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야기
토요일 아침이었다. 아무리 책방이어도 해운대 같은 관광지에서 주말에 가게를 닫는 건 주인이 박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해변 산책으로 무거운 몸을 깨울 수 있었다. ‘여자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 나처럼 지난 밤을 뜬 눈으로 보내고 근처를 배회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파라다이스 호텔부터 조선호텔까지 걸으며 몇 번을 두리번거렸다. 이제 마주치는 일 없으리라. 게다가 그 날은 아내와 아이들이 오는 날 아니었던가. 어서 털어내야 했다. 옛 연인과의 만남과 여운은 단 몇 시간만 허락할 수 있다. 산책에서 돌아와 나는 레지던스 리셉션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잠들 엑스트라 베드와 아이들을 위한, 아니 부부의 평화로운 저녁을 위한 디즈니 DVD 몇 장을 갖다달라 했다. 오늘은 방 청소를 신경 써 깨끗하게 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난 밤 라벤더향은 깨끗이 날아가야 했다. 토요일 정오 부산역은 가방 역사 전시관이었다. 분홍보자기부터 보스턴백, 배게 모양 운동가방, 바퀴 둘 달린 트렁크, 바퀴가 넷이나 달려 얼음 지치듯 가방 주인의 부모에게 달려드는 트렁크, 과연 깃털같이 가벼울까 싶을 정도로 온갖 주머니와 끈으로 덮인 등산 백팩까지, 부산역은 세상 모든 인연이 만나는 곳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내릴 11호차 승강장에 내려섰다. 아무리 전기로 달리는 고속열차의 시대라도 하루 수백대가 드나드는 기차역 특유의 냄새를 지우지는 못했다. 거기에 비릿한 바다 냄새까지 섞여 이 곳 출신이 아님에도 묘한 향수를 일으켰다.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탄 KTX는 도시와 바다의 냄새를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11호차 문 앞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기차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려는데, 상아색 코트였다! 육교 아래 어둠 속이라 얼굴은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코트만큼은 도드라졌다. 서울 방면 맞은편 열차 승강장에서 여자는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기차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나는 고개를 여자 쪽으로 돌리고 속도를 맞췄다. 몇 발짝이나 걸었을까? 여자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두 손으로 입을 감싸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선로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때마침 들어온 서울발 부산행 KTX는 여자의 소리를 동강내어 선로 위에 던졌다.
“우리 왔어.”
“아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안았다. 반가움 때문인지 기차의 진동 때문인지 모를 가슴의 울림이 전해졌다.
“응, 왔어? 오느라 고생했다. 내 새끼들 어서 와.”
그리고…… ’잘 가.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