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야기
"안녕...... 오랜만이야. 나 민주."
"누구시라고요?"
"민주, 나 기억 안 나?"
'00x'로 시작하는 번호라 하마터면 끊을 뻔 했다. 차라리 끊어버릴 걸 그랬다. 통신사만 배불리는 안부 인사가 오갔다. 오래 전 과방에서처럼.
"그런데, 혹시 소식 알아? 내가 가진 게 네 전화번호 밖에 없어서...... 뜬금없이 미안해."
민주는 그 녀석, 그러니까 나와 함께 사는 남자에 대해 물었다. 아무리 철면피라도 지금 아내에게 연락하여 옛 연인에 대해 물을 수는 없다. 우주 어딘가를 유영하고 있을 민주는 그 녀석과 내가 결혼한 줄 모르는 듯 했다. 나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 녀석이 내 남편이란 걸 밝히는 것이 제일 간단하고 확실했지만 그러면 민주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민주가 이제 와서 왜 그 녀석을, 내 남편을 찾는지 무척 신경이 쓰였다. 다급했지만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얼마 전에 등단했을걸. 작가가 됐어. 그런데 왜?"
"아, 그랬구나. 어울린다. 다른 건 아니고 얼마 전에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아서."
"어? 어...... 그런데 어떻게?"
아찔했다. 민주는 오스트리아에 있다고 했고, 작은 예배당 공연에서 남편을 봤다고 했다. 바로 전 날 비엔나에서 부다페스트로 출발하기 전 남편은 내게 전화를 했다. 별다른 낌새는 없었다. 남편은 잘 숨기지 못한다. 숨기는 것이 있으면 나는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남편의 몇 안되는 장점 가운데 하나다. 민주는 남편을 봤지만 남편은 민주를 보지 못했다. 다행이었을까? 어쩌면 차라리 내가 없는 곳에서 둘이 만난 게 나았다. 그랬다면 나는 민주의 전화를 받지 않았을테고 지난 연인 사이의 이야기는 비엔나에서 끝났을 것이다. 민주가 내게 전화까지 한 것은 분명 거슬리는 징조였다. 언젠가는 둘이 만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사는 이 곳에서...... 그 날 민주에게 그 작가 선생이 내 남편이라고 말하지 않은 걸 가끔 후회했다. 남편의 K와 민주가 자꾸 겹쳐 보이는 건 그 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