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실'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으면 절대 열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금단의 문이었다. 들어갈 수 없으면 호기심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건드릴 수 없는 공간이었으니까. 찜질방에도 기계실이 몇 개가 있다. 여탕관리자 박반장이 되어 수도꼭지 고치기, 옷장 고치기, 하수구 뚫기 등 을 했다. 그렇지만 기계실만큼은 내가 절대 손 대면 안 되는 남편 영역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거의 매일 기계실에 드나든다. (남편이 쳇 하겠지. 그렇다면 정정해야겠다. 매일 아니고 자주 빈번하게) '기계실'이라고 쓰인 푯말이 있는 곳에 드나들 때 묘한 기분이 든다. 별다른 이유 없이 두근거린다. 중요한 곳이라 잠겨있는데 열쇠를 열 때 왠지 모르게 희열을 느낀다. 기계실에 보통 여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편견 때문인지. 열쇠를 꽂아 문을 열 때 왠지 '숨겨진 레벨 업 버튼'을 누르는 기분이다.
생각지도 못한 별별 일을 겪고 고치면서 성취감이 생겼다. 기계실에 슬금슬금 호기심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그러니까 공구치였던 내가 이젠 공구를 쓰다듬듯 다루게 된 것도 신기한데 기계는 또 얼마나 더 신비하겠나. 육중한 금속 덩어리들이 도대체 어떤 원리로 물을 데우고 온도도 맞추고 하는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거다. 관심 자체가 없던 기계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까지 알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그게 나한테도 달린 일이 돼버렸으니까.
남편 따라 처음 기계실에 들어갔던 날. 거기엔 정말 덤보처럼 우뚝 서 있는 기계들이 있었다. 중압감이 밀려왔다. 포효하고 구슬프게 삐걱거리는 소리들. 각종 기계에서는 저마다의 박자와 음색을 지닌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같다랄까? 사실 오케스트라 같다고 하기엔 굉장한 소음이다.
'웨에에에에엥. 띠 띠디 띠 띠디 띠디디. 삐이이이이삐이이이 이이. 데에에에에에에에엥. 차치치이이익칙. 철철 철철 철. 쏴아아아아쏴아아아아아. 푸쉬이이이이이이이.'
크기는 말할 것도 없이 크고, 생김새는 또 왜 그렇게 낯선지. 모서리마다 '나 만지면 너 크게 다칠 수 있다.'라고 써 있는 것만 같다. 거기다 굉음까지 내니 이건 뭐 그냥 기계가 아니라 괴물같았다. 게다가 장소도 지하실. 특유의 그 퀴퀴하고 눅진한 냄새 있지 않나. 이런 이유로 기계실은 그 자체로 약간 겁이 났다. 그리고 겁보다 더 큰 감정. "기계치인 내가 감히 저걸 조작해?" 라는 절대 안 될 것 같은 자기불신. 진짜 그건 잘못 건드렸다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대형사고 각이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일직선으로만 흘러가진 않잖아. 그러면서도 속에서는 작고 어설픈 떨림이 하나 일고 있었다. "나도 기계를 잘 다루는 여자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면 조금 거창하지만 그 기계 앞에서 한 번쯤은 당당하게 버튼이라도 눌러보고 싶은 마음 같은 것.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큼직큼직한 기계들과 서서히 아주 서서히 친해지게 됐다. 사실은 지금도 모르는 기계들이 많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그 기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지금껏 해온 일들은 정말이지 찜질방이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보면 빙산의 일각이었다. 그냥 잔챙이들만 잡고 있었던 거다. 물론 여탕에선 잔챙이도 중요하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건 잔챙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어는 또 다르다. 그 대어들. 그러니까 찜질방을 좌지우지하는 그 큼직한 기계들을 남편이 얼마나 거뜬하게 다루는지를 보고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갔다. 그래서 그랬구나. 내가 하는 일들이 괜히 애송이처럼 느껴졌던 이유가. 그 원리를 알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이제는 나도 그 큰 맥락 안에 있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묻고 또 물었다.
