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딴짓하는 의대생, 조금씩 환자에게로]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끊임없이 살아 숨 쉰다. 그래서 나의 어제를 기억하고, 그 기억들은 마치 거울처럼 오늘의 나를 솔직하게 비춘다. ‘얼굴에서 인생이 묻어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의과대학에서의 땀내 나는 수업을 끝낸 의대생들은 의사가 되기 전, 병원에서 환자를 만난다. 책과 강의로 익힌 의학 지식을 병원 구석구석에서 직접 경험하며 몸으로 익힌다. 의대 수업이 교과서라면, 병원 실습은 생생한 동영상과 같다. 수업 못지않게 실습도 매우 중요하다. 진짜 의료는 머릿속이 아니라 손끝과 발끝에 가까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의 손을 잡고 대학병원 진료실로 함께 들어간 기억이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교수님이 근엄한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셨다. 그런데 그분의 등 뒤로 또 다른 흰 가운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비교적 앳된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은 교수님의 손짓 하나에 민첩하게 반응했고, 조그마한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그들은 의대생이었고, 그리고 오늘의 나였다.
신장내과 외래 진료를 참관하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 진료실 앞에는 벌써부터 환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 환자가 차례를 맞아 진료실로 들어왔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거무스름한 얼굴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아저씨였다. 교수님 어깨너머로 의무기록을 슬쩍 확인해 본다. 20년 넘게 당뇨병을 앓아 왔지만, 혈당 조절에 실패한 탓에 얼마 전부터 신장에 합병증이 생겼다. 병원 방문도 뜸하던 그가 결국 최근 말기 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지난 두 달 동안 잘 지내셨어요? 먹는 거 조절이랑 운동도 열심히 하셨고요?”
“네, 교수님. 제가 지난번에 교수님한테 혼나고 평생 해오던 사업도 다 정리했습니다. 두 달 동안 매일 운동하고 먹는 것들도 싹 바꾸고 왔습니다. 저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아저씨는 지난 두 달 동안의 노력을 푸념처럼 털어놓았다. 듣고 있자니 그럴 만도 했다. 나름 인생의 큰 결단을 내리고 건강 관리에 집중해 온 게 표정에서도 묻어났다. 약간 울먹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반응은 냉정했다.
“유감스럽지만, 신장 기능은 두 달 전 그대로입니다. 이미 망가진 신장이 두 달 만에 갑자기 좋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 투석을 고려하셔야겠습니다”
“아니, 교수님, 그래도...”
아저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가만히 앉아 있는 교수님을 향해 왜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느냐며 닦달한다. 투석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거냐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다음번에 더 노력해 보고 오겠다고 애원해 보지만 교수님은 미동도 없다. 한참 동안 억울함을 토로하던 아저씨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진료실을 뛰쳐나갔다.
신장은 우리 몸에서 찌꺼기를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평소에는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리나 얼굴이 붓고,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며, 피부색이 이상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될 때쯤 병원에서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신장은 인생의 끝자락에서야 망가지는 장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장은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모두 기억한다. 평소 즐겨 먹던 짭조름한 김치찌개, 밥 위에 올려먹으면 더 맛있던 젓갈, 허겁지겁 끼니만 때우려고 먹었던 햄버거, 콜라 같은 가공식품까지 신장은 다 알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밤늦게까지 깨어 있던 날들, 며칠씩 뜬눈으로 보냈던 밤들, 그리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맥주를 마셔 댔던 날도, 흩날리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순간들까지도, 신장은 묵묵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참고 또 참아오던 신장은, 결국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슬그머니 성적표를 들이민다. 놀라 달래 보려 해도 소용없다. 내 몸을 함부로 대한 대가는 결국 내가 치러야 한다. 수십 년간 ‘오늘까지만, 오늘 하루만.’이라고 스스로를 속였지만, 이제 몸은 더 이상 그 거짓말에 속아주지 않는다.
