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착각

시간여행자

by 이윤인경

당신은 꽤 예민한 성격을 가졌어요

입술을 쓰다듬는 나의 손가락을 베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아랑곳 없이

입을 닫아 버리네요


당신의 말에서는 닥나무 향이 나네요

가슴의 보풀이 추억을 간질이니

떨어지는 눈물을 안은 당신은 이 슬픔을 기억하나요

젖어 제 몸을 무겁게 누르다가

가슴에 엉겨붙는 당신을 밀어내었더니

미련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주어를 알 수 없는 문장이 저마다 아우성이네요


달리 내 입술은 말라가요

읽을 수 없는 책장의 허리를 젖히고는

고백의 말들을 입술주름 사이에 쟁여 두어요

간혹 파고드는 몇 마디를

억지로 떼어 내다 동티가 나

당신의 입술을 붉게 물들일지도 몰라요


나도 꽤 당찬 성격을 가졌어요

상처가 밀어내는 붉은 단어들을

혀로 지그시 누르고는

참지 못한 말들은

입 안에 고았다가 삼켜 버려요

아직 시가 되기 이르거든요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젖은 말들이 향기를 뱉고

따라 들어오는 온기에 가슴을 열어요

돋아나는 보풀이 발바닥을 간질이나 봐요

이윽고 당신의 말들이 춤을 추네요

마치 시가 된 것처럼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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