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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n 29. 2022

무녀도 초분

한 발 늦었다. 초분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그것도 벌써 7~8년 전이다. 소식을 전하는 동네 아주머니의 대답이 무척 싸늘하다. 처음 무녀도 초분을 찾아왔다고 소개할 때부터 직감했던 반응이었다. 방금 전까지도 호의적이던 얼굴에서 돌연 웃음기가 사라지고 바짝 경계하는 눈빛이다.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체념하고 돌아서는 뒤통수로 말 한마디가 짱돌처럼 날아온다.

“넘의 집 무덤을 너나 헐 것 없이 사진 찍어 대 싸니께 누가 좋다 혀?”     



낭패였다. 더 늦기 전에 고군산 일대 유일하게 남아 있다던 무녀도의 초분을 사진에 담으려고 왔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할 수 없이 장자도로 넘어가는 길모퉁이 ‘초분 공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꼴이 말이 아니다. 명색이 공원인데 우거진 잡풀 사이에서 벤치 하나 찾을 수 없다. 몇 가지 형태의 초분 모형을 지어놓고 곁에 안내판 하나씩을 세웠는데, 덮어둔 이엉 여기저기 지푸라기가 빠져 쑥대머리 마냥 흉물스럽다. 벗겨진 초가 틈으로 드러난 철골 골격이 성의 없이 흉내만 낸 모형 티가 적나라하다. 담당 부서에 전화했더니 그곳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다는 답변과 동네 주민들이 나서서 청소해야 하지 않겠냐는 반응이다. 사실 귀하게 남겨진 풍습이지만 섬을 찾는 일반인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는 아니다. 행정기관의 입장도 그렇고 초분을 찾아온 외지인을 대하던 주민들의 반응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렇다 해도 이왕 조성해놓은 시설인데 아쉽기도 하고 착잡하다.              

일종의 풀 무덤이라 할 수 있는 초분은 임시 묘다. 시신을 바로 매장하지 않고 ‘덕대’라고 불리는 돌 기단 위에 모시고 지푸라기로 이엉을 엮어 덮는다. 2~3년 정도 육탈이 되기를 기다렸다 좋은 날을 받아 뼈만 간추려 정식으로 매장한다. 유교식 장례보다 훨씬 이전부터 내려오는 원시적인 풍습이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전라도와 서해안 일대 섬 지역에서는 간혹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유난히 섬과 해안지역에 초분 문화가 자리 잡은 이유는 아마도 바다를 끼고 살아야 하는 삶 때문으로 이해된다. 자식이 멀리 뱃일 나간 사이 돌아가신 부모의 장례를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 테다. 혹시라도 매서운 겨울 날씨면 젊은 사내들도 없이 땅 파는 일조차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보내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도록 해서 미련 남기지 않고 망자를 보내려면 두 번의 장례가 결코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신안군 청산도에서는 매년 특별한 장례가 열린다. 영화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됐던 장소로 유명세를 탔던 섬이다. 남해의 끝자락 완도에서도 여객선으로 한 시간 남짓 더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섬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마치 타임머신에서 막 내린 것처럼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유채꽃이 지천으로 펼쳐진 풍경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경운기 대신 소로 논을 가는 농부를 만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소달구지를 얻어 탈 수도 있다. 노랗게 찾아온 봄철에 맞춰 매년 ‘청산도 슬로 걷기 축제’가 열린다. 한 달가량 계속되는 축제 프로그램 중 ‘초분(草墳) 시연’ 행사가 있다. 경험 많으신 동네 어르신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장례를 재연한다. 섬 전체가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는 남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몇 해 전 송영옥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선유도 망주봉 자락에 복원된 오룡당을 관리해오던 당산 할매였다. 그녀의 장례는 군산시 한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자식들이 그곳에 살기 때문이다. 섬 주민들도 배를 타고 육지로 조문을 다녀왔고 할머니도 육지에 모셨다고 들었다. 할머니만이 아니다. 섬에서 나고 한평생을 섬에서 지냈어도 이제 사람들은 섬에 묻히지 않는다. 조상들로 거슬러 간 뿌리는 섬에 있다지만 자식들이 뻗어나갈 줄기는 더는 섬이 아니다. 섬 노인들은 앞서 떠나간 이웃들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알고 있다. 아니 그것은 이미 오래전 뭍으로 자식들을 떠나보낼 때부터 각오한 죽음이었다.    

  

얼마 후 다시 찾아간 초분 공원은 사라지고 없다. 아예 철거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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