"이건 왜 이래? 저건 어떻게 해? 그건 왜 안 되는 거야? 한번 더 설명해줘. 아니. 잘 모르겠어. 더 쉽게 설명해줘. 천천히. "
남편은 나름 자세히 설명해줬다. 근데 듣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건 많이 없었다. 나는 순백의 기계치였고 그 설명들은 전공자용이었다. 완전히 다른 언어권. 마치 프랑스어 듣고 '어? 이탈리아어인가?' 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신기하게 반복해서 듣다 보니 어렴풋이 들어오는 게 생겼다. 진짜 아주 조금. 처음엔 단순한 소음처럼 들렸던 기계음들이 어느날 갑자기, "저는 지금 정상 작동 중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랄까? 물론 착각이다. 하지만 착각이라도 괜찮다. 이 기계들하고 나는 이제 같은 건물에 사는 사이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기계실 안에서 이제 내가 다룰 수 있는 기계는 크게 세 종류다. 물 트는 기계, 물 온도 조절 기계, 그리고 난방기계. 딱 세 개. 단출하긴 하지만 이 세 개만큼은 내가 꽤나 '제법'다룰 줄 안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영역이다. (물론 남편이 들으면 콧방귀를 뀔 테지만. 그래도 이건 내 이야기니까...)
첫 번째는 물 트는 기계다. 그냥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온다고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손잡이를 돌리면 '쏴아아아'하고 나오는 그 물줄기 뒤에 이토록 방대한 시스템이 숨겨져 있다니. 세상 참. 아무것도 몰라도 잘만 살아왔던 거다. 물은 기계실 깊숙한 곳에 있는 커다란 물탱크에서 조절된다. 손님이 많고 물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이 탱크의 수위도 실시간으로 조정해줘야 한다. 조정을 안 하면? 물이 떨어진다. 말 그대로 없어진다. 그 순간은 찜질방판 CPR 상황이다. 목욕탕에서 물이 안 나온다? 그건 사람이 숨을 못 쉬는 거랑 같다. 물장사에서 물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물 수위를 본다. 언제 어느 때 물 수위가 떨어질지 모르므로. 방법은 제일 간단하다. 수위를 체크한 뒤 팔뚝만 한 밸브를 '칙' 하고 올리거나 내린다. 기술적으로는 간단한 동작인데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안되기에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이 작은 회전 하나에 하루 영업이 달렸다. 그래서 찜질방 관리자들은 어디 멀리 가지 못한다. 근거리 도는 비둘기처럼 항상 이 건물 근처만 배회한다. 언제 수위가 퐁 하고 떨어질지 모르니까 불안하다. 불안함은 업보다. 이 직업의 운명 같은 거다.
두 번째로 물 온도 조절 기계다. 온도 조절도 중요하다. 일정한 수준의 물 온도를 맞춰야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 때 적절하게 나온다. 이걸 맞춰주지 않으면 틀었을 때 따뜻한 물 쪽으로 올려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 기계는 사람 몸처럼 예민하다. 조금만 틀려도 어느 날은 미지근한 물만 나오고 또 어느 날은 화상입을 정도로 뜨거워질 수 있다. 그걸 내가 조절한다. 기계실 한 켠에 있는 파란색 기계. 앞에는 작고 복잡한 버튼들이 그럴듯하게 배열되어 있다. 급수온도, 출수 온도, 폐수 온도. 말만 들어도 대학 전공 같고 한 번만 틀리면 수백 리터의 물이 오작동할 것 같아 초반엔 손도 못 댔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남편의 지시에 따라 조심조심 버튼을 누르며 온도를 수동으로 맞추는 게 이젠 손에 좀 익었다. 감도 조금 생겼고. 물론 아직도 이건 남편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믿고 맡길 수준은 아니지만 옆에서 시킨대로 눌러줄 사람 정도는 된다.
