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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Jul 02. 2021

방송작가로서 쓴 첫 야외 촬영 대본

개그우먼 권진영 님, 개그맨 김태현 님! 안녕하신가요?

방송작가로서 쓴 첫 야외 촬영 대본










책장 나들이





엊그제 남편이 튼튼이랑 놀아줄 때 나는 서재에서 책 정리를 좀 하고 있었어요. 작년 7월에 이사 올 때만 해도 책장 맨 아래 한 칸 정도는 텅 빈 상태였는데, 어느새 새로운 책으로 채워진 건 물론, 다른 칸까지 겹겹이 쌓였지요. '와, 역시 작가님 책장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면 미안합니다. 옛 버릇이 어디 가나요. 내가 직접 읽으려고 구매한 것도 있지만, 반 이상은 그저 나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책장 관람용입니다. 뭐, 그래도 언젠가는 읽기는 읽어요. 후후.


책장 맨 위부터 아직 제대로 읽지도 않은 중국어 원서와 영어 원서가 자릴 차지하고 있고, 두 번째 칸에는 종교 서적과 자기계발서가 있습니다. 세 번째 칸에는 글쓰기 책과 에세이가 즐비하고, 네 번째 칸에는 소설책과 역시나 자기계발서가 자릴 지키고 있어요. (누가 자기계발 중독자 아니랄까 봐) 한 칸을 더 내려가면 2005년 중국 하얼빈에서 어학연수했을 때에 본 교과서와, 강남으로 출퇴근할 때 정철 어학원에서 새벽 6시 15분 수업을 들었던 때에 보던 책과 각종 영어, 중국어 사전이 있습니다. 맨 아래에는 여기저기에서 얻은 노트와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중국어 교과서(아니, 나도 궁금해요, 이걸 왜 샀는지)가 자릴 차지했습니다.











23살의 첫 야외 촬영 대본






이때! 노트 사이에 꽂힌 노란색 파일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이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고 있었어요. 3~4년 만에 다시 꺼내 든 거죠. 대학 시절, 방송국 동아리에서 쓴 '라디오 방송 대본'과 방송 프로그램 대본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10년 동안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던 '방송작가'의 꿈. 감사하게도 나는 졸업 직후 m.net의 한 개그 프로그램 막내 작가로 들어갔어요. 방송작가가 되기 전부터 주야장천 들었던 말이, 막내 작가는 복사하기, 섭외하기 등 그야말로 잡일을 한대요.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는 첫 일터인 그곳에서 대본을 썼지요. 막내 시절부터 대본을 썼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요?


사실 써 대본을 놓은 걸 보면 이것보다 쉬운 게 없어요. 뭐든 그렇지 않나요? 노래 가사도 "이런 걸 가사라고 쓰냐, 난 이것보다 더 잘하겠다!" 혹은 "이런 게 글이라면 난 진즉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겠지."라는 생각처럼요. 그런데 막상 노랫말에 가사를 입히는 일,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누구나 읽기 쉬운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외에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모든 일은 그러하리라 생각해요. 그림도 마찬가지고요. 방송 대본도 어찌 보면 '말하는 대로' 쓰면 될지 몰라도, 그게 또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MC나 패널들 각자의 성향이나 캐릭터에 맞게 쓰는 것은 물론, 너무 썰렁하거나(의도한 거라면 상관없지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으면 곤란하니까요.





다행히 2005년 당시에 내게 주어진 대사는 아주 아주 어려운 건 아니었으나, 문제는 '야외 촬영'이었습니다. 대본부터 장소 섭외, 사람 섭외, 스텝을 포함한 모든 일정 조율 등을 맡아야 했거든요. 아,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힐 것만 같은)



실제 녹화할 때 방송인들이 손에 들고 있는 대본 카드 즉, '큐카드'는 아쉽게 없지만, 십수 년이 지나고 다시 보니 내 어린 날의 꿈과 고생이 머릿속을 헤엄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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