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람들 12
같이 그림책 아카데미를 다녔고, 지금도 연락하는 유지라는 친구가 있다. 유지는 기발하고 사랑스러운 상상력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딱딱한 발표시간에도 그녀의 원고를 함께 읽으면 우리는 유쾌해졌다. 그런 그녀의 고민이 있다면 바로 글쓰기. 내가 보기엔 유지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니다. 머릿속에 있는 상상력이 그 누구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것이라서, 꺼낼 엄두를 못 내는 것 뿐이다. 그걸 연습하는 방법으로 유지는 그리기와 글쓰기를 생각했다.
그림은 삽화 학원에서 배우고 있고, 이제 글쓰기만 남았는데. 평소에 유지는 글쓰기에 대해 종종 질문하곤 했다. 처음으로 같이 백반집에서 밥을 먹었던 그날, 유지가 내게 했던 첫 질문은 100일 글쓰기였다.
“완. 100일 글쓰기 했죠? 어땠어요? 많이 는 것 같아요?”
“글쓰기도 근육 같은 거라, 안 하면 근육 빠지듯이 퇴보하고, 또 지속하면 어느 순간 늘고, 그래요.”
조언은 아닌데, 조언하는 것 같고. 뭔가 쑥스럽다고 생각하며 괜히 앞에 놓인 고등어구이 살점을 떼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 이후에도 유지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지속해야 하는데 어려워요, 완은 요즘에도 글을 쓰나요. 그런 유의 고민들. 나도 매일, 지난하게 했던 고민이었다.
. 나중에 유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완처럼 돈을 주고서라도 글을 쓰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다고. 나도 비슷한 마음에 신청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유지에게 보냈다.
사람들은 글쓰기가 아름다울 것이라는 환상이 있는데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라고. 적어도 내겐 글쓰기는 정말 현실이고, 잘 써지지 않으면 떼굴떼굴 구르기도 하며 머리를 쥐어뜯기도 한다고. 결과물이 좋아야 기분이 좋지, 그렇지도 않으면 망친 기분으로 노트북을 쾅 내리치듯 덮는다고.
그때의 내게 글쓰기는 현실인 동시에 마치 친해졌다고 자신만만한 시기에 확 돌아서버리는 새침한 친구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이유는, 나로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조금 쑥스러운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뭔가 찾게 될 거라고 말했다. 100일 글쓰기를 하며 내가 찾은 것과 다른 뭔가의 것을, 유지가 유지가 되게 만드는 것을 찾게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찾아보겠노라고 그녀가 다짐했다. 유지라면 찾고도 남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무한한 마음으로.
녕 못지않게 유독 마음에 담기고 시선을 잡는 사람이 유지였기 때문에, 언젠가 그녀와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고 싶었다. 기대된다고, 꼭 읽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유지는 말했다. 나도 기대된다. 맨 처음, 지친 표정으로 강의실에 들어선 유지를 기억한다. 그림책을 만들며 되찾은 활기가 얼마나 빛났던지. 어둠은 빛이 빛 되게 하는 데 꼭 필요하니까. 그녀가 가진 어둠마저도 지금의 빛나는 시간을 위해 뒷받침되었다고 느꼈다. 글쓰기를 통해 찾은 것은 또 얼마나 새로울지, 얼마나 고유할지. 그래서 얼마나 더 아름다울지, 그것을 이야기하며 빛날 그녀의 얼굴이 나는 너무나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