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크린 커튼 달 줄 아시나요?
일요일 아침. 찜질방 여탕세신실 옆에 달려 있던 롤스크린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손님이 붐비는 주말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 시간은 늘 그렇듯,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주말 피크타임. 대체 뭘 또 떨어뜨린 거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았다. 나는 다소곳하게, 그러나 빠르게 그 현장으로 뛰어갔다. 현장은 생각보다 비장했다.
롤스크린 둘 중 하나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마치 "나도 곧 따라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있는 듯 위태롭게 달려 있었다.
커튼 한 번 달아본 적 없는 내가 이걸 어쩌나. 순간 뇌가 멈췄다. 보통 이런 일은 우리 집 만능 수리공. 남편에게 맡겨야 한다. 벽도 뜯고 기계도 고치고 세상 모든 고장을 눈빛 한 번으로 해결하는 남자.
하지만 오늘은 불가항력이다. A형 독감으로 침대에서 쓰러져 있었다. 열이 39도. 그렇게 세상 모든 기계는 남편 손만 기다려도 되지만 롤스크린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문제가 시급했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본드지."
그리하여 들고 간 것은 '록타이트 파워퍼티'. 초강력 접착제. 일명 수리계의 곰표 밀가루. 고무찰흙 형태라 주무르면 따뜻해지며 접착력이 상승해진다. 원하는 곳에 붙이고 나면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기 때문에 자주 쓰고 있다. 파워퍼티를 조물조물 하는 과정은 은근 중독적이다. 마치 접착력을 위해 태어난 거처럼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든다. 모든 붙을 것 같은 기분.
그러나 결과는 처참한 실패. 붙일 공간이 없었다. 롤스크린은 가운데가 붕 떠 있고 천장은 녹슬어 있었다. 무게는 생각보다 꽤 심하게 무거웠다. 어디든 초강력으로 붙이는 접착제라도 이건 불가능이었다. 롤스크린이 맥없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내 자존심도 같이 떨어졌다.
"아. 이거 내가 할 일이 아닌가 봐..."
라는 좌절감이 몰려올 때쯤, 나의 구세주가 생각났다. 바로 '에이스 하드에어'. 다이소가 일상템 천국이라면 여긴 각종 수리템 성지다. 다양한 물품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어 물건 찾기 좋고 직원들도 따뜻하게 안내해주신다. 직원분께 물었다.
"혹시 롤스크린이 떨어졌는데 감쌀 수 있는 경첩 같은 거 없을까요?"
직원분은 친절히 '원래 이건 롤스크린 스냅으로 고정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내려주셨다. 아아. 무지한 나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다니.
운동화 신고 땀범벅 각오하고 올라간다. 사다리를 타고 다시 작업 개시. 지난번 의자에서 엉덩방아 찧고 찜질방 전체에 소문났던 흑역사가 떠올라 이번엔 맨발 NO. 운동화 YES다. 천장에 스냅을 달기만 하면 끝이겠다 싶었다. 큰 오산이었다. 천장이 비어 있었다. 헛도는 나사. 헛도는 나의 인생. 한참을 망연자실하다가 또 하나의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본드와 가장 긴 나사를 조합하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게 안 되면 천장을 뜯을 각오까지 하고 있던 상황. 그리하여 본드를 바르고 나사를 밀어 넣고 헛도는 나사와 싸우고 또 싸웠다. 결국 딱 고정됐다.
하지만 진짜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다. 고정된 스냅에 무거운 롤스크린을 끼우면 끝인 줄 알아다. 이게 또 다시 오산이었다. 문제는 이 롤스크린이 한 개짜리가 아니었다는 점. 두 개가 연결된 상태라, 체감 무게로 치면 3kg짜리 덤벨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천장에 매다는 느낌이었다. 롤스크린은 묵직했고 내 팔은 짧았고 스냅은 하필이면 머리 위 높이에 있었다. 팔을 번쩍 들어 끼우고도 '딱' 하는 소리가 안 나면 다시 빼서 또 끼워야 했다. 딱, 그 소리가 나야만 제대로 고정됐다는 뜻이니까. 이건 거의 근력 + 정밀함 + 인내심이 총출동하는 삼박자 전투였다. 혼자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가씨와 번갈아가며 작업을 했다. 그렇게 여탕 안에서 땀은 줄줄나고 눈은 따갑고 등짝은 땀에 흠뻑 젖고 손은 슬슬 후들거렸다.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꿈쩍도 않자 마음속에선 '이건 정말 무리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거의 포기 직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거. 내가 아니면 누가 하지?"
이쯤 되면 오기로 버틴다는 말이 딱 맞았다.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그놈의 '딱' ㅡ 그 기다리던 소리가 났다. 이토록 뿌듯한 한 글자가 있을까?
그 소리 하나로 모든 게 보상되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거의 롤스크린 업계 수료증이라도 줘야 할 판이었다. 나는 또 하나의 능력치를 얻었다. 이제는 롤스크린도 달 줄 아는 여자. 다음번엔 뭐든 그냥 일단 해본다. 망하면 또 해보고 하다보면 또 '딱' 하고 맞아떨어질 날이 올 테니까.
고치는 세계는 실패의 연속이고 그 연속 안에서 한 번의 성공이 걸려들 때 사람은 거기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날, 나는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