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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Sep 07. 2024

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맥주

내 인생 메뉴 <주류>편


“술 받아오니라.”


지금은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판매할 수 없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만 해도 그런 법이 어디 있었나. 그래서 저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아빠의 맥주 심부름이 대부분이었고, 외할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도 종종. 마치 가게에 맡겨둔 듯 '받아오라'는 그 표현은 실은 대부분은 외상으로, 아주 가끔 돈을 치르고 사 오라는 것임을 눈치껏 깨달았다.


내가 살던 마을 어귀에 두 군데의 구멍가게가 있었다.

하나는 정현이네(큰아들 이름)였고, 다른 한 곳은 한 대네(역시 큰아들 이름)였다가 옥골할매네가 그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는 옥골할매네가 되었다.


새카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겨울밤, 아빠는 내게 맥주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부름하는 건 괜찮다. 술이 담긴 비닐봉지를 받을 때 내밀 수 있는 술값만 쥐어준다면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외상이오’라고 말하고 비닐봉지만 받아와야 하니, 나는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은 아빠가 웬일로 돈까지 챙기주시며 심부름을 시키셨다. 다행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현이네 구멍가게로 향했다.




“그렇게 들고 가면 밑구녕이 찢어져 쏟아진다잉.


맥주 세병이 담긴 검은 봉지의 손잡이만 잡은 채 들고 서있는 나를 보며 정현이네 엄마가 말했다.  


“괜찮아요."


술 심부름이라면 력날 만큼 많이 한 나에게 아주머니의 그 말은 그저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평소처럼 맥주가 든 봉지를 들고 걸었다. 정현이네 가게와 우리 집은 걸어서 6~7분 정도의 거리. 뱀처럼 휘어진 시멘트 골목 위로 노오란 가로등 불빛이 쏟아져 무섭지도 않았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그날, 갑자기 쫙, 툭, 탱그랑…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봉지 밑이 찢어지고 그 사이로 맥주병이 잠수 선수들처럼 하나둘 차례로 빠져나가더니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결과는 산산조각.  

아주머니의 예언이었던가, 아니면 그날따라 봉지를 든 내가 불안해 보였던 것이었던가.


걱정하는 말 뒤로 거들먹거리는 좀 전의 내 모습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어쩌지’


차 한 대 다닐만한 폭의 시멘트 도로 옆으로는 각 집에서 설거지나 씻은 오수가 흐르는 도랑이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그러나 발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운동화를 신은 발끝으로 깨져 조각난 맥주병들을 그 도랑 쪽으로 밀어 넣었다.


정신없이 치우긴 했는데, 문제는 맥주가 없다는 것. 그대로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뒤돌아서서 다시 구멍가게로 갔다. 당황했던 좀 전의 모습은 꽁꽁 감춘 채.


“아빠가 맥주 세 병 더 사 오래요.”


“그래?


정현이네 엄마는 무심하게 검은 봉지를 한 장 뜯고 이내 맥주 세 병을 담아 내게 내밀었다.


“근데… 이번엔 외상이래요.”


나는 아주머니를 보지도 않은 채 외치며 서둘러 나왔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위쪽에 위치해 있고, 학교에 가기 위해 갈 수 있는 길은 2개였다. 정현이네 가게를 지나가거나, 옥골할매의 가게를 거쳐가거나. 옥골할매네 쪽 골목은 사나운 개가 컹컹 짖어대는 판에 놀라 도망할 때가 많다. 그러니 정현이네 쪽으로 다녀야 하는데 그날 이후 좀체 그 길을 다닐 수 없었다.


며칠째 가게에서도, 아빠도 아무 말씀 없으셨다. 아, 이렇게 내 범죄는 완벽하게 감춰졌구나 했다. 아빠는 종종 외상술을 드시는지라, 그날의 외상술값도 자연스레 장부에 적혔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며칠 후 시내에 다녀오신 아빠를 마중 나갔다. 이미 몸이 비틀거리도록 거나하게 술을 드신 것 같은데 아빠는 정현이네 구멍가게로 가  맥주 한 병을 시키셨다.

정집과 함께 있는 구멍가게, 안쪽 방에서는 애들이 만화를 보고 있었다. 조도가 낮은 불빛 아래, 마루에 걸터앉아 유유자적 맥주잔을 들이켜시는 아빠와는 달리 내 맘은 바빴다. 저녁상을 차리는 엄마가 기다릴 것이 걱정된 거다.


"너 왜 안 들어오고 그러고 있냐.”


찬바람 부는 가게 밖 평상에 앉은 나를 보며 정현이네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금방 가야 해서요.”


진짜로 서둘러 가야 해서 밖에 있었던 것인데, 정현이네 엄마의 여유 있는 눈빛에 그만 나는 얼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전 네가 한 일을 난 다 알고 있다’ 


딱 그 눈빛이었다. 아주머니는 농담 섞인 말로 아빠께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말라고 했다. 한 번에 대여섯 병씩 마시는 건 안 좋다고. 그래, 아주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거다.


