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야기
그 날 저녁 여자와 나는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저녁을 먹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있느라 내 얼굴 근육은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지만, 여자의 표정은 다채로웠다. 호랑이 우리에 매달린 관람객 모두의 표정을 재현해냈다. 여자는 변했다. 겉도는 말만 이어졌다.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은 ‘그래?’, ‘그랬구나.’였다. 여자는 미술관 큐레이터로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고 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여자가 클림트의 나라 미술관에 있다. 빈이라면 유럽 여행하다가 잠깐 들른 적이 있다. 나에겐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이 맞닿은 곳이다. 얘기는 이렇다. EMI(세계 4대 음반 레이블로 불리는 영국의 음반사, 음반 시장의 불황과 함께 미국 Universal Music Group에 편입되었다.)가 운영하는 레코드샵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표를 샀는데 못 갈 상황이어서 취소하러 갔다. 다행히 내게 표를 판 점원이 아직 판매대를 지키고 있어 사정을 얘기했다. 표를 팔 때는 오스트리아 국립 오페라 극장 구조도까지 펼쳐 좋은 자리 싸게 사는 거라며 살랑거리던 점원은 환불 업무 앞에서는 절반 밖에 돌려줄 수 없다며 낯빛을 바꿨다. 어느 정도의 위약금은 예상했지만 너무한 것 같아 환불 규정을 보여달랬더니(물론 표를 살 때 환불 규정은 들은 기억이 없다.) 금테 안경을 콧잔등까지 내리더니 나를 미개인 보듯 굽어보는 게 아닌가? 계산대 뒤에서 인쇄한 뒤 한 번도 펴보지 않은 듯한 종이 쪼가리를 꺼내 ’50%’라 적힌 부분에 손가락으로 줄을 그어가며 다시 나를 굽어보았다. 독일어로 되어 있어 나는 뜻을 알 수 없었다. 방수 점퍼에 운동화 차림 동양인이 아니라 똑 떨어지는 코트에 윙팁 구두를 신은 코쟁이 앞에서도 그랬을까 싶었다. 유럽 여행 가면 누구나 한 번 쯤 가졌을 그 뻔한 패배감이 내게도 올 줄이야.
어쨌든 돈을 받아 나와 간 곳은 모차르트와 비발디의 현악곡을 레퍼토리로 연주하는 앙상블, 그러니까 바로 ‘마술피리’를 포기한 이유가 된 공연이였다. 뒷골목 작은 예배당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연주는 불편한 교회 의자 가장 뒷줄에서 수십 번 자세를 바꾼 나를 오페라 극장 R석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뜨릴 정도로 훌륭했다. 바이올린 주자는 곡마다 유쾌한 영어 소개를 붙였다. 무대 빼고는 이 곳이 예배당인 것만 겨우 구분할 만큼 어두워 옆 사람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었지만, 무대에서는 청중 구성이 그나마 잘 보였나보다. 유쾌함의 절정은 첼로 주자 천장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러 무대에 들어온 스탭이 마이크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을 때였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재치있게 이마에 왼손을 모로 대더니 ‘멀리 동양에서까지 많은 분이 우리 공연을 보러 와주셨군요. 여기 이 아름다운 레이디도 저희 공연에 감동해 지금까지 저희와 함께 하죠. 가끔 이렇게 재미를 주기도 하고요.’라며 웃었다. 청중은 박수를 보냈고, 스탭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가리고 떨어지는 마이크 속도만큼 빠르게 무대를 빠져나갔다.
환불 규정을 들이민 점원의 딱딱한 표정이 바이올린 주자의 발랄한 표정과 겹쳤다. 국립 오페라 극장과 뒷골목 예배당은 고작 걸어서 1분 거리였다. 오스트리아 빈은 스무 살 때 처음 마신 소주 같았다. 넘길 때마다 토할 듯 역겨운데 두어 잔 만에 무심하고 투명하게 내 모든 감정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신비한 힘을 가진 물. 나는 다음 목적지인 부다페스트로 가는 열차 시간을 바꾸면서까지 한 번 더 뒷골목 예배당을 찾았다. 얘기가 샜다. 신중할 겨를이 없는 여행객의 건방진 감상에 불과하니 선입견은 갖지 말았으면 한다. 어쨌든 여자는 나에게 그런 곳인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 묘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