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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teapot Jul 08. 2019

10. 아이는 늘 까치발을 든다

낯설게 보기 3: 아이의 눈높이

아이는 늘 까치발을 든다.

그 작은 발이 세로로 섰다고 해서 얼마만큼의 세상이 새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까치발로 서서 견과류며 과자, 사탕, 초콜릿 등 까까를 넣어두는 선반 안을, 아이유를 보던 유희열의 눈을 하고 쳐다본다.                           

이런 눈 ⓒ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나는 키가 작은 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평생 클 키가 다 커버렸다.

또래에 비해 유난히 컸던 나를 보고 아빠가 조금 걱정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효심 깊은 나의 관절들은 성장판을 닫아버렸다.

성인이 되어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을 때, 어렸을 때는 한참 올려다봤는데 지금은 내려다봐야 한다며 친구들은 많이 웃었다.


그래도 아직 내 아이들에게 나는 한참 올려다봐야 할 커다란 사람이다.

크지 않은 엄마지만 아이들은 내게 안기는 것도, 업히는 것도, 내 어깨 위에 앉아 목마를 타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안 그래도 작은 키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엄마 품에 안기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은 친밀감, 포근함이나 안정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눈높이가 확 올라가면서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소에 보기 어렵던 것들이 일순간에 확 보이는 그 기쁨.

키 작은 엄마는 그 마음을 잘 안다. 부엌 선반의 가장 낮은 층만 지배할 수 있는 저층 마스터인 나는, 작은 디딤판 하나만 딛고 올라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선반의 중간층들을 볼 때 그 별 것 아닌 눈높이 차이에서 큰 희열을 느낀다.

요리하다 가끔 김자인이 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쟤 키에서 이게 보이려나?

많은 엄마 아빠들이 무슨 이유로든 한 번쯤은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꺾어 시선을 낮춰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주로 부엌 작업대 뒤쪽에 당장은 숨기고 싶은 케이크를 올려놓아야 할 경우,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선을 낮춰본다.


한 번은 그렇게 시선을 낮춰 보다가 깨달았다.

아, 그래서 요리할 때 위험하다고 옆에 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요 녀석들이 자꾸 의자를 놓고 와보는구나.

아, 그래서 자꾸 까치발로 서서 컵을 내리다가 다 쏟는구나.

스토브 탑 위에 놓인 냄비며 조리대 위에 놓인 컵들은, 밑에서 바라보니 저기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정말 너무 궁금하게 보였다.

나는 이미 저 안에 뭐가 들었는지 다 알고 있는데. 다 내가 넣은 것들인데.

그런데도 새삼 다시 들여다보고 싶게 생긴 이상한 나라의 냄비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같은 세상 속 다른 풍경


첫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 아이와 함께 낮은 걸음으로 동네를 산책해 본 적이 있다. 그저 쪼그려 앉았을 뿐인데, 갑자기 팀 버튼의 영화 속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나를 둘러싼 풍경이 신기하게 변했다.

야트막한 덤불이 가로수가 되고, 길바닥에 떨어진 무용하게 반짝이는 것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경험. 과연 발 밑을 지나가는 개미는 너무 선명하게 잘 보여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집까지 저 먹이를 잘 물고 가는지, 나도 당장에 너무나 궁금해지는 것.


저 돌은 색이 참 예쁘네. 보석 같다.

저 젤리곰은 누가 흘리고 갔을까. 되게 깨끗해 보이는데. 나 어른인데도 줍고 싶다. (줍는 건 안 말려. 먹지만 마.)

수십 번도 넘게 산책했던 길인데 굉장히 다른 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가 10미터를 가는데 왜 5분이 걸리는지, 왜 이 작은 인간은 시속 1.2km의 속도로 움직이는지 너무나 즐겁게 이해할 수 있었다. 개미 왕국 버전의 찰리 채플린 영화도 봐야 하고, 슈퍼마리오가 된 느낌으로 길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클리어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흐물흐물 해파리 같은 근육이 받쳐주지 못해 쪼그려 걷기를 오래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그냥 잠시 쪼그려 앉아서 세상을 보아도 좋았다.

