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마지막

아내의 이야기도 마지막

by 흰머리 짐승

그 날 밤 내가 잠들지 않았던 건 부산역에 내리려는 찰나에 나타난 믿을 수 없는 광경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객실 복도에 서 있었다. 열차가 속도를 줄이는데 오른쪽 승강장에서 열차와 같은 속도로 걷는 여자를 보았다. '민주다!' 내 몸 어디서 울리는 외침인지 가늠하기도 전에 왼쪽 승강장에서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뛰다시피 걷는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열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까지 일 분도 채 되지 않는 동안 내가 사는 이 곳을 사이에 두고 시간 여행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남편과 민주의 이야기는 어디부터였을까?

남편은 숨겼다. 나는 알은체 하지 않았다. 민주를 알아봤다는 걸 남편에게 말하는 순간 펼쳐질 이야기들이 두려웠다. 덮어두고 싶은 마음과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치열하게 싸웠다. 남편이 사랑 얘기로 장편을 쓰는 게 어떠냐고 했을 때 드디어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이겼다. 남편이 잠들었을 때 남편의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결단코 십 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치졸한 시도였다. 통화 목록을 살폈다. 모두 내가 아는 번호였다. 메시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스팸 문자를 빼고 남편이 부산으로 내려온 뒤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남편과 민주 사이에는 과연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어둠 속에서 금고털이 하듯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운 내가 부끄러웠다.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을 열었다. 검색 기록을 살폈다. 딱 한 줄이 있었다. 'Kelly Minju Park'

그 녀석은 민주에게 가려는걸까? 민주가, Kelly가......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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