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 공구 든 사모님 되다

by 다몽 박작까


'빛 좋은 개살구'

사진출처 : 픽사베이

찜질방에서 일하다 보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 속담.

겉보기엔 그럴싸하다. 빛깔 곱고 포장 번지르르하고 마치 인생이 스파클링처럼 튈 것만 같지만. 막상 한 입 베어 물면 턱이 아릴 정도로 시고 떫다. 내가 결혼해서 들어간 그 집. 정확히 그랬다. 개살구. 아주 빛 좋은 기막히게 광 나는 개살구.








결혼할 때, 사람들 반응은 꽤 반짝였다.


"찜질방 운영하는 집이면 완전 여유 있는 집 아니야?"

"어머어머~ 너 사모님 되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주위가 먼저 들썩였고 호들갑은 그들이 떨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속으로는 좀 들떴다. 찜질방이라니. 얼마나 뜨끈뜨끈하고 포근한 인생이 펼쳐질까. 내 인생도 불가마처럼 한껏 데워지겠구나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땀 때문이었고 열이 아니라 분노 때문이었지만)


9년차 찜질방 마누라.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은 받았다. 정확히는 '작은 사모님'. 그렇지만 나는 사모님과는 거리가 멀기에 스스로 박반장이라는 타이틀을 정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손에 목장갑을 낀 채 몽키스패너와 전동드라이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여자이니까.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기계를 보면 어깨부터 움츠러드는 사람이었다. 설명서를 보면 머리가 아프고 제품은 손만 대면 망가지고. 드라이버는 드라마 제목인 줄만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직접 찍은 내가 쓰는 공구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이건 일자고 이건 육각이고 이건 에폭시로 붙여야겠네요~"하는 사람이다.


나도 놀랐다. 진심이다.

왜 이렇게까지 됐냐고?







바로 여탕 때문이다. 찜질방 특성상 남자는 여탕에 못 들어온다. 경찰도. 수리기사도. 남편도. 하지만 고장은 여탕에서도 평등하게 발생한다. 심지어 하루에도 몇 번씩. 물 뿜고 고장 나고 열쇠는 부러지고. 그럴때마다 남자가 들어갈 수는 없는 법. 여탕 안에 고칠 여자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고치게 됐다. 정말이지 선택이 아니었다. 숙명이었다. 숙명적으로 나는 공구를 들었다.






신발장 열쇠

첫 관문은 신발장 열쇠. 말이 열쇠지 이게 거의 3D퍼즐이다. 하나 망가지면 신발장-옷장 둘 다 교체해야 한다. 십자 드라이버로 풀고 육각렌치로 돌리고 때론 욕도 같이 넣는다.


"야, 열려라. 진짜 오늘은 좀 봐줘라..."


애원과 저주 사이에서 열리는 열쇠는 마치 기분 나쁠 때 겨우 열리는 지퍼 같기도 하다. (안 열릴 땐 진짜 울고 싶다.)


하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왼쪽으로 돌리면 풀리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조인다. 알고 보면 간단한데. 그걸 알기까지 몇 번을 시도하고 좌절하고 욕을 삼켰는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고장 난 것보다 고장 났다고 '생각한 것'을 더 무서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보며 손님들이 종종 말한다.


"이런 건 남자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

"젊은 여자가 대단하네~."


나는 웃는다. 사실, 나도 연예인 경수진 씨 보면서 똑같이 생각했다.


'어머... 못 입에 물고 전동드릴 돌리다니. 저건 근사 그 자체다.'


내가 보며 감탄했던 모습이 어쩌다 내가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해냈을 때, 그 짜릿함은 진짜다. 뿌듯함 뿜뿜이 아니라, 어깨에 뽕이 아니라, 아예 깃발을 꽂고 싶어진다.


'이 옷장 열쇠 나 혼자 고쳤음' 이라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공구를 든다. 전동드릴을 켜고, 몽키스패너를 손에 쥐고, 고장 난 기계들 보다 더 고장 난 나의 '못할 거야'라는 생각과 싸운다. 그리고 결국 조여나간다. 기계도. 마음도. 내 인생도.



Only I can change my life. No one can do it for me.

"내 삶을 바꾸는 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


(내 삶을 바꾸는 건 오직 나. 이제 전동드릴도 돕긴 한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사진출처(제목):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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