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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Mar 13. 2021

플라타너스는 싫으면서 낭만적이다

4월 마지막 날의 일상

4월의 상해는, 플라타너스(法国梧桐)


4월의 상해는, 플라타너스다.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거의 2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2년 전 상해의 4월을 떠올리면 플라타너스와 그가 내뿜어내던 꽃가루(法国梧桐 花絮)만 생각이 난다. 3월의 상해가 미세먼지였다면, 4월의 상해는 플라타너스 꽃가루로, 덕분에 상해에 온 뒤 한 두 달 동안 내 호흡기는 무척 고생을 했다. 한동안 궁금해서 바이두에 꽃가루(花絮)를 잔뜩 검색했는데, 중국인들도 이 꽃가루가 날리는 게 싫기는 매한가지인지 도대체 왜 나무에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글들이 많았다.


오동나무 꽃가루 사태는 사실 상해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난징으로 지역 연구를 갔을 때도 똑같이 당한 일이 있다. 어찌나 꽃가루가 심하게 날리는지 밖에서 조금 걷기만 해도 코가 근질근질 재채기가 나고, 화장이라도 하고 나가면 눈썹, 이마에 어찌나 붙어대는지, 수정 화장도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비가 살짝 오면 이 꽃가루도 잠시 소강상태를 맞는데, 이건 미세먼지랑 똑같다. 다른 점은, 비 온 뒤 바닥을 보면 아주 명확하게 꽃가루가 잔뜩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정도?

 

플라타너스의 중국어 이름은 프랑스 오동나무(法国梧桐)이다. 프랑스 선교사가 상해에 들어와서 심기 시작한 나무라고 한다. 그 이름 때문에 오동나무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는데, 브런치의 친절한 작가님 덕분에 이 나무와 오동나무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저 당시 플라타너스가 중국으로 들어올 때, 적절한 중국어 이름을 찾다가 비슷한 종류의 나무 이름 중에서 찾게 되었는데, 그 때 선택된 것이 오동(梧桐)이었을 뿐이었단다. 


어쨌든, 나의 4월을 이렇게 플라타너스 꽃가루 속에서 보내게 하다니! 외출을 해도 꽃가루가 신경 쓰여서 많이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하고! 말도 못 하는 꽃가루와 나무에게 어찌나 불만이 많았던지. 하지만 이런 플라타너스도도 가끔 낭만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으니, 그건 바로 이 나무가 심긴 조용한 가로수길을 걸어갈 때다. 교통대 캠퍼스에도, 교통대에서 프랑스 조계지로 연결되는 길목에도 모두 이 나무가 심겨 있었는데, 비 온 뒤 조용한 길을 나 홀로 산책하며 느끼는 기분이 꽤 괜찮았다. 플라타너스는 싫으면서 낭만적이다.




집 근처, 고양이 발견!


길고양이도 지역 주민의 성향을 보고 보금자리를 잡는다고, 다른 길에서는 통 보이질 않는 길고양이가 우리 아파트 주변엔 참 많았다. 아마도 아파트 주민 중에 인심 후한 서양인들이 많고, 조경이 잘 되어 있어 숨을만한 풀숲이 많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사 온 뒤로 고양이가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었는데, 이날은 우연히 전신이 하얀 고양이를 처음 만나 사진을 찍어봤다. 두리번두리번, 무언가를 찾아 돌아다니는 모양.




인도 커리를 집 앞에서 즐기세요


월말이다. 상해에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을 간단히 정리하고, 다가올 새로운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해 회사에 보고해야 하는 시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보고서에 써넣고, 같이 파견 나온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특이한 것을 찾다가 우연히 집 앞에 평이 좋은 인도 커리 집이 있는 것을 발견. 이름은 Masala Art, 중국어로 하면 향료예술(香料艺术). 이름부터 어쩐지 꽤 믿음직한 인도 레스토랑이다.



따중뎬핑에 무려 14년 연속 수록되었다는 이 집. 식전에 주는 간단한 요깃거리부터 난, 커리에 이르기까지 다 맛있다. 주변에 먹고 있는 사람들을 슬쩍 보니 다 고향의 음식을 즐기고 있는 듯한 외국인. 어쩜 손님까지 완벽하다! 직원 분들도 물론 그 지역 분들. 어째,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몰랐는데 이 집, 한국에서 발생된 상해 여행책에도 상해 맛집으로 소개되고 있는 곳이었다.



상해로 오기 전, 한국 집 근처에 직원도 네팔 분이고 손님들도 대부분 본토 분들인 인도 커리 식당을 자주 찾았다. 한국식으로 변화되지 않은 현지의 맛을 느끼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상해에 와서도 이런 본토에 가까운 커리 집을 집 근처에서 발견하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사소한 것이지만 왠지 한국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도 했고. 이상하다. 중국에서 이역만리 인도 요리를 먹으면서 한국에 가까워진 기분이 들다니. 나, 꽤 한국이 그리웠구나. 상해 온 지 2개월 차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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