가 그렇게 빨리 다녀올 만한 시차가 아니었던 것, 급하게 외상이오, 외치고 나갔던 내 뒷모습, 언젠가 그 골목을 걸으며 봤을 산산이 부서진 맥주병의 형체들. 그리고 며칠 동안 가게 앞을 하느라 보이지 않았을 나.


든 정황이 그렇게 뚜렷한데 나는 완전범죄라며 쾌재를 부르고, 그래서 며칠 지나지 않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어른들의 날카로운 눈매는 정말 형사님 저리 가라다.





친정에서 발견한 오래 전 아빠의 각서


작년 추석이었나. 친정에 가서 사진첩을 보던 나는 익숙한 필체로 써진 각서를 발견했다. 분명 아빠다.


느즈막에야 운전을 시작하신 아빠는, 그럼에도 여전히 술을 즐기셨다. 한두 번 음주운전을 해도 별일이 없자 이내 그 심각성을 망각하시곤 일상이 되어버렸다.


2008년 여름.

마를 영등포역에서 배웅한 지 4시간 만에 나와 동생은 기차를 타고 고향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셨다는 전화가 걸려온 줄 알고 받았는데, 아빠의 음주운전이 끝내 사달을 낸 것이다.

기차역에 마중 나오신 아빠는 이미 취해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예의 그 자신만만함으로 운전대를 잡았고, 천만다행으로 (사고를 내신 게 아니었으니) 집으로 가는 도로에서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신 것이다.

수화기 너머는 매우 소란스러웠다.


집에 도착했을 때엔 아빠는 이미 한잠 주무시고 계셨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 속과는 달리 평온하게 코까지 골며 주무시는 모습이 얼마나 얄밉고 원망스럽던지.

잠에서 깬 아빠는 죄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어릴 적 술에 취해 엄마를 때리고, 물건을 부순 후 다음날 아침이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입을 꾹 닫아버리신 그 모습과 같았다.


나는 이러라고 차를 사드린 줄 아느냐며 몹시도 몰아세웠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겪었던 술꾼 아빠에 대한 원망을 이젠 제법 컸다고 한꺼번에 응축해 뿜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음주운전의 여파는 실로 컸다.

버스가 많이 다니지 않는 우리 집에서 병원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필수였다. 그리고 꽤큰 농사를 지었는데 이 또한 예전처럼 경운기로 농산물들을 옮기기엔 기동력이 떨어졌다.  


"뭔 운전을 한다고!"


아빠는 매번 그렇게 엄마가 운전을 배우려는 것에 반대하셨다. 공교롭게도 엄마의 운전면허는 아마도 이때가 기회가 되어 취득하셨던 듯하다.




아빠는.

원망하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의지가 대단하신 분이다 싶다.


그렇게 술을 드시고 다니면서도 1년에 한 번, "내일부턴 술 안 먹을 거야" "내일부턴 담배 안 피울 거야"라고 당신 입으로 내뱉으면 그 중독성 있는 술담배임에도 곧바로 실행에 들어가셨다.


그렇게 몇 개월이기도 했고, 몇 년이기도 했고 금주 금연을 실천하시다가도 당신 생각에 기한이 되면 다시 폭음과 줄담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금연금주 한 게 아깝지 않으냐 아무리 타박해도 소용없었다.


그런 아빠는 오빠가 결혼하면서 친손자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14년간 금주, 금연 중이시다. 명절이나 생신 등 가족들이 모여 왁자지껄한 날에 당연스레 술잔이 오고 가는 와중에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으시다. 유혹? 거들떠 보지도 않으신다.




지금의 금주, 금연은 사실상 강제사항이다. 아빠의 폐는 3분의 1밖에 남지 않으셨고, 음주는 뇌에 치명적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주흡연을 하는 사람은 하겠지만 아빠의 금주금연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 다행이고 감사하다.


옅은 치매로 인해, 허리디스크 수술 후 농사일도 그만두시면서 몇 년 전 그 차를 폐차하셨다. 그때 친정에 왔던 큰언니가 영상통화로 보내는 차를 비춰주며 아빠와 통화할 수 있게 해 줬다.


아빠의 첫 새 차이자 내가 사드렸던 차. 가는 길 인사중이시다


아빠는 차를 사줘서 고마웠고 서운하지만 이제는 보낸다고 하셨다. 17년 남짓 운전하셨던 하얀 1톤 트럭이 흙길, 좁은 대문에도 한번 지저분하거나 긁힌 모습인 적이 없을 정도로 애지중지하셨다. 그날 막상 나는 별 감정이 없는데 아빠는 눈물을 훔치셨다.


이제 아빠의 음주운전을 걱정할 일은 없으니 저렇게 각서를 쓸 날도 없으실 테다. 그러나 하나하나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가시는 모습, 한껏 풀 죽은 아빠의 뒷모습이 어쩐지 반갑지는 않다. 젊으시면 지금처럼 온유하시지도 않을 텐데 젊고 건강한, 그러면서도 지금처럼 온유하신 모습까지 바라니 나는 욕심만 품고 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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