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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Jan 31. 2023

명절연휴 하수구 뚫는 사모님

찜질방 사모님의 전쟁 같은 하루일과

예로부터 명절 전 목욕은 새해를 새 마음으로 정갈하게 맞는다는 의식이다. 찜질방은 명절을 앞두고 '목욕재계'한 후 새해를 맞이하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연휴 전날에는 성묘 가기 전 씻으러 온 남자 손님이 많은 날이다. 명절 당일엔 가족단위 손님이 온다. 오랜만에 만난 손자와 손녀를 직접 씻기려는 할머니, 부모님을 씻겨드리고 싶은 자식들의 사랑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연휴 막바지엔 파김치가 된 며느리들이, 노곤함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는다.



최고 성수기인 '명절연휴'가 되면 몰려드는 인파에 쾌재를 부르지만,

일 년 중에 제일 힘든 시기이다.



연휴 내내 더욱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신랑은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난방온도와 물 수위를 수시로 조절한다. 고장 난 기계를 고치고 세탁방에서 빨래를 도우며 낮과 밤 가리지 않고 새벽까지 일을 한다. 그렇게 살아왔단다.



그 와중에 시댁은 명절마다 제사를 지낸다. 설날 전날 시댁에 가서 전을 부치고 명절 당일 아침 일찍 제사를 지낸다. 친정에 들러 식사를 후다닥 먹고는 부리나케 찜질방으로 직행이다. (찜질방 사위를 둔 우리 부모님은 사위 얼굴 오래 보기 힘들다. 자주 못 보는데 딸도 손주도 잠깐 얼굴도장 찍고 나와야 하니 얼마나 서운하실까.)






찜질방에 와서는 나도 이것저것 일을 도운다. 카운터에서 수건을 접어주고 손님들 가실 때 주차시간을 넣어준다. 일시적으로 손님이 몰리며 옷장이 부족하다. 고치기 힘들어 손 못 댄 망가진 옷장을 수리한다.

한 손님이 말한다.


"지금 옷장 고치는 거예요? 여탕에 남자가 못 들어와서 직접 고치는 거예요? 미치겠다. 정말."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소리를 한바탕 듣는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인기척 해주는 거라 여기며 기분 좋게 생각한다.


  "네. 남자가 못 들어오니까 제가 고쳐요."



항상 혼자 고치는데 이 날은 두 명이다.


바로 남편의 여동생. 아가씨.


내 스승님이다. 옷장 신발장 열쇠 교체나 수도꼭지 고치는 것들 다 아가씨에게 배웠다. 멀리 살아서 자주 오지는 못하는데 명절에는 도와주러 온다.


2인 1조가 되어 열심히 옷장을 뜯어고친다.

갑자기 손님 한 분이 나와 나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여기 직원이세요? 하수구가 막혔어요."


아주 격앙되고 날카로운 목소리다.


'하수구가 막히는 것이 기분 좋게 얘기할 일은 아니긴 하지.'라고 잠깐 생각한다.


"네. 네. 제가 바로 뚫어 드릴게요. "






하수구 뚫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하수구 뚫을 때는 역시 뚫어뻥이 최고다. 찜질방은 하수구 막힐 일이 빈번하다. 탕 안에는 막히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가 볼일을 보는 변기에 잡다한 것을 넣는 희한한 손님들이 가끔 있어 꼭 필수 아이템이다. (이렇게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뚫어뻥이 중요한지 새삼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반 뚫어뻥과 조금 고급진(?) 뚫어뻥이 있다.


뚫어뻥 3총사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뚫어뻥이다.


중간에 있는 것은 공기압 뚫어뻥이다. 검은색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펌핑하여 공기압을 넣고 손잡이 부분에 버튼을 누른다. 펌핑하며 모아졌던 공기압이 한 번에 들어가 뚫리는 방식이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은 뚫어뻥총알이 들어있는 뚫어뻥이다. 압축탄산가스가 들어있는 뚫어뻥총알을 넣고 버튼을 누른다. 발사 동시에 배출되는 탄산의 강한 압력으로 뚫리는 방식이다.


하수구 막힐 일이 많아 하수구가 시~원하게 뻥 뚫린다는 광고만 보면 사고 싶은 욕구가 셈 솟다 보니 이렇게 3개가 생겼다. (저 3개보다 강력한 것을 찾는 그날까지 나의 지름신은 끝나지 않을 듯.)






