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01_01
사실 난 가수 이승윤의 팬이다. 최근에는 콘서트도 갔다왔지만 어느정도 팬이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팬의 척도를 묻는 질문은 늘 어려운 것 같다. 생일 까페도 갔다온 적 있지만 두번뿐이고, 콘서트도 일년에 많이 가면 세번까지 갔으나 최근에는 건강에 부쳐서 일년에 한 번으로 줄였다. 매일같이 이승윤의 노래를 듣지만 라이브 방송이나 팬카페를 구독하진 않는다. 이 정도 마음이면 어느정도 좋아하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갔다온 콘서트의 기억은 특별했다. 좋긴 했는데, 여러가지 의미로다가.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마음먹고 티켓팅을 한 게 아니라 남은 유일한 자리에 앉겠다고 아무 자리나 앉았다가 일어났다. 남은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 애매한 자리다. 당연히 나는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앉아야 했고 조명줄이 보이는 곳에 내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올라갈 때부터 절망을 느꼈다.
네발로 기어서 올라가니 누군가 손을 잡아 끌어줬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요. 하고 부끄러워 변명해보니 그런것 같다고 다정하게 위로도 해줬다. 겨우 앉아서 공연을 보는 데 이승윤은 아주 작아 보이고 내 자리는 너무 높고 자꾸 떨어질 것 같아서 심장이 두근대다 못해 힘든 증상이 계속됐다. 결국 제대로 집중해서 본건 초반 30분에서 한시간 정도였고, 제대로 된 신곡이 나오는 후반 1시간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어떤 공포는 또 고통은 사랑으로 해결이 안되는구나. 그동안 나는 인생사에 모든 문제가 대부분 사랑으로 봉합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생리적인 문제에는 전혀 불가능했다. 좋은 건 좋은 거 였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공연은 좋았고 하지만 무서웠다. 공연을 보고 난 후에도 당분간 그때의 무서운 기억이 남아서 노래를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나는 그동안 모은 굿즈들을 다 팔고 한동안 이승윤을 탈덕하겠다고 내 삶에 너무 깊게 들어와 있어서 다른 노래도 좀 들어보겠다고 결심한 적 있었다. 당근마켓에 모아놓은 굿즈를 팔고나니 이걸 왜 파시냐고 되려 질문도 받았었다. 그래놓고 6개월만에 결국 다시 불타올라 간 공연에서 문득 이런 피곤함을 느끼고 만 것이다.
작년까지의 안좋은 기억들도 그렇게 쉽게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안고 있는 나의 불안이 그렇다. 나는 심하게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병을 갖고 있는데 시험을 보거나 사회생활을 할때 항상 문제가 됐다. 올해는 쉬어가기로 하고 새로운 공부를 준비하면서도 계속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시험장 가서 덜덜 떨면서 한마디도 못하고 오는 건 아닐까?
살면서 겪었던 안좋은 기억들이 자꾸 올라오기도 할 거다. 그렇지만 내가 평생 이승윤 노래를 듣지 않을까? 그럴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평생 안 듣고 살기엔 이승윤의 노래들은 너무 좋고, 나는 또 잠깐 쉬면 다시 떨리는 마음으로 노래를 듣고 좀 더 좋은 자리에서라면 재미있게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것들이 그렇다. 입덕은 요란하게 탈덕은 조용하게 하라지만 살다보면 탈덕이 더 지지부진 할 때가 많다. 회전문처럼 다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올해의 첫날을 나는 집에서 느슨하게 보냈다. 하루종일 게임도 하고 공부도 하고 불안해 하면서 이도저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날이다. 하지만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이 순간에 충실하면 모든게 의미있어진다. 만일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승윤의 <캐논>을 들어보기를 바란다. 나처럼 사랑하던 뭔가가 잠시 힘들다면 <내게로 불어와>를 한 번 들어봐 주면 좋겠다. 이승윤의 노래는 정말 좋으니까.
사랑은 모든 걸 해결하진 못하고 언제나 한결같을 순 없지만 그래도 바람처럼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이승윤의 노래처럼, '폐허가 된 곳에서도 사랑은 있었다'고 '폐허가 된다 해도 너를' 사랑하겠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