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시 눈을 뜨니 여전히 침실에 낮게 어둠이 깔려 있었다. 연기처럼 흔들릴 듯 희미하고 힘없는 몇 줄기의 빛을 보며 남편은 요즘 일찍 일어나는 데에 몰두하여 알람이 울리면 일어난다. 나는 벌떡 일어나는 일에는 소질이 없어서 이불속에서 되도록 오래, 잠이 완전히 달아날 때까지 기다린다.
얼마 전부터 우리 만의 작은 아침 루틴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다. 눈을 뜨면 남편은 씻고 어제 남겨진 설거지를 한다. 나는 그동안은 이불속에서 더 뒤척거린다. 내가 마침내 일어나면 라디오를 켜고, 아침을 준비한다.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잼과 스프레드를 종지에 덜고, 나는 그릭 요거트를 좋아하는 볼 그릇에 담아 아가베 시럽을 담뿍 뿌려준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침실 이불을 바르게 펴 정리하고, 거실에 쏟아져 나와있는 잡동사니를 제자리에 정리한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 구석 청소기를 돌린 후 좋아하는 프래그런스 오일을 떨어뜨려 오일 워머에 초를 켠다.
모든 아침 루틴이 끝나면 각자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각자의 장소로 몸을 옮긴다. 남편은 1층 작업실로, 나는 소파 위 노트북을 집어든다. 그 이후의 시간은 각자 이끌어 간다.
2인 살림이라 할 일도 단출하다. 그래서 매일 할만하다. 일상에 루틴이 생기면, 생활에 리듬이 생긴다. 이 일 저 일 사이를 오가며 부산을 떨 필요 없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 반듯해진다.
우리 생활에 정해진 규칙이나 시간 계획 같은 것은 잘 세우지 않는 편이다.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으며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계획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삶의 목표나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생활하는 일련의 과정에 우리 만의 필로소피가 있다.
어떤 일에든 강박을 갖지 않기로 한다. 다만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우리 부부는 몇 년 전부터 삶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제로웨이스트'는 실현하기 어려우나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소포장 음식은 되도록 사지 않고 주로 벌크 식자재를 산다. 외출할 땐 언제나 장바구니와 텀블러를 챙긴다. 물티슈나 키친타월 대신 행주를 쓰고, 어쩌다 생긴 비닐은 몇 번이고 재사용한다. 그래도 쓰레기는 매일 생겨난다. 완전하지 못하다.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호하지만 때로 가족과의 즐거운 식사와 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요리를 맛보기에 주저함은 없다.
우리 부부는 현재 브랜드를 이끌고 있지만, 이를 통해 창출되는 매출은 여전히 생활비에 못 미친다. 그래서 남편이 열심히 작업하는 동안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나 하는 중이다. 충분히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서 무리하게 광고를 하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쉽사리 바꾸고 싶지는 않다. 우리 부부는 지금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생의 그 어떤 일보다 신중했고, 삶의 긴 여정의 출발점으로 삼기로 했다. 그러므로 일은, 삶에 흔들리지 않는 초석이 되어줄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둘이서 아껴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운이 좋게도 우리에겐 어머님이 물려주신 2층 단독주택이 있고, 그것이 아름다운 정원을 품은 멋진 전원주택이 아닐지라도 이미 완벽한 보금자리로 우리를 보살펴 준다.
어쩌면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짐짓 편안한 듯 묘사하고 있지만 반듯한 들판의 산책길 같은 것이 아닌, 돌덩이와 물웅덩이가 가득한 오프로드일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걷는 발걸음은 산책만큼이나 가벼우리라. 지팡이보다 단단한 서로의 손을 잡고 기나긴 약속을 잊지 않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재를 살아가리라. 그것이 우리가 일상을 대하는 태도이다. 말 그대로 별 일도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천진하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