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야기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사람과 잠자리를 가졌다. 꿈이었다. 잠깐 남편인가 했다. 두 아이를 함께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에 불과했다. 마침 박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철렁했다. 아는 사람 꿈을 꾼 다음 날 그 사람과 맞딱뜨린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남편을 찾는 박기자에게 하마터면 '어젯밤에 어디 계셨어요?'라고 물을 뻔 했다. 남편과 나는 민원인과 동사무소 직원의 관계였다. 남편은 내게 자신이 필요한 것만 말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법이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조용한 곳에 작업실을 얻으라고 한 적도 있었다. 밖으로라도 돌면 좀 나을까 싶었다. 자꾸 남편 얼굴이 보이는데 세상과의 싸움은 나 혼자 견뎌내고 있다 느끼면 참을 수 없었다. 여필종부의 시대가 가버렸기 때문에 여자가 해야 할 일은 늘었다. 어떤 이는 모계사회가 도래했다고 했지만 모계는 무슨! 백번 양보하여 모계사회라 하더라도 남편까지 자식으로 받아들인 적은 없다. 여자는 여필종부의 시대부터 짊어진 짐에 얹어 이제 밥벌이까지 신경써야 한다. 가끔 나 대신 아이들 숙제를 챙기거나, 나 대신 계절에 맞는 옷을 옷장에 넣어두거나, 나 대신 늦지 않게 아파트 관리비를 내는 건 그저 나 대신일 뿐이다. 남편의 도움은 남편에겐 봉사활동이요, 나에겐 기념일 선물 같은 것이다. 한 때 뿐인. 나는 나도 처음 겪는 삶을 남편과 함께 헤쳐나가고 싶다. 언제나 그러하다는 든든함을 느끼고 싶다. 나는 무섭고, 불안하지만 수퍼우먼이어야 한다. 그러나 생각처럼 완벽하지 못해 더 무섭고 더 불안하다. 남편은 모른다. 알고 싶어하지 않는 건 아닐까?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아직까지 아이들이 그걸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크도록 지켜봐 줄 여유는 없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무엇이 아이들을 웃게 하고 무엇이 아이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지 알아도 눈 질끈 감고 영어 학원에 보내고 축구 교실과 발레 학원에 보낸다. 나는 큰 아이가 영어 퀴즈를 척척 맞춰줄 때, 작은 아이가 토슈즈를 신고 제법 자연스럽게 삐루에뜨(pirouette, 한 쪽 다리로 몸의 중심을 잡고 팽이처럼 도는 발레 동작)를 보여줄 때 웃는다. 큰 아이는 영어 퀴즈를 끝내고 마트에서 사 온 치킨너겟을 데워줄 때 웃고 작은 아이는 토슈즈를 벗은 맨발로 걸그룹 춤을 따라 출 때 웃는다. 같은 집에 사는 네 사람은 따로 웃는다. 남편은 여전히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남편이 등단하던 날, 작은 파티를 가졌다. 시부모님은 당신 아들을 작가 선생이라 부르며 치켜세웠다. 나는 외치고 싶었다. '어머님 아들이 받은 건 노벨문학상이 아니라고요!'라고. 요즘처럼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글 팔아 밥먹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시부모님은 몰랐다. 남편이 등단했어도 내 수퍼우먼 컴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작가가 된 뒤 남편의 봉사활동마저 뜸해 나에겐 몸의 피로까지 더해졌다. 남편의 등단은 기뻤지만 그것이 나의 무서움과 불안을 덜어주지는 않았다. 민주의 전화를 받은 건 그 무렵이었다. 남편은 그 때 등단을 기념하여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