세 번째로 난방기계다. 이건 진짜 중요하다. 탕에 들어가면 그 유명한 '희뿌연 김'의 정체다. 그 김이 없다면? 사람들 돌아간다. 훈훈함이 있어야 한다. 겨울철엔 특히 더. 공용실, 탈의실, 탕 안 바닥까지. 모든 곳이 춥지 않아야 한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는 찜질방이니까. 이 난방 온도도 수동이다. 여기서도 남편이 기준치를 알려주면 나는 그에 따라 맞춘다. 조그만 버튼 몇 개 눌러도 탕 안 전체의 체감 온도가 달라진다. 버튼 하나가 온기의 흐름을 바꾼다.
이 세 가지가 내가 기계실에서 다룰 수 있는 것들이다. 아직 모르는 게 훨씬 많지만 이 정도만 해도 남편의 무거운 어깨를 살짝 덜어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기계실에 대해서는 꽤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기도 알고 싶기도. 배우고 싶지 않기도 배우고 싶기도. 말하자면 약간 연애 초반의 그 마음 같은 거랄까. 손 잡고 싶으면서도 잡으면 끝인 것 같은 기분. 내가 먼저 연락하고 싶으면서도 그럼 지는 것 같아서 못하는. 기계실이 딱 그랬다. 왜냐하면 잘 알고 나면 그 일도 내 일이 될까 봐. 단순히 내가 기계치라서도 아니고. 버튼 하나 누르면 오작동 내는 손이라서도 아니고. 기계라는 단어에 먼저 현기증부터 느끼는 뇌 구조라서도 아니고. 진짜 이유는 한 번 발 담그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일 잘하는 사람의 비애는 일이 많아진다는 데 있다. 나는 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일 좋아하는 워커홀릭도 아니다. 그런데 그저 그럴듯하게 척 하고 잘 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 문제다. 알면 할 수 있을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시켜질 것 같고. 그러면 또 그게 내 일이 될 것 같고. 일이 더 많아지는 건 그냥 싫다.
그런데 남편이 너무 힘들어했다. 찜질방을 관리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돌발 상황, 고장, 누수, 이상한 소리, 고객 클레임, 온도 이슈 기타 등등. 하루에도 열 두번씩 무슨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걸 전부 남편이 해결해야 하는 일로 귀결되다 보니 마음이 쓰였다. 쓰이기만 한 게 아니라 안쓰러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도 저 기계들을 조금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운 건 딱 세 가지지만 그 세 가지만으로도 남편이 약간의 자유를 얻었다. 예전에는 족쇄처럼 찜질방 주변을 맴돌며 수위 체크와 온도 조절, 난방 관리를 하던 남편이 이제는 아주 잠깐이라도 찜질방에서 멀어질 수 있게되었다. 이건 솔직하게 조금 뿌듯하다. (남편은 "그렇게까지는 아닌데..." 라고 말하겠지만)
24시간 돌아가는 찜질방은 조용한 날이 거의 없다. 연중무휴. 쉬는 날도 없고 사전 예고도 없이 고장난다. 이런 곳에서 기계는 장식이 아니라 생명유지를 하는 장기이고 남편은 그 장기를 돌보는 외과 의사 같은 존재다. 나는 지금까지 그 장기 주변의 모세혈관을 살피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해온 일들이 애송이 같아 보였나 보다. 그건 약간 서운하지만, 그도 이해는 된다.
그리고 이젠 안다. 전달하는 사람과 해결하는 사람 사이에는 천지차이가 있다는 것을.
훈훈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이제 내가 참견이 생겼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보니 여러 가지 이견이 생기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의견을 낸다. 남편의 머릿속에 이런 속담이 떠오를 것 같다.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 궁금하다. 계속 배우고 싶다. 계속 도와주고 싶다. 계속 참견하고 싶다. 기계실 드나드는 박반장은 아직 업그레이드 중이다. 어쩌면 평생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럼 뭐 어떤가. 그게 삶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