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몽 박작까 May 08. 2023

사다리 타는 사모님

롤스크린 커튼 달 줄 아시나요?

손님이 붐비는 주말 일요일 아침이었다.

여탕세신실 옆에 있는 롤스크린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떨어진 롤스크린과 초강력 본드 '록타이트 파워퍼티'

 세신 하는 곳 옆에 달려있는 롤스크린은 추위를 막아주고 살짝 민망할 수 있는 부분을 가려주기 위한 역할을 한다.


 떨어졌다는 얘기만 듣고 상황파악을 위해 달려갔다. 롤스크린은 2개가 붙어서 연결되어 있다. 그중 1개는 이미 떨어졌고 다른 1개는 곧이어 떨어질 것 같았다.

 커튼을 달아본 적도 없던 나는 고민이 되었다.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 밖인 것 같았다. 이런 일은 뭐든지 잘 고치는 남편에게 맡겨야 할 것 같았다.


 남편에게 맡기고 미루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곧 떨어질 것 같기도 했고 미룬다고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남편이 많이 아팠다. A형 독감에 걸려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컨디션이 좋았다면 밤에 들어와 해결하라고 놔뒀을 거다. 그런데 몇 시간 기다려 밤이 된다고 해도 신랑이 와서 고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롤스크린이 곧이어 떨어질 것 같은 상황. 문제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초강력 본드로 붙여보자며 사다리와 '록타이트 파워퍼티'를 들고 들어갔다. 록타이트 파워퍼티는 말랑말랑 고무찰흙 같은 성질이다. 알맞은 크기로  잘라 고무찰흙 놀이하듯 조물조물 만지면 따뜻해지는데 이때가 접착력이 높아지는 시기다. 이때 원하는 곳에 붙이고 나면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진다. 손쉽고 간편하며 강력하기에 자주 쓰고 있다. 롤 스크린 무게를 버텨줄지는 의문이었지만 일단 붙여보기로 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붙이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실패' (한 번에 성공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치는 세계는 실패의 연속이다. 실패의 연속 중에 성공이 얻어걸릴 때 짜릿함을 느끼고 싶다. 다시 도전!) 접착제를 붙일 공간이 나오지 않아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롤 스크린은 가운데가 붕 떠서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 붙이기가 애매했다. 천장에 맞닿는 부분은 이미 녹이 슬어 접착제가 붙지 않았다. 게다가 접착제로 붙이기에는 롤스크린이 너무 무거웠다.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건가. 좌절하다 자주 가는 공구가게에 갔다. 공구가게에 다이소 '에이스 하드웨어'. 다양한 물품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어 물건 찾기 좋고 직원분들도 매우 친절하다.

'에이스 하드웨어'가게 와 가게에서 산 장갑과 나사, 롤스크린 스냅


 롤스크린을 고정하며 감쌀 수 있는 손잡이 모양의 경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직원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롤스크린 크기를 설명하고 이 부분을 감싸서 위로 고정할 수 있는 경첩을 문의했다. 비슷한 모양을 가진 것들을 찾아주었지만 크기가 맞지 않았다.

 다시 직원분을 붙잡고 문의를 했다. 원래 롤스크린은 천장에 어떻게 고정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친절한 직원분은 '롤스크린 스냅'을 가리키며 원래 이것으로 천장에 고정하는 거라고 얘기해 주셨다.


 롤스크린 길이에 맞는 스냅을 샀다. 직원분에게 스냅이 천장에 달리는 원리를 배웠다. 걱정되는 마음에 스냅이 달리는 방향에 다시 한번 물었다. 간단하지만 어려울 것 같았다. 혹시 몰라 2개를 샀다. 뜯지 않으면 환불 가능하다고 직원분이 친절히 얘기해 주셨다. (내가 못할 것 같았나 보다. 하긴. 롤스크린 스냅도 모르고 설치하는 방법도 모르는 여자가 혹시 몰라 2개나 사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내 친구 사다리와 전동드릴. 천장에 롤스크린 스냅을 다는 과정.


 사다리에 올라가 작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지난번에 의자 위에 올라갔다 엉덩방아 찧은 이후로는 올라가는 것이 사실 좀 무서웠다. 그래서 맨발 아니고 운동화를 신고 올라갔다. 흔들리는 사다리는 아가씨가 붙잡아 주었다.

 스냅을 천장에 달고 끼우면 끝. 간단한 원리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스냅을 천장에 달면 되는데 천장이 비어 있었다. 나사가 고정하려면 나사가 고정되는 벽은 나무판자 같은 재질이어야 한다. 그런데 찜질방 천장은 특수한 재질로 되어 있어 나사가 헛돌았다. 나사가 고정이 안되니 스냅을 천장에 달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천장을 뜯어서 나무판자를 대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대공사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천장을 한 번도 뜯어보지 않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천장이 다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


'어쨌든 방법은 있을 거야. 롤스크린이 오랫동안 고정 되어 있다가 떨어진 것이니 천장을 뜯지 않고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고민해 보았다.


갑자기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사가 헛돌아서 고정이 안 되는 것이니 스냅을 초강력 본드 '록타이트 파워퍼티'로 붙이면서 가장 긴 나사로 고정해 보자는 것이었다. 쉽지는 않았다. 나사가 헛돌면 다시 하고 다시 하기를 무한 반복.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고정이 되었다. (오 예. 이때까지만 해도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지)


롤스크린 스냅만 달면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큰 오산이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더 힘든 과정이 남아있었다. 스냅에 무겁게 축 늘어져있던 롤스크린을 끼는 과정은 정말 까다로웠다. 롤스크린의 무게는 상당했다. 게다가 2개가 붙어 있다가 떨어진 것이라서 1개의 무게가 아니었다. 2개의 무게를 견디며 천장에 달린 스냅에 끼어야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 무게를 견디며 끼울 때 양쪽이 맞물리면서 '딱' 소리가 날 정도로 견고하게 끼워야 하는데 그놈의 '딱'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한쪽이 덜 끼워졌다는 소리다.




 탕 안은 옷을 다 벗고 있는 곳이기에 사람들이 춥지 않게 난방을 튼다. 그래서 나 혼자 찜통이었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고 작업하고 해도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얼굴에도 땀범벅으로 눈도 맵고 등짝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옷이 다 들러붙었다. 혼자 용쓰다 손 바꾸면 될까 싶어 아가씨와 번갈아 해 보았다. 나보다 힘이 조금 더 센 아가씨가 해도 역부족이었다. 안 되는 걸 용쓰면서 하다 보니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점점 손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거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다시 해보았다. 결국 그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그놈의 '딱'. 양쪽이 딱 맞물렸다.


드디어 롤스크린 달기 성공한 모습



능력치 1을 더 키웠다. 이젠 롤스크린도 달 줄 아는 여자가 되었다.


이전 03화 명절연휴 하수구 뚫는 사모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