하수구의 위치는 이슬사우나와 황토사우나 앞에 있는 하수구 2개이다. 이 하수구 2개는 같이 연결되어 있어 한 군데가 막 면 같이 막혀버린다. 이미 막힌 지 오래되어 하수구 위로 물이 한가득이다. 하수구 구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강이다. 하수구 냄새의 구린내가 진동을 한다. 하수구 막혀서 고여버린 물이라 밟기 싫어 손님들은 발 뒤꿈치를 들며 지나간다. 나도 밟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하수구 구멍을 향해 걸어간다. 바지는 무릎까지 동동 걷고.


이슬사우나와 황토사우나 앞에 양쪽에 있는 하수구. 사진은 하수구 다 뚫린 모습

 

하수구 구멍이 양쪽에 2개라 2인 1조가 되어야 한다. 한쪽만 하면 옆 쪽 구멍으로 바람이 새기 때문이다.  

먼저 일반 뚫어뻥을 사용해 본다. 될 리가 없다. 그 정도로 막힌 거였으면 심하게 막히지도 않았겠지. 한 사람은 구멍을 막고 한 사람은 저 3개의 뚫어뻥을 번갈아가며 해 본다. 둘이 동시에 뚫어 보기도 한다. 두 여자가 하수구를 뚫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시원하게 '뻥'하고 뚫리지 않으니 뚫으면서 하수구 물이 튄다. 눈을 질끈 감아보지만 전신으로 물이 튀어 옷이 다 젖어버린다. 그래도 뚫리지 않으니 무한 반복.



열심히 하수구 구멍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젊은 여자 둘.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옷이 다 젖게 노력했는데도 좀처럼 물이 내려가는 게 보이지 않는다. 기진맥진으로 해보는데도 소용이 없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갑자기 물을 빨아들이는 습식청소기가 떠올랐다. 일단 위에 고여있는 물부터 빨아들여 보자는 마음이었다.



25M전기릴과 습식청소기

강한 모터의 힘으로 물기를 빨아들이는 습식 청소기다. 일단 하수구 위로 고여있는 하수구 물과 모래를 빨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코드를 꽂고 하는 것이기에 25M까지 연장이 가능한 전기릴을 이용하여 콘센트에 꽂는다. (이 코드는 탈의실 거울 앞에 있는 코드에서 전기를 끌어온다.)


 20리터까지 담을 수 있는 습식청소기를 이용하여 물을 빨아들인다. 노란 통에 가득 물이 빨아들여지면 비우고 또 하고 반복한다. 10번 정도 했을까. 물이 가득 차 안 보이던 하수구 구멍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멍 안쪽까지의 물을 다 빼내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다. 바닥에 있던 모래들까지 싹 다 정리하고서야 끝이 보인다. 물을 비워내고도 하수구를 또 뚫어본다. 나중에 또 막힐까 봐 자극을 주는 것이다. (다행히 그날 이후로 계속 하수구는 안 막히고 있다.)


하수구를 열심히 뚫다가 포기했으면 냄새 진동하고 손님들 불평하고 난리가 났겠지. 아찔할 수 있었던 사고를 해결하고 나니, 뿌듯하다. 한 가지 방법만 고수하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결국 해결했다. 그것도 내가 생각해 냈다는 점에 만족스럽다.





언젠가 한번 신랑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잘 찾아내고 잘 고치는 거야?"


신랑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처음 해본 거야.

하다 보면서 방법을 찾는 거지."



나는 그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어떻게 방법을 모르는데 할 수가 있는 거지 하며 의아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해결방법이 있다 해도 더 괜찮은 방법이 떠오를 수 있다. 해결방법이 없다 해도 방법은 찾기 나름이다. 인생의 나침반처럼 방향을 제시하며 방법을 찾아준 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렇지만 방법을 다 알아야 문제를 풀 수 있다면 해결 못하는 문제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인생에는 모르겠는 알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럴 때 일일이 해결방법을 찾다가 시기를 놓칠 수 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직감으로 일을 해결해야 하는 점도 있다. (습식청소기를 생각해 낸 내 직감처럼. 이 일을 이렇게 뿌듯해하며 이런 심오한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찾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T.M.I 덧붙임)


하수구 뚫일 같은 거 하고는 역시 삼겹살이지.


열심히 일한 자, 먹어야지.

자주 가는 삼겹살집에 간다.

쫙쫙 기름기 빼듯 힘들었던 일도 쏙쏙 빠져나가길 기대하며.



자주가는 삼겹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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