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일요일 낮이면 송해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저 BGM을 들으며 우리 가족은 안방에 큰 상 하나를 펼쳐두고 빙 둘러앉아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언제까지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언니들 오빠가 학교 진학을 위해 시내로 자취를 떠나기 전까지는 일요일의 우리 집 풍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그 프로그램을 참으로 열심히도 봤다.
그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서 상추에 고기 넣는 것도 잊어버리고 녹색 상추만 우적우적 씹는, 그렇게 식구들이 착각하도록 연기를 해야 했다.
일요일 낮에 먹는 삼겹살이 너무 싫었다.
끓던 냄비를 들고 와 막 뚜껑을 열었을 때, 연기와 함께 온 방안에 스며드는 고기의 그 누린내에 비위가 상했다. 물에서 막 건져 올려낸 고기는 도마 위에 두고 어슷 썰기를 하면 이내 하얀 비계와 갈색의 살코기가 적당히 섞여서 한 점, 한 점 모양을 갖춰나갔다. 보기만 해도 언젠가 씹어서 알게 된 물컹한 비계의 식감이 떠올랐다.
나의 꼼수는 오래가진 못했다. 아빠도 전국노래자랑을 참으로 열심히 보시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젓가락에 집어지는 고기가 몇 점인지 꿰뚫고 있었다.
그때마다 살코기와 비계를 분리하느라 젓가락을 휘젓다가 결국에는 아빠에게 혼나고 마는 작은 언니의 영향도 있었다. 골고루 먹지 않는다고 작은 언니를 혼내고 나면 다음 시선은 나에게로, 동생에게로 향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에게 삼겹살은
전국노래자랑, 상추, 꼼수다.
그런데, 실은 내가 20년 넘도록 속았다는 걸 사회초년생이 되어 처음 알게 되었다.
돼지고기의 비슷한 부위를 쓰는 것일 수는 있겠으나, 흔히 삼겹살이라고 하면 지글지글 기름이 끓는 불판 위에 차악~ 올려서 집게를 이용해 앞뒤로 돌려가며 굽는 것을 말한다, 는 것을 입사해서 첫 회식 때 알게 된 것이다.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하고, 이후 회사에 입사해 사회인이 되기 전까지 외식을 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생선을 제외하고 모든 먹거리는 농사를 짓거나 동물들을 사육해서 자급자족했던 시골집의 특성상 짜장면 서너 번, 떡볶이 한번(이건 나중에 쓰겠다), 이모 식구랑 가봤던 레스토랑에서의 돈가스 정도가 다였다.
"오늘 메뉴는 삼겹살!"
이미지 출처) pixabay
누군가의 회식 장소와 메뉴에 대한 공지를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고기의 누릿 내였다.
그런데! 막상 회식장소에 도착하니 이 기름지고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냄새의 정체에 한번 놀랐다. 그리고 부서원 모두가 도착해 메뉴를 주문하고 불판 위에 고기가 올려졌을 때 다시 한번 놀랐다.
'이게 삼겹살이라고?'
이미지 출처) pixabay
내가 알고 있는 삼겹살과 너~무도 다른 모양을 하고 나란나란 누워 분홍빛 고기가 점차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는 거다.
또 그 맛은 어떤가. 아직 뜨거운 고기를 호호 불어 참기름에 살짝 찍어 입안에 넣으니 구수하고 쫄깃한 고기의 육즙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이렇게 맛있는 거였다고?!"
그랬다. 어린 시절 거의 매주말이면 삼겹살을 먹는다고 했지만 실상 나는 (보통 의미하는) 삼겹살을 스물두 살에야 처음으로 맛본 것이다.
그간 내가 먹은 건 보쌈이었다.
"아빠, 이건 보쌈이지 삼겹살이 아니에요."
"구우면 금세 딱딱해지고, 금방 질리잖아. 이게 담백하지."
아빠는 고기는 좋아하시지만 기름진 걸 싫어하셨다. 모든 음식을 꽤 담백하게 드셨다. 그런 탓에 구우면 기름이 많아지는 삼겹살보다 끓이는 방식으로 고기를 담백하고 보드랍게 요리하신 거였다.
그 맛이 아빠께는 담백하게 느껴졌던 것이었고, 나에게는 누린내로 여겨진 게 안타까울 따름.
사실 건강 면에서는 아빠의 조리 방식이 훨씬 좋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렇지만 어릴 적 선택의 여지없이 먹어야 했던 보쌈에 약간의 혼란과 배신감은 오래도록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