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여섯번째

작가의 이야기

by 흰머리 짐승

그 날의 시작이 취기와 분위기 탓이 아니었음은 우리가 연인으로 만난 시간이 증명한다. 우리는 4년 가까이 깍지를 끼고 입을 맞추었으며 잠을 잤다. 젊은 사랑답게 사흘이 멀다 하고 싸우기도 했다. 좀 더 정확하고 장황하게 말하자면 내가 투정을 부리거나 화를 내면 여자는 주로 듣다가 차분히 내 억지를 바로 잡았다. 여자는 좀체 울지 않았다. 그토록 자주 싸워도 (심지어 눈물 쏟아내라고 만든 최진실, 박신양 주연의 ’편지’ 같은 영화를 봐도) 한 번을 울지 않았다. 여자는 활짝 웃는 법도 거의 없었다(바로 이 점 때문에 만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여자가 날 좋아해서 만나는지 단지 제주도의 푸른 밤 분위기에 엮인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꺄르르 웃고 환호하고 까불거리는 건 언제나 나였고 여자는 내 흥이 깨지지 않을 정도의 반사 신경을 발휘했다. 여자의 감정을 그나마라도 읽을 수 있는 때는 몇 안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림 그릴 때였다. 여자는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뭐, 잘 그리기도 했다). 가방에 따로 그림 그리는 노트를 항상 가지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여자의 그림엔 언제나 하늘이 있었고 하늘 가운데 꽃 같은 생긴 것과 그걸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 꽃 같이 생긴 게 뭔지 물은 적이 있다. 여자는 무심하게 ‘아무 것도 없는 하늘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라며 넘어갔고 끝내 하늘을 떠받친 것이 꽃인지 뭔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늘에 핀 꽃(같은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일 때도 있었고 둘일 때도 있었는데 대충 하나일 때 여자의 기분은 더 좋아보였다. 두 사람일 때라면 너무 뻔하잖은가?

우리의 연애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다. 불꽃놀이였다. 싸우고 나면 폭죽 한무더기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만났다. 화해의 제스쳐였다. 두 손가락으로 감아쥐고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하고 올림픽 성화처럼 높이 쳐들고 달리기도 했다. 또 어떤 건 모래를 모아 쌓은 뒤 줄지어 심어 놓고 혹시 우리에게 날아들지 않을까 한 발짝 물러서 빈 밤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삐웅! 날아가 퍼뜨리는 불꽃 조각 모양은 모두 같은 듯 달랐다. 처음에 폭죽을 들고 나타난 건 여자였다. ‘그저 투닥거린 것 뿐인데 뭘 그리 요란할까, 게다가 불꽃놀이는 축제의 절정 아닌가. 싸움의 끝에 불꽃놀이라니, 모닥불이라면 몰라도……’ 운동장 거의 모든 지점에 그을림 자국을 남기는 동안 나는 불꽃놀이가 반드시 축제용 행사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불꽃은 대개 배우 안성기의 웃음처럼 따뜻하고 화사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퇴직한 남편이 아내 앞에서 뀌는 방귀와 같이 처량하거나, 그 남편이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떠드는 소싯적 영웅담처럼 요란하나 쓸쓸하기도 했다. 어떤 건 울기도 했고, 어떤 건 화를 내기도 했다. 어쩌면 불꽃놀이는 여자가 감정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연인의 기분을 알아채지 못하는 남자임을 들키는 것 만큼 쪽팔리는 게 또 있을까? 놀이의 마지막엔 언제나 오백 원짜리만 한 지랄탄이 등장했다. 바닥에 놓고 불을 붙이면 지랄맞은 소리를 내며 회오리 불꽃을 일으켰는데 우리는 그보다 더 요란하게 펄쩍 거리다가 서로에게 안겼다. ‘미안해.’ ‘미안하고 사랑해.’ 싸움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 지랄탄 앞에 두 젊음은 겸손했다. 별똥별과 지랄탄, 우리 만남의 시간동안 불꽃은 늘 사라졌고, 우리는 늘 기다렸다. 4년 동안, 그리고 그 뒤에도 가끔.

“운동장으로 나와. 한 시간 뒤에.”

싸운 뒤 며칠 동안 연락하지 않다가 먼저 전화를 건 이는 여자였다. 함께 본 영화 해석이 달라 다퉜…… 아니, 내가 화를 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저우제룬이 감독한 대만 영화로 원제는 ‘Secret’, 음악을 매개로 하여 시공을 넘나드는 사랑을 그린 얘기.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통해 연인이 사는 과거로 가 버린다.)’ 마지막, 연인을 찾아나서는 샹룬의 시간 여행이 설득력이 있냐는 여자의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했고, 여자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사랑이 전부라고 했고, 여자는 연인 사이 사랑은 삶의 부분이어서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건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저 삶의 부분일 뿐이냐고 소리쳤다. 그건 지난 4년에 대한 절규였다. 단 한 번도 닿은 적 없었던 여자의 마음을 향한 독 묻힌 칼질이었다. 여자의 전화를 끊고 나가기 위해 옷을 입고 거울을 보는데 전화기 너머 여자의 표정은 어땠을까 신경 쓰였다. 트레이닝복을 잘 다린 면바지로 바꿔 입었다. 여자는 검은 봉투를 들고 축구 골대 앞에 서 있었다. 우리는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동그라미를 그리며 달렸고, 모래무더기에 폭죽을 심고 불을 붙였다. 대강의 레파토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지랄탄을 꺼내려 했다. 검은 봉투에 지랄탄은 없었다. 봉투를 뒤적이는 내 등 너머에서 여자의 말이 날아들었다. 삐웅, 툭!

“여기까지 하자. 우리.”

우린 헤어졌다. 여자는 반대편 축구 골대 쪽으로 힘차게 걸었다. 여자는 여전히 울지 않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울었다. 집에 돌아가서도 여자는 울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와의 시간에 대한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4년의 시간을 몇 문장으로 정리한 건 뻔뻔하고 건방진 인간의 기억 저장 회로 덕분이다. 그런데 정말 이것 뿐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 여자에 대한 기억인데, 어찌 이 몇 줄 뿐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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