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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Sep 11. 2024

미신일지라도. 추어탕

내 인생 메뉴 <한식>편


지난겨울, 영화 <파묘>를 봤다.

장재현 감독은 어린 시절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그 영화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고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읽었다.



미신일 수 있겠으나, 마냥 그렇게만 치부할 수도 없는.

내가 자란 시골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기는 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의 동네 친구 중 '상구댁'이라 불린 분이 있었다. 그 할머니가 젊었시절, 임신한 채로 마당 청소를 하다가 뱀을 발견하고는 놀란 마음에 괭이로 그것을 두 동강 내었다고 했다.

몇 개월 후 임신했던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의 아들은  한쪽 팔이 팔꿈치까지만 있게 태어났다. 그러니까 한쪽은 아예 팔목부터 손, 손가락이 없었다.


그런 아이가 태어나서 그런지 동네 사람들은 다들 그 일 때문이라 말했었다. 어릴 때부터 하도 많이 들어서 나도 그 아저씨를 볼 때마다 그런 줄로 알고 자랐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이고,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두 동강이 난 뱀이 떠오르곤 했다.





도깨비불 이야기도 있다.


엄마가 시집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는 종종 다툼을 하셨던 듯하다. 아빠와 다투고 난 후 화가 난 엄마는 친정인 외가로 가기 위해 집을 나가셨다고 한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그걸 두고 '도망갔다'라고 말했다)

흙길이고 동네 버스도 없던 시절이라 논길을 걷고 또 걸어 버스가 다니는 큰 길가에 비로소 도착했는데, 버스는 오지 않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셨다는 엄마. 불현듯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내가 이렇게 친정으로 가면 어머니, 아버지 마음이 어떠실까. 줄줄이 있는 동생들 볼 낯도 없고.'


이러한 사정을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좀 가라앉으셨던 듯하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분한 마음에 보이지 않았던 칠흑 같던 어둠이 세상 그렇게 무섭도록 느껴졌단다.

무엇보다 멀리 산속에서 들리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무덤이 있을 만한 곳에서 빙빙 도는 도깨비불에 소름이 끼쳤다는 말씀도 여러 번 하셨다.


미신 같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고 자라서인지, 약간의 토테미즘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동물이나 식물들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미칠 거라 생각한 것.




어린 시절,

집성촌이었던 고향은 명절이면 타지에 나갔던 이들이 돌아와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셨던 큰아버지도 이때는 가족들과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큰집에 오셨다. 오랜만에 보는 사촌오빠들과 언니들. 항상 단정한 모습에 세련된 소지품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어머니, 아닐 수도 있는데..."


나와는 15살이 차이나는 사촌 큰오빠가 우리 집에 왔다. 인사하는 듯하더니 엄마 곁으로 다가가 몸을 숙이며 뭐라 뭐라 속닥거렸다. 사촌오빠는 '별일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하며 돌아갔지만, 이를 들은 엄마의 낯빛은 별일이 아닌 게 아니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라, 거짓말 말고."


엄마는 작은 언니에게 질문을 했지만 답을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투였다.


작은 언니가 종종 남의 물건에 손대 혼나는 걸 봤다. 렵지 않게 탄로 날 일이었음에도, 그다지 살림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 것들임에도 언니는 눈독을 들였고 주머니에 끌어모았다.


한번 두 번.

반복되면서 뭔가 없어지면 으레 언니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설연휴라 시끌사끌한 틈에 사촌오빠의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이 없어졌다 했다. 마침 화장실에 다녀오던 사촌오빠가  사랑방에서 나오는 언니를 봤다고도 했다. 합리적인 의심일 수도.

사촌오빠는 '아닐 거라' 말하면서도 끝내 '작은언니'를 지목해 말했다. 그것을 듣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작은 언니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엄마는 뭔가를 챙기더니 언니의 손을 잡아끌고 뒤안으로 갔다. 거무스름한 옹기들이 놓인 장독대 옆으로 작은 수돗가가 있다. 수돗가 앞에 빨간 제법 큰 대야가 놓였는데 많은 미꾸라지가 담겨 있었다.


가을 추수를 마친 논에선, 시골 어른들은 삽으로 구멍을 파고 미꾸라지를 잡았다. 땅 속 깊이 있던 미꾸라지는 여름 내내 고생한 몸을 위한 미꾸라지즙으로 탄생했다. 웬만한 양으로는 터무니없어 여러 날 모으고 또 모을 때였을 테다.


"이 바늘로 미꾸라지 눈을 찌르면 범인 눈이 먼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라이."


엄마는 급히 챙겨 나온 바늘을 꺼내 들었다. 단호한 표정과는 달리 바늘을 쥔 엄마의 손끝은 자꾸만 흔들렸다.


"난 아니라고요!!!"


작은언니가 소리쳤다. 엄마는 큰 대야에 든 미꾸라지를 휘휘 저었다. 물속을 유영하던 미꾸라지들이 놀라 서로 몸을 엉키면서 거품을 만들어냈다.

엄마 손아귀에 잡힌 미끈덕한 미꾸라지는 자꾸만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고 했다.


"진짜야?"


엄마는 손아귀에서 몸부림치는 미꾸라지에게로 바늘을 가져갔다. 가만있지 않는 미꾸라지와 멈춰버린 엄마. 그것을 번갈아 보며 이제라도 언니가 사실대로 말해주길 바랐었다.


엄마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어린 딸의 손버릇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과 혹시나 (엄마도 누군가에게 들었을 법한 이야기로) 미꾸라지 눈을 찔러 그게 만일 자식의 눈을 멀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오갔던 게 아닐까.


사실대로 말하라면서도 범인으로 단정해버리는 엄마, 충분히 탄로 났음에도 여전히 부정하는 작은 언니.

무엇보다 이렇게 두려운 상황을 만들게 한 사촌 오빠가 원망스러웠다.  


툭.


엄마가 힘없이 들고 있던 미꾸라지를 대야 안에 넣었다. 금세 다른 것들에 섞여 어떤 미꾸라지인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팽팽하던 긴장이 풀리며 큰 숨이 뱉어졌다.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 났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통미꾸라지는 먹지 못하지만 갈아 만든 추어탕은 좋아하는 나는, 그때마다  튀어나오는 그날의 기억과 함께 숟가락을 든다.



마냥 두렵기만 했던 그때,

이제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엄마의 갈등 어린 눈빛에 백번 공감이 다. 버릇 고치려다 행여나 자식의 몸이 상하지는 않을까. 그게 비록 미신일지라도 자식 일 앞에서는 그렇게만 치부할 수도 없는 거라는 걸 이제는 좀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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