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이 점멸기 1

by 흰머리 짐승

말들이 넘쳐날수록 남자의 입은 굳게 닫혔다. 비 오는 날 흡연 구역에 모인 자들이 떠드는 소리와 같은 웅얼거림에 판단력을 잃은 선생은 이내 검사가 듣고 싶어하는 대답들을 줄줄이 쏟아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개선장군의 승리를 알리는 포고문처럼 남자가 허위사실 유포를 인정했다는 기사를 앞다투어 찍어냈다. 그리고 그 기사들 밑에는 또다시 웅얼거림이 이어졌다. 남자는 이 시대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혁명가였고 사상가였으며, 남자가 잠결에나 읊었을 듯한 시시한 말들 또한 살이 붙고 색을 입어 명언처럼 회자되어왔다. 나중에는 남자가 흩뿌려 놓은 말들을 묶어 또 다시 살을 붙이고 색을 입혀 돈 받고 파는 출판업자도 생겨났다. 그랬던 만큼 남자의 사건은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남자를 달봉선생이라 불렀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선생의 진짜 이름은 철저히 숨겨진 채 그저 달봉선생으로서 사람들의 섬김을 받았다. 떠들썩한 이슈가 생기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손가락 힘을 뺀 채 아래를 굽어보면서 싸인펜으로 갈긴 듯 한 선생의 글을 기다렸다. 지난 정권 비리 수사가 한창이었을 때, 달봉선생은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그리고 그 짤막한 글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SNS를 덮었다.


코딱지 숲의 왕위에 오른 다람쥐가 물었다.

"내가 왕이 되었으니 이 숲 짐승들에게 선물을 하나 해야겠는데 무엇이 좋겠는가?"

원숭이가 말했다.

"이 숲에는 변변한 학교가 없습니다. 학교를 지어주심이 어떠실지......"

이 말은 들은 왕다람쥐는 물었다.

“변변한 학교면 되는가? 변변한 선생은 있고? 교과서도 만들어야겠네. 오래 걸리겠군. 다음."

소가 큰 눈을 꿈벅이며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어린 짐승들을 먹이려면 많은 곡식과 풀이 필요한데 이 숲에는 부쳐먹을 땅이 부족합니다. 숲을 깎아 농사 지을 땅을 마련해 주심이 좋을 듯 합니다만……”

왕다람쥐는 미간에 힘을 주고 되받았다.

"그래? 이 숲에 어린 놈들이 몇 마리나 있지?"

"한 스무 마리쯤 됩니다."

왕다람뒤는 콧바람을 내뿜으며 소를 향해 윽박질렀다.

“스무 마리면 열 집쯤 되는 거잖아. 고작 열 집을 위해서? 그걸로 눈에나 띄겠냔 말이야!.”

마침내 다람쥐를 왕다람쥐로 만든 늙은 너구리가 가래침을 삼킨 뒤 말했다.

"어차피 모든 짐승의 요구를 들어주실 수는 없습죠. 하나하나 다 들어주시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표도 나지 않을텐데……”

“그래서?”

늙은 너구리는 다람쥐 옆에 찰싹 붙어 귀엣말로 속삭였다.

"이 참에 이 숲 속의 짐승들을 모두 끌고 저 아래 강가로 내려가 새 나라를 건설하심이 어떨지요? 좋은 기회지요. 어차피 이 숲은 전하의 지난 날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잖습니까.”


