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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단지 Sep 25. 2021

어디 가시려구요...

새벽이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부산에 있는 시누이였다. "엄마가 의식이 없다" 이 한밤중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꿈인가... 꿈 속인가... 꿈이야... 정신이 없었다. "듣고 있나. 엄마가 의식이 없다. 여기 병원이야" '꿈이 아니구나' 정신이 들었다. 주무시던 어머니가 컥컥 숨 막히는 소리를 내셔서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셨단다. 믿어란 말이야? 진짜란 말이야?


며칠 전 통화할 때도 아무 일이 없었는데. "시장에서 커다란 대봉을 사다 먹었더니 우찌나 단지. 사다가 애들도 먹이고 너도 먹어라" "어머니 대봉이 얼마나 비싼데요. 여긴 개에 만 원이에요" "아이고 뭐가 그리 비싸냐 좀 사다 보내야겠네" 그러셨다. 어머니 잘 계셨는데... 애들을 깨웠다. 목소리는 떨렸고 울음이 자꾸 올라왔다. '안 돼 안 돼 울면 안 돼. 울면 진짜 어머니가 어찌 되시는 거 같잖아 울지 마 울지 마' 누르고 누르며 부산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정말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계셨다. 편한 얼굴로 주무시고 계셨다. 꽂혀있는 산소호흡기만 빼면 잠자는 얼굴이었다. 손이 따뜻했다. 볼도 따뜻했다. "어머니"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집에 가요" 안 들리시나 싶어 얼굴을 귀에 대어 본다 "한숨 주무셨으니 이제 집에 가야죠. 일어나셔요 어머니 어머..." 자꾸 눈을 안 뜨신다. 조용히 잠만 주무신다. 손이 이렇게 따뜻한데 볼이 이렇게 발그스레 한데. "어머니 어디 시려구요. 말도 안 하시구..." 어머니 얼굴에 내 얼굴을 부벼본다. 하품을 크게 하고선 "아이고 잘 잤다" 하시며 곧 일어나실 거 같았다.


양쪽 엄지발톱에 칠해진 분홍 매니큐어가 눈에 들어왔다. 반짝반짝 고왔다. 이쁜 것 고운 것 좋아하시던 어머닌 예쁘게 가려 단장을 하셨나 보다. 잠결에 급히 가느라 입술은 못 발라도 몸에 이쁜 분홍칠 하나는 하고 싶으셨나 보다. 눈물 나게 예쁜 꽃분홍이다. 발도 가만히 잡아본다. 이 발로 종종거리며 장을 봐선 울산까지 바삐 바삐 걸어오셨다. 발을 주물러본다. 왜 한 번도 주물러드리지 않았을까? 어머닌 내 발을 종종 주물러주셨는데... 큰애가 뱃속에 있을 때 발이 자주 부었다. 어머닌 발을 이리 주라며 꼭꼭 만져주시고 다리도 조물조물 만져주셨다. 쥐었다 놓았다 쥐었다 놓았다 어머니 손 닿는 곳마다 시원했다. 나도 그리 주물러 드릴 걸. 이제야 매만져본다. 어머니발이 이리도 고우셨구나 들여다본다.


도톰한 손도 여전히 곱다. 식구들 밥해 먹이느라 평생 고단했던 손이 이제야 쉬게 되었다. 어머니가 부엌에 서면 갈치조림, 조기구이, 무나물, 취나물, 호박나물, 시금치나물, 꼬막무침, 시락국... 저녁상이 푸짐했었다. 어머니가 하면 뭐든 맛있었고 뭐든 따뜻했다. "이크! 맛나네 먹어봐라" 조물조물 무친 나물을 내 입으로 쑥 넣어주셨다 "간도 딱 맞아요. 어머닌 손이 맛있어요. 어머니 손만 닿았다 하면 다 맛나잖아요" 그렇게 그렇게 부엌에 같이 있었는데...


비어질 자리가 벌써부터 허해온다. 어머니 손을 잡고 있는 거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갑던 내 손이 따뜻해졌다. 남아있는 어머니 온기로 내 손을 데워주셨다. 가시면서도 날 따뜻이 덮어주셨다. 어머니 손을 잡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어머니가 보고 싶을까... 바람이 차던 겨울날 어머니랑 팔짱 끼고서 장을 보러 다녔다. 내 손을 잡으시더니 "아이고 손이 이리 차서 어쩌냐" 팔을 더 바짝 당겨선 손을 옆구리 깊숙이 넣어주셨다. 파고들던 품이 참 따뜻했는데... 그 품이 자꾸자꾸 가려한다.


정말 안 일어나실 건가 보다. 잠이 많이 오셨나 보다. 깊이 잠들어 내 소리도 안 들리시나 보다. 그럼 푹 주무셔요 어머니. 쉬셔요 어머니. 사느라 많이 고단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머니... 그런데 어머니...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전 다시 다시 만나고픈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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