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야기
택시에 오르자마자 아내는 부산 여행 계획을 읊었다. 아내는 부산이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부산항에 쌓인 컨테이너를 보면서 ‘와! 저거 뭐야. 진짜 큰 레고다.’라기도 하고 바다 위 화물선을 가리키며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저거 뭔 줄 알아? 해적선이야 해적선. 저기 후크 선장 타고 있을걸 아마?’라며 으쓱거리기도 했다.
“이번엔 애들한테 바다를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서울에 있으면 아쉬운 게 탁 트인 걸 보여줄 수 없다는 거잖아.”
“그렇지. 근데 부산도 가장자리만 빼고는 서울하고 다를 것 없어. 오히려 도심은 서울보다 더 갑갑해.”
조수석에 앉은 나는 아내의 설렘을 무시하고 하나 마나 한 말을 던졌다. 잠깐 택시 안은 조용했다.
“그럼 가장자리만 돌지 뭐.”
아내의 해결책은 명료했다. 택시 기사가 끼어들었다.
“부산에 사고 맛난 기 월매나 많은지 압니꺼? 살살 자시러 댕기는 긋도 갠찮아예. 머 바다야 차로 마 실 댕김서 보모 되잖아예. 묵는 기 남는 깁니더.”
“아저씨 맛있는 곳 많이 아시겠어요. 돼지국밥이나 동래파전 같은 거, 횟집도 왜 외지 사람 말고 부산 사람 잘 가는 곳 있잖아요.”
“오데예. 내 마이 알지. 그 뭐꼬 마 해운대는 파이라예. 해운대 거는 마 서울 다 댔삐따꼬. 거 말고…..”
아내와 택시 기사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택시는 광안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달맞이고개는 지난 밤을 모조리 지워버린 듯 했다. K는 열차에 올랐을까?
“자기 피곤해 보여.”
방에 들어선 아내는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는 거짓말하다 들킨 사람처럼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제 잠을 좀 설쳤어.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가? 아니다. 자기랑 애들 볼 생각 때문에 그랬나보네.”
“으이구!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밀면과 만두로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수영장에 있었던 탓에 아이들은 ‘라이온킹’이 절반도 채 지나기 전에 잠들었다. 아내와 마실 커피를 만들었다.
“나는 연하게. 뜨거운 물 좀 부어 줘.”
아내는 아일랜드 식탁 너머에서 주문을 넣었다.
“그런데 자기야. 나 물어볼 게 있어. 내가 사랑 얘기를 쓰면 어떨 것 같아?”
“응? 갑자기 무슨 뚱딴지야. 자기 사랑엔 결핍이 없어서 얘기해봐야 독자 공감을 얻지 못할 거라며? 아, 그리고 지금까지 스토리에 필요하면 중간중간에 넣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아예 사랑을 주제로, 뭐 연애 소설 같은 거.”
“뭐야. 나 없는 며칠 동안 누구라도 만난거야? 이 사람 봐.”
아내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나는 얼른 아내를 등지고 커피포트 손잡이를 잡았다. 어떻게든 둘러댈 말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작가다.
“무슨. 어……우리 벌써 결혼한 지 십 년 됐잖아. 우리 사귈 때 떠올리면서, 말하자면 아내에게 헌정하는 작품…… 어때? 하아, 좋다.”
“아! 좋아! 기왕이면 장편으로 부탁해.”
‘그걸 어떻게 장편으로 쓰냐. 장편은 오래 걸려. 어쩌면 긴 취재 여행을 다녀와야 할 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
커피를 막 마시려던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박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물어봐야겠네. 떠나면 생전 연락 안하는 사람이 어인 일로? 독일작가는 찾으셨나?
박의 목소리는 밝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4분의 3박자쯤의 리듬과 경쾌한 높낮이가 있어 십년 넘도록 한결같이 산뜻했다. 그런데 독일에서의 전화 목소리는 달랐다.
“사라졌어.”
“응? 사라졌다뇨? 뭐가?"
“독일작가.”
“잘못 짚은 건 아니고?”
“제대로 짚었어. 그건 확실해요.”
“아니, 간다고 메일이든 뭐든 알렸을 거 아냐?”
“그게…… 알리지 않았어요. 내가 간다고 알리면 왠지 튈 것 같아서. 내가 숱하게 연락했어도 답 한 번 안한 사람이잖아요.”
동네 밥집도 예약 받는 판에 아무리 박이라도 정말 무작정 찾아갔다니! 박의 목소리는 박자와 선율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박기자도 참, 웬만해야지. 자세히 좀 얘기해봐요.”
“독일작가는 음반 제작사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작가님도 알죠, 도이체그라모폰 (노란 배경의 튤립 로고 클래식 레이블로 유명한 음반사, EMI와 같은 운명으로 Universal Music Group에 편입되었다.)? 찾아갔더니 휴가래잖아. 뭐 새해고 하니 그럴 수 있다 싶어 하루 이틀 여행 좀 했지. 그리고 다시 찾아갔어. 돌아왔냐고 물었더니 글쎄 그만 두었대요. 나, 참.”
“아휴, 참. 뭐 그런 일이 다 있대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봤어요?”
“독일이라는 나라가 참 철저하더만요. 이래서 유럽이 좋다니까. 아니, 아니지. 글쎄 사생활이라면서 어디로 갔는지는 절대 안 가르쳐주는 거 있죠?”
“그럼 여행이나 하다가 와요. 어차피 항공권은 오픈일 거 아냐.”
“작가님,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홀연히 사라진 독일작가보다 더 큰 게 있어요?”
“어…… 어디 갔는지는 모르는데 왜 그만 두었는지는 알아냈거든요. 독일작가 지금 한국에 있을지도 몰라. 전직 기자의 촉이야.”
소름이 돋았다. 하마터면 커피잔을 놓칠 뻔했다. 왜 그랬는지 그 때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박은 정확한 근거 없이는 함부로 떠드는 이가 아니었다. 이 또한 전직 기자의 기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