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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Sep 24. 2024

너를 만나기 전 미역국 한 사발

내 인생 메뉴 <한식>편


2014년 2월 16일 오전 10시 56분.

드디어 작은 애와 만났다. 그야말로 ‘드디어’다.


임신하면 대부분 아이와의 만남을 기다리지만, 작은 애를 임신한 동안에 내 건강상태는 하루하루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불안했다.


유산과 조산의 기운.


작은 애를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날 아침 시뻘건 피를 쏟아내는 하혈을 했다. 서둘러서 신랑과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하는 신랑 옆 보조석에 누워 가는 동안 나는 아이를 잃을까 봐 노심초사. 그런 나를 위로한다며 신랑은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아직 어떻게 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해?"


나는 소리를 팩 질렀다. 신랑이 나를 위로하려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다행히 유산은 아니었고 며칠 입원해서 안정기를 가졌다.


임신 7개월. 또다시 하혈을 했다.

이번엔 조산끼가 보인다고 했다. 또다시 입원해 며칠 동안 꼼짝없이 누워만 지내야 했다.


그 시절, 나는 갈등이 많았다.

(어쩌면 열등감에서 비롯된 편협한 입장임을 미리 밝힌다)


엄마로서 아이를 지켜야 하기도 하고, 회사에서의 커리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퇴원하자마자 출근길에 나섰다.

애초에 회사에 뼈를 묻는다거나 임원이 된다거나 하는 등의 거창한 바람 따윈 없었다.

그렇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맡은 일은 악착같이 해냈다. 그럼에도 항상 초대졸이라는 딱지가 붙어 나보다 늦게 입사한 4년제 대졸 입사생들이 앞서 나아가는 걸 봐야 했다.


"전 1~2년 후부터 고과 챙기면 되니 아직은 대충 해도 돼요."


편한 사이라 생각했던지 당시 후배가 말했다. 아득바득 해마다 성과를 생각하고 고과 챙기는 나와는 너무도 다른 여유였다.

4년제 입사생들에게는 평탄하게 주어지는 승격의 길이,

그렇지 않은 출신들에게는 의자 뺏기 게임처럼 몇 안 되는 의자에 누굴 앉히나 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다행히 그때까지 승격에서 밀리지 않았는데, 한번 미끄러지면 그 뒤로 계속해서 밀릴 게 틀림없었다. 그러고 나면  앞서가는 후배들의 뒤통수를 봐야 한다는 불안감과 조급함이 스스로를 닦달하게 했다.

(지나고 보니 그게 뭐라고... 이 또한 지나고 보니 그렇다는 거다)



버티고 버텼던 나날.

일요일이었던 그날 아침 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는데 또다시 시뻘건 피가 쏟아지는 것을 봐야 했다. 7개월은 넘겼지만 무섭고 두려웠다.


이번에 병원에 가면 출산하겠지.


“아기 낳으려면 힘 많이 들어. 많이 먹고 가자.”


마침 그날 아침 어머님께서 끓여주신 게 미역국이었다.

(밥 먹다가 화장실 가서 만난 하혈이다)

이왕 그렇게 된 거 출산하면 젖이 잘 돌아야 하고, 그보다 먼저 힘내서 아이를 낳을 생각에 나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먹었다.  


그리고 병원에 갔는데…


“수술해야 하는데 언제 밥 먹었어요?”


“8시쯤인가…”


금식해야 하는데 어째요.”


그때서야 제왕절개 수술을 해서 낳은 큰 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출산하면 한동안 가려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야무지게 이삭토스트를 사 먹고 병원에 간 나는 6시간 넘는 진통에도 끝내 출산하지 못했고 제왕절개를 했었다.


그때 간호사가 했던 말


“진통하느라 소화 다 됐을 테니 이제 수술할 수 있어요.”


이제 수술할 수 있는 약 3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그때 얼마나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하던지. 먹은 걸 다 게워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작은 애와 건강하게 만났다.

미역국을 보면 그날의 아찔함이 퍼뜩 떠오른다. 그런데 출산  전 마지막 식사가 미역국이라 그런지 작은 애의 최애 메뉴는 미역국이다.


일요일 라면데이에도 혼자서 ‘미역국 먹을래’라고 외친다.


건강에 안 좋은 라면보다 미역국이 훨씬 낫지.

이것저것 다 고맙지만, 그냥 작은 애 그 자체라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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