기껏해야 내 허리춤에나 닿을 회양목이 제법 그럴듯한 한 그루의 나무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아이와 눈을 맞추고 바라보는 세상은 경이로웠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다른 것 같은 세상.


물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갈 길이 바빠 죽겠는데 개미왕국의 교통체증이나 무당벌레들의 치정극 따위.

하지만 무릎 한 번 굽힐 여유가 있다면 색다른 세상을 맛볼 수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바쁜 등원 길, 내 마음도 몰라주고 초속 1cm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손톱만큼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


장강명의 연작소설 <뤼미에르 피플>의 <803호 명견 패스>에는 키가 138.2센티인 왜소증 여주인공이 나온다. 그녀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지만, 그녀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세상과 다르다. 그녀는 사람들의 허리와 궁둥이들로 이루어진 세계 속을 걸어 다닌다. 큰 아이가 이제 100센티를 갓 넘겼으니, 내 아이들의 세계는 그보다 더 아래에 있다. 내 아이들도 분명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이들이 매일 보고 느끼는 세상은 나의 세상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어렸을 때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 본 적이 있다.

 굉장히 그리워하던 곳이었는데. ⓒ a little teapot

전학을 가기 전 학교니까 내가 정말 어렸을 때 다니던 학교인데, 어쩐지 기억과는 사뭇 다른 공간이었다.

정말 크고 넓은 길을 꽤 오래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동네에는 그저 아담하고 좁은 길들만 가득했다.

어린 내게 산처럼 아찔하게 느껴졌던 경사는 그저 약간 비스듬한 비탈길일 뿐이었고, 한강이라도 건너듯 큰 마음을 먹고 건너야 했던 세상 무섭던 건널목은 몇 걸음이면 건너지는 작디작은 도로였다.   

작은 산 같은 걸 넘어 다녔다고 생각했던 피아노 학원 가는 길도, 아마 그저 작은 언덕이 있을 뿐이었겠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면서 생각한다.

이 아이들에게도 지금 이 샛길이 왕복 4차선 도로처럼 느껴질까.

어린 시절의 나처럼, 지금 이 아이들도 작은 이 비탈을 산처럼 느끼고 있을까.


내 엉덩이와 허벅지 아래에서 펼쳐지는 아이들의 세상을 보며 나는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대붕과 메추라기를 떠올린다. 장자는 대붕과 메추라기의 대조를 통해 많은 것을 함축하는데, 그중 내가 아이들의 세계와 관련해서 떠올리는 부분은 바로 메추라기가 살아가는 세계, 지면과 아주 가까운 그 세계다.

(장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철학자인데, 세상에 이렇게 힙한 할아부지가 있을 수가 없다. 여러 이유로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철학을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들려주는 그 방식을 참 좋아한다. 내가 내 머리에 든 철학적 부스러기들을 담아 말랑말랑하게 일상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지만, 장자가 대붕이라면 나는 메추리알이나 되려는지 모르겠다. 메추리알은 맛있기라도 한데.)

성스럽게 빛나는 메추리알. 이런 거 팍팍 만들어 먹게 독일인들은 메추리알을 먹어달라. ⓒ 815 요리사랑 (만개의 레시피)

잠깐 <장자> 속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대붕은 북쪽 바다에 살던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서 된 새인데, 그 등짝만 해도 몇 천 리인지를 알지 못할 정도로 크다고 한다. 이 ‘붕’이(어감이 이상해서 미안하다, 붕아.) 남쪽 바다로 여행하려고 마음을 먹자, 메추라기가 대붕이 나는 것을 비웃으며 한 마디 한다. “저 놈은 어디로 가려고 생각하는가? 나는 뛰어서 위로 날며, 수십 길에 이르기 전에 숲 풀 사이에서 날개를 자유로이 퍼덕거린다. 그것이 우리가 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인데, 그는 어디로 가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날 수 있는 가장 높은 높이.'

메추라기는 보다시피 숲 속 풀 사이에서, 뛰어서 위로 날 수 있는 그들만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삐약삐약 귀여운 내 아이들은 메추라기다.

아이들에게는 까치발을 들고 간식 선반을 들여다보는 것, 낑낑대며 의자를 가져와 그 위에 올라서서 냄비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들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높이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엄마는, 그보다 더 올려다봐야 하는 아빠는, 아이들의 눈에 아마 대붕처럼 큰 사람일 것이다.

