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싶었다. 하루 종일 부피가 있는 도시락 통을 들고 다녀야 하고, 무겁기도 하거니와 아직은 무더운 한낮 기온에 행여 상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었으니. 친구들과 떨어져 도시락 존에 가야 하는 게 맘에 걸렸는데, 그런 엄마 마음도 눈치챘나 보다.
수학여행 가는 날 아침 김밥
대신 수학여행 가는 오늘 아침의 메뉴가 김밥으로 정해졌다.
여느 때와 같이 잠에서 깨어 쌀을 씻어 전기압력밥솥에 안쳤다.
그리고 밥이 다 되는 15분간 다른 재료들을 준비했다.
계란은 3개를 꺼내 그릇에 풀어넣었다. 약간의 소금 간 추가.
햄은 원래 김밥재료로 묶어 파는 것과 추가로 비엔나소시지를 사서 반으로 갈라 넣는다. 나는 햄이 싫고, 애들은 햄을 좋아한다. 나는 소시지를 좋아하고 애들도 그걸 좋아하니 양쪽의 입맛을 나름 조율하는 것이다.
노랗고 길쭉한 단무지를 김밥의 개수만큼 꺼내고, 야채를 준비한다.
아침의 15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오히려 엄청 바쁜 시간이지) 다행히 나는 그 시간이면 김밥을 쌀 준비를 모두 마칠 수 있다.
"맛있는 밥이 완성됐습니다, 잘 섞어 드세요."
전기밥솥은 다음 할 일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일러준다.
밥솥을 꺼내 뜨거운 밥을 제법 큰 볼에 옮겨 담고 소금, 깨소금,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담뿍 뿌려 섞어준다. 깨소금과 들기름의 고소한 향으로 김밥을 싼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넉넉하게 넣어준다.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은 김밥 싸기에 안성맞춤이다.
재료 준비만 다 됐다면 김밥을 말고, 썰고, 그릇에 옮기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내가 아침으로 먹을 김밥과 애들 김밥을 썰고 남은 꽁지를 적절히 나눠 담는다. 회사에 내 김밥을 좋아하는 동생이 있어 김밥 싸는 날이면 그 친구와 같이 먹는다.
그간 애들에게 싸준 김밥들
"안 귀찮아요?"
"아침에 김밥 쌀라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아침메뉴가 김밥이었다고 하면, 대개는 한 마디씩 한다. 그런데 나는 김밥 싸는 게 귀찮거나 어렵지가 않다. 오히려 3~4가지의 반찬을 하는 것보다 휘리릭 김밥을 말아버리는 게 수월할 정도,
그러다 보니 우리 애들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은(어떤 주에는 두 번도) 김밥을 먹어야 한다. '먹어야 한다'라고 쓰는 건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김밥은 소풍 전날의 설렘이나 특별함을 주는 메뉴는 아닌 듯해서 그렇다.
처음 김밥을 쌀 때만 해도 애들은 이것저것 내용물이 풍성하고 큼직큼직 들어가는 것에 환호했다. (특히 햄이나 소시지) 그런데 애들이 잘 먹으니 자꾸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밥 속에 평소 안 좋아하는 야채를 넣어 먹여보자.
애들은 야채의 존재를 알았지만, 다행히 날름날름 잘 먹었다. 상추 몇 장 먹이려고 해도 잔소리를 해대야 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양의 상추를 잔소리 한번 안 하고 먹일 수 있어 상추김밥을 싸기 시작했다.(회사 후배는 상추 김밥은 처음 들어봤다며 이상할 거라 했지만, 지금은 아주 좋아한다) 볶은 당근도 가끔.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내 욕심은 가끔 화를 불러왔다.
양배추를 잘게 썰어 넣어봤는데 고집이 있어 뻣뻣했다. 겨우 말았다 싶었는데 한입 크기로 썰었더니 난리가 났다. 애들도 다른 야채에 비해 강한 향이 난다며 거부감을 표시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많은 시도는 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김밥=소풍=설렘'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애들에게는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미안하다.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로 인해 음식에 대한 편견을 가졌듯 이제는 아이들이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으로기억을 쌓아갈 것을 생각하니 조심스러워진다.
