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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녹 Mar 16. 2024

모든 거절과 실망이 당신을 여기로 이끌었어.

오프닝 크레디트

My dear Evelyn,
I know you.
With every passing moment, you fear that you might have missed your chance to make something of your life.
Well, I'm here to tell you every rejection, every disappointment has led you here.
To this moment.
Don't let anything distract you from it.



내가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묻곤 한다.


“인생 영화가 뭐야?”


인생 영화.

나는 주저 없이 답한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이 글의 포문을 연 문장, 지금껏 들은 말 중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저 문장은 나의 인생 영화에 나온 대사이다.

이 짧은 문장에 내 인생의 everything(모든 것)이 담겨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늘 뭔가를 이룰 기회를 놓쳤을까 전전긍긍하지. 


나는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있을까, 해야 할 일을 다 해내지 못했을까, 남들보다 뒤처져 있지는 않을까. 나에겐 항상 해야 하는 일들이 우선이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 남들도 다 하는 일, 어쩌면 남들이 하길 원하는 그런 일. 거기다가 나는 항상 무엇이든지 잘하고 싶어 했다. 성취욕이 강한 건 둘째치고 완벽주의를 추구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나는 항상 우등생이었고, 반장을 도맡아 하며 타학교에서도 나를 아는 그런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나 자신에게 엄청난 실망을 하게 된다. 점심을 먹고 2시에 시작되는 교양 수업에서 잠을 이기지 못해 끊임없이 졸았던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언제 잠이 들었나 싶게 숙면을 취하다 기가 막히게도 끝나기 5분 전에 눈을 뜨곤 했다. 수업시간에 한 번도 졸아본 적 없는 나는 웃기게도 엄청난 자괴감에 빠진다. 대학교에 와보니 나 같은 사람이 도처에 널렸고, 나는 그다지 특별하지도 잘나지도 않은, 그저 소심하고 내향적인 학생 중 하나, 그뿐이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끝없는 자기혐오에 빠져 한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나름 고민해서 선택한 전공은 나와 잘 맞지 않았고, 과학생회 활동을 하며 어떻게든 이 생활에 적응해 보려 노력했지만 계속해서 물 위에 떠다니는 기름방울처럼 겉도는 기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도 제외당한 채 3학년이 되었고, 나는 3학년 1학기에 이틀 수업을 나가고 중도 휴학을 해버린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었고, 모든 것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머리가 쪼이듯 아파왔다.


하루아침에 대학이라는 망망대해에 빠져 뺨을 쳐대는 파도에 정신을 못 차리는 새내기 때는 동기를 따라 관심도 없는 한자 교양 수업을 들어 학점을 죽 쑤는 멍청한 짓을 하기도 했지만, 2학년이 되자 교양 수업 정도는 내가 듣고 싶은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상태가 되었다. 겨우 물 위로 입을 뻐끔거릴 수 있었을 때 나는 영화 교양 수업을 듣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수업은 내 인생에 분수령으로 작용하였고, 헤매는 나를 영화라는 섬으로 이끄는 뗏목이 되어주었다. 원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디 가서 영화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나는 그 수업을 최고 학점으로 수료하고, 여름방학 내내 학점이 펑크 난 미적분학을 재수강하며 하루에 2-3편씩 영화를 보았다.


다이빙대 끝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땀만 삐질 거리고 있는 나를 갑자기 밀어버려 영화 속으로 풍덩 빠져버렸다. 당혹스럽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인생의 졸음이 확 깨는 따끔한 충고였다. 흠뻑 젖어버린 나는 1년 내내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열정으로 관련 책과 강의를 찾아보며 자투리 시간들을 알차게 쏟아부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대단한 스펙을 쌓고, 좋은 학점을 받고, 알고 보면 그다지 대단치도 않은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집념을 버리지 못해 한 학기 동안 카페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3개, 19학점을 수강하며 영화도 봤다. 카페 마감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었고, 집을 찍고 나가는 수준으로 잠만 자고 아침 일찍 학교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음 한 구석부터 욕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생긴 멍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3학년 1학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포기해 버렸고, 시커메진 내 마음을 도저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가을 햇볕 아래 1시간씩 달리며 시커먼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독립영화 워크숍을 마주한 것이다. 나는 달리는 것을 잠시 멈췄고, 겨울 내내 영화를 배웠다. 오직 그것에만 몰두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했고, 원 없이 했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스펙이 되리라는 고리타분한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내가 영화를 하고 싶었고, 앞으로 내가 영화를 정말 하고 싶을지, 그래서 해낼 수 있을지 그것만이 나에게 중요했다.




모든 거절과 실망이 당신을 여기로 이끌었어.


이제 와 되돌아보며 영화를 배우던 그 시절이 가장 나다운 순간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한다 말하며,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그 시간들이 지금 와 보니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른 이에게 선뜻 보여주기는 쑥스럽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들이,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산물들이 부끄럽지는 않다. 뜻대로 되지 않았고,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뜻이 있었고 마음이 있었기에, 그것들을 따라 최선을 다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직장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나는 예전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역시 맞는 말이다. 나는 변함없이 전전긍긍하고, 실망하고, 거절당하며, 원하는 많은 것들을 거절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그 모든 거절과 실망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음을. 결국 지금 여기, 나에게는 영화가 함께 있음을 나는 안다.


지금 나는 영화계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 정말 생각도 해보지 않은 산업에서, 상상도 못 한 일을 하며, 영화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업계 한복판에 서있다. 하지만 어떤 회사의 직장인인 내가 아닌, 그저 나는 계속해서 영화를 읽고 쓰고 싶다. 여전히 보고 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기에. 영화를 제한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기에.


영화는 나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그 누구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리라 느끼며, 스스로조차 온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해 공전하고 있을 때, 영화는 나를 끌어당긴다.


영화라는 땅에 발붙이고 있노라면

'그래, 그럴 수 있어. 나도 알고 있어.'

라고 말하며 어느새 나의 손을 부드럽고 단단하게 잡고 있다.










표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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