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재상을 받다

[chapter 5 딴짓하는 의대생, 조금씩 환자에게로]

by 이진규


‘너 정도 나이 먹었으면 얼른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해야지.’
‘남들 눈치도 좀 보고 살아야지. 어른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는 법이야.’


나는 스물아홉, 여전히 대학생이었다. 남들이 사회에서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있을 때, 나는 아직도 학생 신분이었다.


‘각자 자기만의 속도가 있는 거야. 꽃은 저마다 다른 계절에 피는 법이지. 나만의 길을 가면 돼.’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쥘 때면 조용하던 내 안의 목소리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너 도대체 언제까지 학생 하려고 그래? 너 친구들은 벌써 박사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는데, 너 정말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거야?’


애써 귀를 닫아보지만, 어느 순간 또다시 살아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삼촌~ 나랑 아이스크림 사러 가자~”


앙증맞은 몸짓, 총총거리는 발걸음, 그리고 치명적인 귀여움을 장착한 네 살배기 조카가 눈앞에 나타나면, 나는 속절없이 녹아내린다. 스물다섯,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한 누나가 아기를 낳은 뒤, 나는 조카가 성장해 오는 순간들을 함께했다. 갓난아이 시절, 옹알이를 하던 때, 배밀이를 하며 바닥을 기어 다닐 때, 그리고 어느새 두 발로 뛰어다니기까지. 그 모든 순간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나도 이만한 딸이 있을 나이인데...’


‘빨리 가는 것보다, 방향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강단에 설 때마다, 강연의 끝자락에서 꼭 당부하듯 전하던 말이다. 그러나 사실, 가장 듣고 싶었던 사람은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강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나약했다. 남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남몰래 신경 쓰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만큼, 아닌 척했지만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었다.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래서 격려가 필요했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는, 조금 늦었지만 늦은 게 아니라는, 조금 느린 듯해도 틀린 게 아니라는, “잘하고 있어." 그런 한마디가 간절했다.


“형님, 잘 지내고 계세요? 다름이 아니라, 대한민국 인재상에 도전해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대학 시절, 알고 지내던 동생에게서 오랜만에 도착한 안부 인사였다. ‘대한민국 인재상’이라는 단어에 순간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인재상은 매년 다양한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인 50명의 청년들에게 대통령이 주는 상이 었다. 패가와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20대 초반, 그 상에 호기롭게 도전했었다. 하지만, 다른 학과에서 지원한 똑똑한 경쟁자에게 밀려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거절은 언제나 아프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천재로 태어나지 못했으면 천재인 척이라도 하면 된다. 전에는 나보다 똑똑한 친구가 받았지만, 그 후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왔다. 땀과 노력으로 빼곡히 채운 20대라는 시험지에 점수를 매겨보고 싶었다. 좋은 점수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 내보기로 했다. 20대를 3000자 안에 차곡차곡 눌러 담았다. 자랑스러운 상장들로 빈 공간을 예쁘게 채웠다. 자기소개서에는 눈물과 콧물, 웃음과 울음, 피와 땀까지 모두 담았다.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의 때는 오지 않았다. 씁쓸했지만 이번엔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려니 했다. 수 없이 긁혀 어느새 딱지가 생긴 상처가 다시 긁힌다고 아프지 않은 것처럼, 겨울이 길어진다고 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러던 어느 날, 얼어 있던 공기가 서서히 풀리고,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아 연둣빛 녹음이 살며시 얼굴을 스칠 무렵,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고 나는 지원했다. 자기소개서에는 학년이 바뀐 것 외에 달라진 점이 없었다.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선택한 길을 걷고 있었고, 걸어온 발자국도 변함없었으니까.


“이진규 님은 대한민국 인재상 1차 서류 전형에 통과하셨습니다. 2차 면접 전형을 안내드립니다.”


오래간만에 새로 산 정장을 차려입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면접장은 예상보다 차분한 분위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고, 대화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젊어 보이는 교수님 한 분, 그리고 연륜이 느껴지는 교수님 한 분. 두 분과 마주 앉아 신나게 대화를 나누다 온 기분이었다. 면접실의 차분한 공기 속에서, 젊은 교수님의 따스한 목소리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처럼, 앞으로도 더욱 멋지게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 말 한마디에, 내 안의 불안은 잔잔한 호수 위의 잔물결처럼 부드럽게 사라졌고, 내 심장은 다시 한번 희망으로 가득 찼다. 결과가 어떻든,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았다.


“이진규 씨, 택배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여자친구 없이 맞이하는 영락없는 솔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괜히 마음이 울적하다. 그때, 기숙사로 정체불명의 택배가 도착했다. 대구시에서 온 소포였다.


“이진규 님, 2020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각자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바라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이끌어가는 리더로 성장하시길 기원합니다. - 대구광역시장 권영진”


편지와 상장, 그리고 부상으로 시계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나라에서 보내온, 예상치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나는 ‘너는 잘 될 거야’라는 말보다 ‘너는 잘 되게 할 거야’라는 말이 좋다. 잘 될 것 같던 일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누군가 ‘넌 잘 될 거야’라는 말을 해주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하게 된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부족했던 건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원래 안 되는 게 기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로 말이다.


달라진 건 없다. 서른을 앞둔 나는 여전히 대학생이고, 내 삶엔 아직 안 된 것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되게 하면 되니까. 그리고 내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나라에서도 응원해주고 있으니까.


서른 즈음, 아무래도 철 들 긴 글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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