달봉선생이 이런 류의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대학 시절부터였다. 지독한 변비 환자였던 선생은 화장실에 가기만 하면 삼십 분 앉아있기는 예삿일이었다. 그 동안 선생의 심심함을 달랜 것은 화장실 문 안쪽의 현란한 낙서들이었다. 남녀의 성기 세밀화, 누가 누구랑 잤네, 안 잤네 류의 이야기들, 당시 정권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잡설들이 선생의 벗이었다. 단순한 감상과 낄낄거림에 물린 선생은 어느 날 부터 손수 끄적이기 시작했다. 달봉도 그 때 힘 주다 지은 필명이었다. 어느 새 선생은 학교 화장실 낙서계의 영향력 있는 논객이 되어, 선생이 쓴 글에는 늘 수십 명의 호응이 뒤따랐다. 단과대 화장실마다 마련된 달봉선생 전용 칸은 온갖 색깔의 글들로 채워졌다. 선생이 졸업할 무렵, 끄적임의 공간은 화장실 문에서 인터넷으로 옮겨졌다. 똥 마렵지 않아도 달봉선생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단순한 공간 이동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선생의 글은 더 이상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낄낄거리는 자들을 위한 밀어가 아니라 특정되지 않은 다수를 향한 공언이 되었다. 선생의 글은 또한 이제 까만 싸인펜으로 덧칠해버리면 사라지는 낙서라기보다 세상 어딘가에 고유 식별기호와 함께 보관되는 기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생은 아직 그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화장실 문이 인터넷으로 옮겨간 건 그저 쪼그려 앉아 쓰는 불편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선생은 개인 홈페이지를 열고 창작욕을 불태웠다. 선생은 단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호응해 주는 것에 쾌감을 느낄 뿐, 자신의 글이 독자에게 끼치는 영향력이나 깨달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글 아래에 주렁주렁 달린 독자들의 댓글 숫자만이 선생의 뮤즈였다. 간혹 섞여 있는 비판조차 선생에게는 댓글 개수가 하나 늘어난 의미 밖엔 없었다. 늘어난 댓글 수만큼 선생의 언어는 더욱 화려해졌다. 오백 마력 스포츠카가 수만의 관중 사이를 괴물 울음 같은 머플러 소음과 함께 코너링하듯 선생은 키보드를 몰았다. 달봉의 홈페이지는 어느 새 하루 수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


달봉의 글은 권위를 얻기 시작했다. 선생은 쉬운 방법으로 달봉에게 부여된 권위를 남용했다. 달봉의 홈페이지는 처음에 포털사이트가 기본으로 제공하는 '자유게시판' 하나였다가, 'From 달봉', 'To 달봉'의 두 개로 늘어나더니, 'From 달봉' 게시판이 '달봉이의 세상살이', '달봉이의 정치이야기', '달봉이의 독서일기', '달봉이의 추억사전', '달봉이의 사랑놀음'으로 자가증식하였고, 'To 달봉'은 '독자들이 달봉이에게'로 개명하였다. 선생은 단 1분 만에 여섯 개 게시판의 이름을 지었다. 첫 30초 동안 '세상살이'와 '정치이야기', '사랑놀음'을 만들었는데, 좀 더 지적이고 시적으로 보이고 싶었는지 나머지 30초를 고민하여 '독서일기'와 '추억사전'을 끼워 넣었다. 사실 선생의 생활 반경은 세상살이라고 부를 만큼 넓지 못했고, 정치에 대한 그의 생각 또한 당대의 최고 권력에 대한 이유 없는 반동 정신 말고 특별한 것이 없었으며, 끄적이는 속도만큼 읽는 속도가 따라와주지 못하여 독서량 또한 전혀 내세울 정도는 못되었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겨울 날 좌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창작 활동에 열중하느라 한동안 치질로 고생한 게 선생이 가진 가장 특별한 추억이었다. 바로 그 똥 칸들에서 낙서하느라 바빴던 탓에 사춘기 시절 짝사랑 말고는 오가는 사랑 또한 경험한 적이 없었다.


띄엄띄엄 구르는 자전거 바퀴는 금새 바닥에 눌어붙는 법, 선생은 무려 여섯 대의 자전거를 굴렸으니, 눌어붙은 바퀴에 바람을 넣고 나면 이내 다른 것이 퍼져버렸다. 물론 자가증식한 달봉 게시판 세포들은 한동안 꾸역꾸역 분열하긴 했다. '자유게시판' 하나 뿐이었던 시절 달봉의 팬이었던 사람들의 의리가 그나마의 에너지원이었는데, 익명성이 무기인 인터넷 세상에서 그이들 의리가 천년만년 유지되기를 바라기는 무리여서 선생이 여섯 개의 게시판 저글링에 지쳐갈수록 팬들이 주는 에너지 또한 희미해졌다 . 댓글 숫자는 수십 개에서 대여섯 개, 급기야 <www.***.net>을 통해 100배 투자 수익을 보장하는 야심찬 사업가 말고는 달봉의 세상살이, 추억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는 자는 더 이상 없었다. 달봉의 홈페이지는 그렇게 실체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아기 미이라가 되어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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