김밥을 잘 싸는 건 먼저 결혼한 동생에게서 배웠다. 손끝이 야무지고 요리를 한 후 플레이팅을 기막히게 하는 '금손' 동생은 김밥마저도 참 맛깔스럽고 풍성하게 했다.
(형제방에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김밥 장사하라고 적극 권유할 정도)
지단을 부쳐 잘게 썰어 잔뜩 넣어도 된다는 걸 알았고(요즘 유행하는 키토 김밥을 동생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식처럼 햄은 가느다란 한 줄만 넣었는데 여러 개 넣고, 소시지도 넣어 애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소풍 갈 때 김밥을 못싸간 게 한이 돼서 이제 내가 하잖아, "
같은 부모 아래서, 같은 집(심지어 동생과는 같은 초중고를 다니며 기숙사도 같은 방을 썼다)에서 살았어도 기억의 온도와 색감은 다르다.
나는 딱히 기억도 안 날 만큼 소풍날 김밥에 대한 추억도, 원망도 없다. 반면 동생은 소풍날 평소와 다름없이 미역줄기볶음과 멸치볶음(우리 집 주된 도시락 메뉴였지)이 담긴 도시락을 들고 갔던 서러움을 내내 기억하고 있었다.
오 남매를 키우신 엄마는, 큰언니를 키울 때만 해도 젊으셔서(우리는 언니보다 항상 7~9년 나이 드신 엄마를 보는 거니까) 힘이 있어 같이 뭘 하거나 대화도 많이 했던 모양이다.
반면 우리가 그만한 나이가 됐을 때는 엄마에게는 4번째, 5번째 반복되는 일이기도 했고, 언니들과 오빠가 외지로 나가 한창 돈이 많이 필요할 때라 그만큼 더 많은 농사를 지어야 했다.
낮이면 너무 바쁘고, 저녁이면 죽은 듯 잠들어버리는 엄마는, 일주일 동안 기숙사에 있다가 집에 가도 진득하게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피로함 속에 살았다.
집이 깨끗하지 못했고, 음식은 맛있었지만 예쁘거나 정갈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빨리 한 끼를 때우는 데 그 목적을 다했다.
그게 나와 동생에게는 서운함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 서운함의 종류도 이렇듯 다르다.
어릴 적부터 음식을 이쁘게 하는 걸 못 봐서 그릇에만 담아서 먹는다는 나와는 달리, 동생은 이쁘지 않은 음식들을 보고 자랐기에 아이들에게 예쁜 음식을 차려준다고 했다.
어떻게든 원망하는 포인트는 있기 마련인 모양이다.
그게 엄마라면 더더욱.
친구들의 달팽이 김밥을 보고는 부럽다는 작은 애를 위해 시도했지만 역시나 만들 수 없었다.
태국 동생네 가서 김밥 싸는 것을 배운 후다.
언젠가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기에 먹을 게 마땅찮아서 김밥을 먹자고 했다.
엄마는 내 앞에 앉으서서 김밥이 썰어지기 무섭게야곰야곰 하나씩 집어드셨다.
"엄마, 중간 꺼 제대로 된 거 먹어요."
"김밥은 원래 꽁다리가 맛있어."
"근데 엄마, 김밥 잘 드시네?"
"나 원래 김밥 좋아해. 근데 너 김밥 좀 싸봤나 보다. 재료는 그렇게 많이씩 넣어야 맛있는데 제대로 할 줄 아는구먼?"
마흔이 넘도록 엄마께 김밥 싸준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김밥을 좋아한다는 엄마의 말씀에 왈칵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내 자식들 입에만 김밥 넣을 생각만 한 거지.
이렇게나 김밥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라고 자식들의 소풍날이면 김밥 말며 김밥 꽁지를 드시고 싶지 않으셨을까. 그보다는 자식들에게 소풍날 김밥을 싸주지 못함이 얼마나 맺혔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