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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Jan 10. 2023

이효선이 알리 없다 2

숨구멍 2 

1980–10–19 ~ 

 

 너는 네가 그 빌어먹을 촌구석에 빗물을 받아마시는 뿌리라고 생각했나 본데, 그거 아냐. 뿌리는 나였어. 등허리가 쿡쿡 쑤실 만큼 차디찬 바닥 위에 너랑 누워서, 생라면을 부러 요란하게 씹으며 이야기할 때 말라붙은 목구멍 안에 물기가 어렸으니까.


 내가 어디에 가게 될지, 그리고 어디를 못 갔는지 생각하며 울지마. 노르웨이,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 들었을 때 가장 이국적이고 화려한 나라 이름 몇 개 떠들어댄 거니까. 그걸 꼭 유언처럼 받들지 마. 거기에 잡아먹히지 마. 그건 내 유언 아니야. 


 사는 게 머리 터질 만큼 아프다고 말하는 우리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니. 만만한 게 너라 너한테 얘기한 거야. 그런데 너는 내 이야기를 네 마음과 눈 안에 고스란히 담더라. 네가 눈을 반짝이면서 들어줄 때 이루어질 것도 같더라. 넌 내 얘기를 네 눈에 새기더라. 


 상경하고 나서 너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첫 마디를 내뱉을 때의 목소리가 가장 걱정이 되었어. ‘여보세요’, 아주 컴컴한 지하실 같은 곳에 있는 것 같이 목소리가 콱 잠겨 있어서 애가 탔어. 괜히 실없는 농담을 던져야 네가 좀 웃으니까, 그래야 안심이 되니 그런 농담을 일부러 잔뜩 했어. 정작 고르고 골라 또다시 지하실 같은 곳을 간 건 나였지만.


 효선아. 나는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넌 탁 트인 곳에 살아. 거기 안개에 짓눌리지 말고. 입 밖으로 내뱉을 때 호화로운 그런 곳에 가지 않아도 되고, 또 가도 돼. 대신 어딜 가든 숨구멍 하나 없는 곳으론 가지 마.


나는 내 삶을 진작에 끝내버려서 결국 흙 속에 묻혔지만, 내 소원을 받아마신 너는 뿌리가 아닌, 꽃씨처럼 살아. 바람에 훨훨 날아가. 


이게 나의 유언이야. 


 

 이효선이 알리 없다.

 

  이효선은 무려 주 6일을 공장에서 일하며 정신없이 살았다. 이효선은 이효선이 살던 곳이 가장 어지러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울은 다른 의미로 만만치 않았다. 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통령이 된 이가 있었다.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암살당하는 해라고 하는데, 누군가를 절벽으로 떨어뜨리면서까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이효선은 공장에서 구르다시피 해도 가끔 참을 수 없는 궁핍함을 느꼈는데, 경제는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그해 쌀 작황이 풍년이라고 뉴스와 신문은 떠들어댔다. 서울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1981년은 바보가 되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 불협화음이 울려 퍼지는 시대에 이효선,  그리고 함께 사는 홍서영은 ‘일요일 밤의 대행진’을 보며 킬킬대는 게 다였다. 


 그러다 이사를 하면서 공장을 그만뒀다. 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음 깊이 묻어두려고 해도 김영생이 불쑥불쑥,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와서였다. 이미 경악스러운 것들을 보고 자란 터라 서울살이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이효선의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것들이 차고 넘쳤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걸 홍서영에게 서럽게 울며 토로할 때마다, 자꾸 그런 마음이 들었다. 


 김영생도 마찬가지였나. 김영생이 이래서 연기를 마시며 까맣게 타들어 간 건가. 전화가 올 때마다 별스러운 농담을 던지는 걸 듣고 웃기 바빠서 김영생의 안부를 제대로 묻지 않은 게 죄스러웠다. 공장에 신입이 들어왔을 때, 그들이 텃세와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을 때 괜찮냐고 물어 봐주는 건 시키지 않아도 이효선이 했는데,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자꾸 김영생이 겹쳐 보였다. ‘괜찮으세요’라는 이효선의 말이 되돌아와 가슴에 가시로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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