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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Sep 19. 2024

맛도 기억도 보드라운, 빵빠레

내 인생 메뉴 <간식>편


운동을 마치고 들어갈 때면 아이들에게 영상 통화를 건다.


"뭐 먹을 거야?"


아파트 1층에 있는 무인아이스크림 가게에서다.

냉동고에 진열된 아이스크림을 휴대폰으로 비춰주면 집에 있는 아이들은 천천히 지나는 아이스크림 중 맘에 드는 것에서 "그거요, 그거!"라고 크게 외친다.

뭘 물어도 대답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종종 화를 내는데, 이때만큼은 꼬박꼬박 대답하고, 그 말소리가 지도 않다. ㅎㅎ


"그거 이름이 빵빠레였어요? 난 그거!!"


어제 작은 애는 빵빠레 바닐라맛을 주문했다.

작은 리본 같은 굴곡이 왔다 갔다 하며 촘촘히 모양을 낸 빵빠레.

이미 단종된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https://youtu.be/1nEdJ24Am8o?si=DUdbEqSdVdREXHI2





빵빠레.


1983년에 출시된 것으로, 당시 아이스크림이 100원, 50원 하던 시절에 무려 300원으로 선보였다니 그 자신감을 높이 살 만하다.


'하드'라 불리는 아이스케키가 대부분일 때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다가 점차 아이스크림이 녹아 눅눅해지는 과자 속에 하이얀 바닐라맛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담겼다. 마치 올림픽 성화처럼 생겨 그 모양이 다치지 않되 잘 보이도록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까지! 그것을 먹을 땐 성화 봉송하듯 높이 쳐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웅장하고 씩씩한 느낌과는 달리 매끈하고 부드러운 솜사탕 같은 질감이 먼저 다가오곤 했다.


빵빠레를 처음 먹은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내민 봉다리(봉지)에서 집어든 때다.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날 혼자 운동장 한 편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앉아있었다. 아마도 방과 후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다가 혼났거나, 그림을 그리러 가기 싫어 괜히 시멘트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운동장 모래 위에 나뭇가지를 휘적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짧은 커트 머리의 젊은 여자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운동장엔, 아니 그늘로 피할라 쳐도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빈 의자는 내 옆이 아니고도 많았다.

젊은 여자(이하 언니라 칭하겠다)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공연히 더 집중해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렸다.


"왜 혼자 있어? 집에는 안 가?"


말소리가 나긋나긋하고 친절했다. 아마도 나는 우물쭈물했을 뿐 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내 대답은 궁금하지 않았다는 듯 언니는 들고 있던 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아이스크림 여러 개가 들어있었다. 바밤바, 폴라포, 그리고 하얀 하드를 깨 먹으면 붉은 통팥이 나오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까지. 그중에서 내 시선을 끈 건 빵빠레였다.


그때까지 나는 빵빠레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학교 앞이나 동네 가게에서 이따금 집어 볼까 하다가도 그 가격에 놀라 흠칫 다른 걸 재빨리 잡아들었기 때문이다.


"빵빠레 먹어 본 적 있어?"


나비가 나풀거리며 다가오듯 언니는 나에게 한껏 가까이 다가왔다. 아마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을 테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 저였다.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는 창피함과 그럼에도 그것을 집었다는 욕심이 이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바닥에 놓아. 그리고 맛있게 먹으면 돼. 근데 아래 뾱, 하고 누룰 땐 조심해. 아이스크림이 로켓처럼 발사되어 튀어나가 버리기도 하거든."


분명 덥지 않은 봄날이나 가을날이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이 빠르게 녹지 않아 나는 보드랍고 달콤한 그것을 급하지 않게,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단해 보였던 빵빠레, 과연 동경하고 궁금해할 만한 맛이었고 기품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나는 그 언니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러나 섣불리 어떤 질문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달콤한 생애 첫 빵빠레를 맛보게 해 준 것에 대한 고맙단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맛있게 먹고 나니 다시금 쑥스러움이 찾아들어 나는 고개를 숙이는 둥 마는 둥 까딱하고 교실로 달음박질쳤다.


달리는 내 뒷모습을 보며 그 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래도록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앉아있던 그 언니의 모습(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이 그려지곤 했다.






아마도 졸업생이었으리라.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살다가 그리워 잠시 들렀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스무 살 때부터 서울로 올라와 살면서 뭔가에 치이고 힘에 부칠 때면 종종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아이스크림을 담뿍 담은 봉지를 들고 초등학교에 가보고 싶었다. 그러리라 맘먹었었다.

그러나 번번이 현실에 뒤로 밀렸고, 그러다 보면 또 살아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중학교도) 농촌의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더 이상 운영이 어렵게 됐다.

부모님 댁에 가면서 그래도 '올해는 두 명이 입학했대'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10년 전엔 아예 폐교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잡초로 무성했던 운동장에는 들어갈 수 있었으나 이제는 굳게 닫힌 녹슨 철문이 가로막고 있다.


따뜻하고 보드라웠던 빵빠레 추억.

초등학생 때의 기억만큼이나 아련하다.





https://brunch.co.kr/@jinmeirong/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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