떨어졌다. 중심 잃지 않은 균형 잡힌 낙하. (이건 나중에 몸살날 때 정말 중요한 요소다.)






그날 처음으로 내 엉덩이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바지 입을 때마다 "아 진짜 왜 이래" 하던 그 부위. 이제야 알겠다. 이건 바지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자동차 사고 났을 때 터지는 에어백처럼. 이 엉덩이가 나를 지켜주려고 그동안 열심히 자리 잡고 있었구나. 살은 이유없이 붙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슬사우나에서 가져온 의자에 이슬이 묻어 있었던 것. 그 위에 맨발로 올라가면 당연히 미끄럽지. 후딱하고 나갈 생각에 실수했다. 문제를 인식한 나는 그제야 수건을 들고 와 닦고 깔았다. 다시 올라가려 하는데 이번엔 아까 그 손님들 셋이 같이 달려왔다. 한 분은 문을 잡아주고 두 분은 의자를 붙잡아줬다. 이 순간의 공조는 정말... 인간애 그 자체였다.


고리에 용수철을 걸면 되는 것인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문 전용 '다용도 스프링 용수철'의 탄성은 어마어마했다. 힘껏 손으로 당기는데도 팔이 부들부들. 말이 '다용도'지. 탄성이 거의 헐크다. 힘센 남자가 했으면 거뜬히 했을 일이었다. 평소에 근육운동 좀 해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겨서 걸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손가락이 후들거리고 이두박근이 살짝 울었다. 운동 좀 해둘 걸. PT 상담 받았던 그날 왜 그냥 나왔지. 그 생각이 문 앞에서야 들더라. 손님 셋과 나. 넷이서 스프링 하나에 온 정신을 모아 결국 스프링을 걸었다. 걸자마자 네 사람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건 그냥 성공이 아니었다. 집단적 승리였다.


나는 서둘러 빠져나왔다. 머릿속엔 단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진짜 너무 아픈데, 부끄러움이 통증을 눌렀다...' 순간 투명인간이 되어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아니면 황토사우나 바로 옆에 있는 냉탕에 들어가 숨어버릴까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얼굴 들기 낯부끄러워 귀가 새빨개졌다.






다음날 확인차 여탕에 들어가자 세신사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작은 사모님 괜찮아요? 황토 사우나에서 넘어진 거 손님들이 다 말했어요. 우릴 막 혼내더라고. 왜 아무도 안 도와줬냐고 하면서."


입 꾹 다물고 '그 세 분만 아는 비밀'이라던 내 작은 바람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제 여탕 전체가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약간의 연출도 더해져서.


엉덩이는 다음날. 그다음날. 점점 더 아파왔다. 파스 냄새 나는 하루였다. 그래도 병원은 안 갔다. 간호사 출신 뇌피셜 판단은 '단순 타박상. 자연치유. 꾀병 아님.' 이었다. 이건 엑스레이로도 안 나오지.



실제로 사용한 '다용도 스프링 용수철'






다용도 스프링 용수철 달기에 성공한 모습







실수는 했지만 얻은 것도 있다.


"이제 아무 의자 위에 맨발로 올라가는 일은 없다."


교훈은 아주 강력했다. 덕분에 '위에 올라갈 때'의 경각심은 뼛속까지 새겨졌다.


(올라가는 일에 대한 에피소드는 너무 많다. 엉덩방아 찧은 사모님은 결국 사다리까지 타게 된다. 이 이야기도 써볼 예정이다.)



We learn from failure, not from success

-Bram Stoker-

우리는 성공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래, 사람은 성공에서 배우지 않는다. 진짜 배움은, 여탕에서 포동포동한 엉덩이로 꽈당 찧고 나서야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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