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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Sep 10. 2024

아는 척 대박, 초당옥수수

내 인생 메뉴 <주전부리>편


조직문화 업무를 하던 시절, 대표이사 주관의 행사를 할 때면 입구에서 참석 임직원들에게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다.

주로 비타 500 같은 비타민 음료이거나 캔커피였다.


그저 요식행위로 하던 거였는데 언젠가부터 이 또한 의미를 부여해 보자고 당시 부서장이 말했다.


"여름이니까 수박을 잘라 한 조각씩 나눠줄까?"


뜻은 좋았으나 누가 그걸 일일이 자르고 있겠으며(식당의 도움을 받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 흐르는 과즙과 껍질 처리는 어떻게 할지가 난관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수박이라면 먹는 건 물론 냄새도 싫었다.

(그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해야 했으므로)

결국 수박즙이 몇 퍼센트쯤 들어갔을, 표면에 큼지막한 수박이 그려진  탄산음료를 나눠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겨울엔 군고구마 같은 걸 나눠주자고 했다.

제발 의견 내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ㅜㅜ)

사내 식당에서 아침 테이크아웃 메뉴로 군고구마가 있고, 그 또한 껍질 등의 쓰레기 처리 문제로 성사되지 않았다.

대신 따끈한 온도의 병에 든 베지밀을 나눠주기로 해서 행사 시작 전 회사 인근 편의점을 뺑뺑 돌며 필요한 수량을 구했던 기억이 있다.


다음 해에 부서장이 바뀌었다.

그런 바뀐 부서장도 행사 식전 나눠주는 음료에 진심인 듯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하셨다. 름 최신 유행에 민감하고 트렌디하다고 자부하시던 분이다.


"여름이니까 초당옥수수 해볼까요?

 초당옥수수 알아요?

 그거 MZ사이에 엄청 유명한데?

 초당?"


부서장은 여러 번 반복하며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초당옥수수를 당신은 이미 알고 있노라고 강조했다.


"그룹장님! 제 시댁이 강릉이에요.

  어떻게 초당옥수수를 모르겠어요."


'아, 나만 아는 게 아니었어?'

부서장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낭패감.


그때 초당옥수수로 결정되지 않았다. 대표이사가 무대에 올라 말씀을 하시는 동안 옥수수를 뜯어먹을 참석자들의 모습이 오버랩 됐기 때문. 또한 다 먹은 후 옥수숫대 처리도 난관이었고.

그냥 평범한 음료로 나눠줬던 것 같다. 차라리 이때 초당옥수수로 결정되었다면 나는 좀 더 빨리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깐깐하고 꼼꼼했던 당시  임원께 그 이름과 유래, 뭐가 좋은지, 어떤 의미로 이걸 나눠주는지 보고할 자료를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





그 이듬해였나, 2년 지나 여름이었나.

나는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초당옥수수를 구입했다. 개나리꽃을 닮은 듯 노오랗고 꼼꼼하게 심긴 옥수수알이 매력적인 그것. 그렇지만 낱알이 알알이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고 이와 이 사이에도 껴서 뒤끝이 깔끔하지는 않은 인상이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옥수수를 냄비에서 꺼내 호호 불어가며 먹다 예전 여름날이 생각났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바로 검색창이 초당옥수수를 쳐봤다.


세상에나!


초당옥수수가 당연히 지명인 줄 알았다. 강원도는 옥수수와 감자가 유명하고, 시댁인 강릉엔 초당순두부가 있으니 그들의 친구쯤으로 생각했고, 나중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답하던 모습이 떠올라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당시 회의 참석자 중 누군가는 알았을지도)


초당.

일반적인 당을 초과할 만큼 매우 달콤한.

그래서 영어로는 'Super sweet corn'.

게다가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이란다.


그때 이미 부서장이 다른 분으로 바뀐 데다 나도 더 이상 조직문화를 담당하진 않은 때라 상관은 없지만, 매번 초당옥수수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그리고 가끔 드는 의심.

아마 그때 당시 부서장도 초당옥수수는 알았으되 유래나 지명이 아닌 줄은 몰랐던 것 같다. 내 대답에 반박하지 않은 걸 보면 ㅎㅎㅎㅎ.



함부로 아는 체 말자.

쪽팔림과 무안함은 온전히 내 몫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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