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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Mar 22. 2021

잠복 (潜伏)

한 번 튕겨서 더 소중한 드라마


■ 제목: 잠복 (潜伏, 쳰푸)

■ 장르 : 드라마 / 멜로 / 역사 / 스파이

■ 년도 : 2009

■ 감독 : 姜伟

■ 주요 배우 : 孙红雷,姚晨,祖峰,吴刚 등



오늘 소개드릴 드라마는 2009년 방영한 스파이 소재의 드라마, <잠복(潜伏)>입니다. 또우빤 평점이 9.4점, 플랫폼 내 중국 대륙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9위를 한 작품이니, 그 인기나 재미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실 분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와 막상막하인 드라마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이다음에 소개드릴 <여명지전(黎明之前)>인데, 어디까지나 '막상막하'지, 어느 드라마가 더 낫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동일한 시기를 다룬 스파이 드라마, 중국어로는 첩전(谍战)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드라마는 꽤 많습니다. 이미 소개드린 드라마나 영화 중에서도 <위장자(伪装者)>, <북평무전사(北平无战事)>, <색, 계(色, 戒)>, 이렇게 세 편이나 이 시기를 다루고 있고, 이 시기를 다룬 작품들은 대체로 수작들입니다. 중국의 근현대사 중에서는 꽤나 중요한 시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검열이 꽤 엄격하거든요. 물론 그래서 체제에 반하는 내용은 일절 방영이 안 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만.


한 때 이런 스파이 드라마에 완전히 빠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시작은 <위장자(伪装者)>였습니다만, 보다 보니 다른 드라마들도 다 재미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특히 2중 스파이에 그치지 않고, 3중, 4중 등 한 명이 다양한 단체의 여러 신분을 담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러고 살지 싶으면서도 계속 다음 편을 누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군요. 


제가 이렇게 스파이 드라마에 빠져있으니, 제 위챗 모멘트를 보고 중국인 친구가 이 드라마를 소개해줍니다. 제목부터 느낌 오죠. <잠복>이라니! 당장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모든 플랫폼에 다 유료회원 자격이 있던 저는 Tencent에서 이 드라마를 발견했고, 1회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지인 추천! 너무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8화를 볼 차례가 된 날 플랫폼에 들어갔더니 이 드라마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영상 자체가 비활성화가 된 것이어요. 멀쩡히 보고 있던 드라마를 중간에 볼 수 없게 된 겁니다. 이렇게 슬플 데가!


그렇게 몇 달인가를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끼며 살던 어느 날, 오랜만에 다시 Tencent에서 이 드라마를 검색했더니 다시금 모든 회차의 재생 버튼이 활성화가 되어있는 상황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무려 반년 넘게 지난 2019년 12월의 어느 날이었죠.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또다시 막힐까 두려워 바로 남은 회차를 모두 다운로드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유료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쉼 없이 남은 회차를 보기 시작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비활성화는 플랫폼의 저작권 만료 및 재계약 문제로 발생한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어찌 됐든, 이렇게 한 번 튕기고 나서 다시 보게 되어서 그런지 이 드라마는 제게 더 각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면 좀 장난 같으시겠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물론 드라마 자체의 스토리가 매력적이고 배우들 연기가 훌륭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저의 이 드라마에 대한 호평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흠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드라마는 다른 스파이 드라마와 비슷하게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조직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짜 부부로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는 <생사선(生死线)>에도 나오죠. 두 사람은 그 배경도, 성격도, 어느 것 하나 맞는 것이 없는 아주 상극인 사람들인데, 조직의 명령으로 처음 본 그날부터 가짜 부부 행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가짜 부부 행세를 하며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은 집에 숨겨둔 무전기로 상부에서 들어오는 비밀 명령을 해독하고 관련된 사람에게 전달하는 등 임무를 수행하는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너무도 당연하게도) 두 남녀는 점점 진짜로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개인의 감정을 뒤로하고 임무를 완수하게 되죠. 


사실 너무도 전형적인 이야기인데, 이 드라마가 이토록 흥행했던 이유는 제 생각엔 배우 캐스팅에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쑨홍레이(孙红雷), 여자 주인공을 맡은 야오천(姚晨) 모두 이전 매거진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배우들인데, 쑨홍레이는 이지적이면서 냉정하고 감정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연기를, 야오천은 약간 푼수 같으면서도 농촌에서 갓 올라온 것 같은 연기를 정말 맛깔나게 소화해냅니다. 둘 다 제 인상에는 약간 코믹한 느낌이 있는 배우들인데, 역시 정극을 연기할 때 배우들은 참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쫀쫀한 스토리라인 덕에 이 드라마는 많은 중국인에게 사랑받는 스파이 드라마가 됩니다.



위 사진은 드라마 26화에 나오는 장면인데, 제가 보면서 순간 빵 터졌던 장면입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서로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고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인데, 애드립인지 실제 배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자 주인공: 당신, 입이 좀 작은 딸을 낳을 수 있겠어?

여자 주인공: 나 눈이 더 큰 아들도 낳을 수 있다고~


야오천이라는 배우는 데뷔작이었던 <무림외전(武林外传)>에 나왔을 때부터 입이 크다고 놀림을 많이 받았고, 쑨홍레이라는 배우는 보시다시피 눈이 작기로 참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서로 저런 디스전을 펼치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장면이 애드립인지 아닌지 너무 궁금한데, 어디 명쾌하게 해설해주는 곳이 없네요.


사실 뒤에 나오는 <여명지전(黎明之前)>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스파이 소재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외국인 시청자로서 장애가 되는 건 한 가지입니다. 배경지식. 이 시기가 워낙 혼란한 시기라 각종 정치단체나 파벌들이 난립했고, 그 온갖 단체들이 서로 혼전을 펼쳐서 배경지식이 없으면 대사를 바로바로 따라가기가 사실 좀 힘에 부칩니다. 그래서 스파이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땐 마음의 준비를 좀 하고 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머리가 아프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역사는 좀 특별한 면이 있고, 또 스토리나 배우의 연기나 모두 흠잡을 데 없는 드라마가 바로 이 <잠복>입니다. 게다가 30부작이라는, 다른 드라마 대비 비교적 양심적인 길이를 자랑하기도 하고요. 혹시 쑨홍레이나 야오천이라는 배우를 좋아하신다면 이 드라마는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드라마를 보고 나서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오늘 리뷰 마치겠습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지난번에 8회까지 봤는데 갑자기 비활성화됐었는데, 며칠 전에 갑자기 다시 생겼다! 너무 기뻐서 바로 남은 회차를 다 다운로드하였고, 방금 전에 결말을 봤다. 쑨홍레이와 야오천이 연기를 정말 잘했다. 특히 쑨홍레이.. 보통 사람은 안경을 쓰면 차갑게 보이는데, 이 사람은 안경을 쓰니까 오히려 더 부드러워 보인다. 신기함.. 하지만 결말이 너무 비극적이다. 꼭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 "혁명"이라는 글자 앞에서 주인공 두 명은 모두 그저 장기판의 말일뿐이었던 걸까? 사진 2와 사진 3은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훌륭했던 디스전이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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