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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02. 2021

뒷통살을 먹을 수 있는 가게

아이들이 나무처럼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 자녀를 둔 집이라고 덕담도 받고 놀림도 받으며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경제활동을 하는 첫째와 둘째, 그리고 수시 전형 시험을 마치고 발표를 앞두고 있는 막내딸 이렇게 다섯 식구가 오랜만에 같이 앉았다. 막내가 태어난 그 해 우리는 두 아이와 아내 등에 업힌 막내를 데리고 집 근처 오겹살 집에 갔다. 큰아이와 둘째 아이 분유값과 기저귀 값을 따지던 시절이라, 고기를 2인분을 시켜야 할지 3인분을 시켜야 할지 매번 망설였던 기억들이 안개처럼 아득하다. 오겹살은 팍팍한 삶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막내의 존재는 점점 더 넓고 깊게 우리 가족의 행복을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어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탄생하는가 ?


우주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태어날 확률은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의 길이가 10만 광년이라는데  한번 계산해보았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빛의 속도로 8분 30초로 1억 5천만 km, 여객기는 시속 800km. 187,500시간이므로 21.4년이 걸린다. 은하계에서 사선으로 3만 5천 광년 떨어진 지점에 태양계가 있으니 지구의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 인류의 역사 수백만 년 동안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 태어날 확률은? 상상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내가 태어나고 아내가 태어나고 우리 아이들이 우리를 통해 태어났으니 이 다섯 식구가 같이 사는 것 자체가 거대한 기적이다. 부모님과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뒷통 살이라고 메뉴판에 적혀 있어서 찾아보니 뒷통 살, 꼬들살, 뒷덜미 살 모두 백과사전에는 없다. 혹시 몰라 뒷고기를 찾아보았다. 뒷고기는 경남 김해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선호 부위를 잘라내고 남은 상품성이 낮은 고기들을 모은 것을 뜻한다. 주로 돼지머리 부위를 중심으로 사용하는데 눈살, 볼살, 혀살, 코살, 턱밑살, 머릿살, 항정살 등 한 마리당 나오는 물량이 적어 상품으로 유통되기 어려운 잡육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하 이거 근본이 없는 고기로구나. 그래서 더 친근하다. 모든 우연들이 겹쳐야 태어나는 만큼 사람의 근본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그저 태어난 것이 고마울 뿐이고 이렇게 근본 없는 고기를 마주 대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니....


뒷통 살은 최근 이 가게에서 처음 알게되었다. 삼겹살보다 기름이 적고 목살의 퍽퍽한 맛을 넘어서는 적당한 기름기에 살도 쫀득해서 손이 자꾸 가게 된다. 위드 코로나를 앞둔 주말이라 좌석이 꽉 찼다. 갑자기 2년 전으로 돌아간듯한 착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늘 처음에 반찬으로 주시던 소고기 뭇국이 동이 나고 말았단다. 얼큰 칼국수도 주문 뒤 30분은 소요된다고 했다. 장사가 잘되는 집에서 북적거리는 것이 성가시지 않고 반갑게 느껴지는 것도 코로나의 영향이리라.

2011년 동교동에 살던 때 <땡땡이 소금구이>라는 가게를 자주 찾았다. 소금구이 고기도 맛있었지만 특히 고기를 찍어먹던 소스는 신문 맛 칼럼에 등장할 정도로 맛있었다. 기차가 다니지 않던 기찻길을 오가던 재미도 있었다. 그 가게는 우리가 이사 온 뒤로 후배들과 그 거리를 찾았는데 사라졌다. 소스에 대한 기억만이 남아있다가 오늘 이 가게의 소스를 접하면서 그 시절 소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뒷통 살의 질감과 식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입안 가득히 퍼지는 소스의 위력에 감탄한다. 숙성된 샐러리 초무침과 구운 마늘, 상추 파무침에 냉면을 곁들여 상추 한쌈을 먹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문득 작년 가을 폐업을 한 닭꼬치 가게를 떠올렸다. 맥주와 닭꼬치는 저녁 식사 후 찾게 되는 곳이라 영업시간 제한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크게 입었다. 두 분 사장님의 순박한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으니 어디서 다시 가게를 여실 수도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큰 아이는 인턴 2주 차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서 이제 완전히 벗어난 듯 자신감에 찬 얼굴이다. 한참 고기를 먹을 무렵 둘째가 막 트레이닝 레슨을 마치고 도착한다.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눈다. 고기를 굽는 일이 즐겁다. 8인분을 다 먹었는데 고기 굽느라 조금밖에 못 먹었다고 1인분을 추가하려 하자 아내가 난색을 표한다.


그 아내의 표정을 읽고 둘째 아들이 얼른 계산을 한다. 아내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대견해 눈물을 흘린다. 지나온 세월 아이들이 이렇게 성장하는 동안 별로 할 일을 다하지 못한 나는 겸연쩍기도 하고 한편으로 뿌듯하기도 했다. 세월의 무게는 쉽게 지친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위로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기에.


갑자기 나무가 생각났다.

김광석의 <나무>라는 노래.

우리 아이들아 !  

광석이 형 노랫말처럼 앞으로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쳐나가기 바란다.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면
눈부신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소
누구 하나 나를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소 오오!!


한결같은 망각 속에
나는 움직이지 않아도 좋소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소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소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분이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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