정말 이렇게 생각할 지도 :-) ⓒ 그림왕 약치기

메추라기들은 하늘에 있는 대붕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대붕은 메추라기를 이해할 수 있다.

하늘 높이 날고 있는 대붕은 땅을 내려다보며 메추라기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가능성과 한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붕은 바다에 살던 물고기 출신이다. 한 때는 메추라기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던 존재다. 그러므로 낮은 곳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키가 이삼십 센티미터 남짓 더 커버렸다고 예전 초등학교가 낯설게 느껴지는 어른들에게는 메추라기 시절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듯하겠지만, 사실 그때의 마음, 그때 바라보던 세상, 그때 가졌던 작은 열망들은 모두 자신 안에 있다.

붕은 애초에 곤이었고, 세상 그 어느 어른도 날 때부터 어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어린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때의 시선을 기억할 수 있다면, 삶의 많은 순간순간 우리는 굳어진 얼굴을 풀고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메추라기들의 세상에서 느리게 걷기


내가 혼자 5분이면 얼추 도착하는 거리를 아이들과 함께 가노라면 30분이 넘게 걸린다. 큰 놈은 집집마다 붙은 번지수를 확인하느라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기 일쑤고, 작은 놈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사과를 비탈진 경사에 가지고 올라가서 데굴데굴 굴려야 한다. (물론 깔끔하게 딱 한 번만 굴리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다.) 어린이집과 이웃한 성당에, 울타리처럼 둘러진 작은 덤불에는 봄이면 유난히 무당벌레들이 많다. 시간 맞춰 오븐에 빵 반죽을 넣고 나온 날, 큰 녀석이 무당벌레 개수를 세기 시작이라도 하는 날에는 뒷목을 잡아야 한다.

문제의 무당벌레 군락지. 아, 그가 앉아버렸다. ⓒ  a little teapot (지금 보니 신발도 반대로 신으셨...)


하지만 시계보다는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기로 했다.  

사실, 볼 것이 많고 즐길 것이 많은 길이지만 내가 아이들처럼 즐기지 못할 따름이다.

봄이면 민들레 홀씨를 후후 불다 풀꽃을 따서 작은 손에 그러쥐고 돌아오고, 여름이면 철망 너머로 송아지가 풀 먹는 모습을 한참 구경할 수 있는 길, 가을이면 굴러다니는 사과 중에서 예쁜 것을 골라 주머니에 넣고 키 큰 옥수수가 늘어선 밭고랑 사이를 질주해 돌아오고, 겨울이면 여기저기 얼어붙은 얼음을 발로 깨느라 즐거운 길.

아이들에게서 느리게 걷기를 배운다고 생각하면 나도 행복하다.

느리게 걷기의 달인들이 곁에 산다는 것은, 속도감에 지친 어른들에게 큰 행운인 것이다.

저희는 독일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 a little teapot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대붕처럼 보이겠지만, 아가들은 곧 나보다 더 큰 대붕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볼 것이다.

가끔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대붕처럼 아이들의 가능성과 한계를 내려다보면서, 때로는 같이 메추라기가 되어 풀숲에서 뛰놀면서, 그렇게 지내다 보면 훌쩍 자란 대붕들이 엄마의 삶을 내려다보며 미소 지을 날이 오겠지.


알고 있다. 말처럼 쉽지는 않을 거라는 거.

대붕은커녕 회중시계를 보며 “바쁘다 바빠”를 연발하는 이상한 나라의 흰 토끼가 되는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르고, 가끔은 짜증이 대폭발 하는 어둠의 드래곤으로 변신해서 아이들에게 불을 뿜기도 할 거라는 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엄마 역시 시대의 바람을 타고 큰 날개로 날며 아래를 바라보는 여러 대붕들 밑에서 파닥거리며 살고 있는 한 마리 메추라기라는 것을 잘 안다.


아이들을 데리러 나갈 시간. 오늘은 갑자기 비가 온다.

우리 메추라기들이 빗속에서 파닥거리고 싶어 하려나. 우산과 장화를 챙겨 나가야겠다.



결과는 보시다시피 파닥파닥 ⓒ a little tea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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