착잡했다. 언젠가 내 신장이 내게 내밀 성적표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다음 환자는 젊은 나이에 신장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 30대 남자였다. 만성 신부전 말기 진단을 받고 투석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조절되지 않는 상태였다. 물 한 모금만 마셔도 몸에서 배출되지 않고 쌓여가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었다. 신장 이식밖에는.
수술방은 차갑고 고요하다. 주기적으로 삐빅거리는 기계음, 심박동을 알리는 알람소리. 그리고 침대 위에서 수술 가운 하나만 걸친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환자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가운과 장갑을 착용하는 의료진들. 이내 수술이 시작되면 전기칼이 피부를 가르며 치직하고 불꽃을 튀긴다. 비릿한 살 타는 냄새가 수술방을 가득 채운다.
신장 이식 수술은 일반 수술과는 다르게 두 개의 수술방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주는 사람에게서 떼어낸 신장을, 받는 사람에게 신속히 이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로 비뇨기과에서 신장을 떼어내고, 혈관외과에서 이식한다.
“이거 반대로 쓰인 거 아닌가요?”
수술방 칠판에 쓰인 환자 정보를 보고 순간 헷갈렸다. 신장을 주는 사람이 말기 신부전 환자의 60대 중반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의 신장 기능도 절반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신장이 아무리 두 쪽이라지만, 한쪽을 내어주고 본인도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교수님 등뒤에서 수술을 지켜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맨 몸으로 차디찬 수술대 위에 누운 아버지. 파란 수술복을 입고 수술모를 둘러쓴 의료진이 그를 둘러쌌다. 배꼽에 작은 구멍을 내고 기다란 복강경 수술 기계를 몸속으로 넣는다.
“PK 선생님, 화면 봐요. 이거 보여요, 이거?”
화면 속, 배 뒤쪽에 얌전히 자리 잡고 있던 강낭콩 모양의 콩팥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수님이 푸른빛을 띤 콩팥을 감싸고 있던 막을 벗기고, 여러 조직들을 깔끔하게 분리했다. 그러자 콩팥에 피를 공급하는 신장 동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근, 두근.”
생각보다 두껍고 활력 넘치는 모습이었다. 교수님은 큰 집게 두 개로 신장 동맥을 단단히 조였다. 혈류를 차단하고 콩팥을 떼어내기 위해서다.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제자리를 지키던 두꺼운 동맥이 꽁꽁 묶이는 순간, 마치 내 목줄이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콩팥이 몸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피가 콩팥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교수님은 조심스럽게 떼어낸 신장을 아이스 박스에 담는다. 그 자리에 있던 간호사, 전공의, 의대생 모두 숨을 죽였다. 콩팥을 받을 혈관외과 의료진들도 수술방 문 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냉랭한 공기 속, 시간마저 멈춘 듯 긴장감이 맴돌았다.
옆 수술실 문이 열리고 콩팥을 전달받은 혈관외과 의료진들이 돌아왔다. 이미 수술대에는 거구의 아들이 누워있었다. 배는 위아래로 크게 열려 있었고, 그 안쪽으로 가져온 신장이 자리 잡았다. 의료진은 혈관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연결해 나갔다. 마지막으로, 마치 닫아 두었던 수도꼭지를 트는 것처럼, 신장 정맥과 동맥을 막고 있던 집게가 풀렸다.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
가시고기. 자식을 낳고 기력이 다할 때까지 품어주다, 결국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고 생을 마감하는 생명. 아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제 몸 한쪽을 기꺼이 내어주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 자신의 생명줄이 조이는 듯한 아픔을 견디면서도, 따뜻한 피를 뚝뚝 흘려가며, 추운 수술방에서 떨고 있을 아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그 마음. 십 수명의 의료진이 숨 죽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 무언가.
아버지가 건넨 것은 신장이 아니었다. 그의 생명이었고, 그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아들에게 보내는 가장 뜨겁고도 간절한 사랑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그 사랑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 피 흘려 건넨 그 마음을 잠시 맡아, 온 힘을 다해 전달할 수 있는 영광.
그것이야말로, 의료진에게 주어진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