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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Oct 06. 2021

입만 열면 깨는 여자가 도서관 글쓰기 강사가 됐을 때

도서관 글쓰기 수강생 S 님의 말 "이런 수업인 줄 전혀 몰랐어요."

입만 열면 깨는 여자가 도서관 글쓰기 강사가 됐을 때










무대 전 공포증인가?




무대 공포증(舞臺恐怖症, stage fright, performance anxiety)은 관객 앞에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의해 개인에게서 우러나올 수 있는 불안, 공포 또는 지속적인 공포 장애이며 급성일 수도 잠재성(예: 사진기 앞에서 공연할 때)일 수도 있다. 큰 무대에서뿐만 아닌 발표하는 상황이나 여러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주목받아도 증세를 보일 수 있다. _ 출처 : 네이버 위키백과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시작은 언제나 내 심장을 괴롭힌다. 9월 29일 아침 8시 반, 오전 10시에 있을 도서관 글쓰기 수업으로 긴장한 탓에 아침 식사로 준비한 모카 롤 케이크가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병원에서 진단받은 적은 없지만, 난 아마도 '무대 전(前) 공포증'을 앓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업이 긴장된다고 빵이며 과일이며 제대로 먹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그럼에도 수업 직전이 되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고 한 이순신 장군님의 뒤를 이어 이렇게 외친다. "나의 떨림을 수강생분들께 알리지 말라!" (프로답지 않은 모습은 시져 시져~)







발랄한 지니 님




10시 땡! 무대 공포증의 'ㅁ'도 찾아볼 수 없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던 '이지니의 긍정 에너지'가 발산되는 순간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히히 흐흐)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부담스러운 미소와 활기찬 목소리에, 화면 속 13명의 수강생분들이 놀란다. 예상한 결과다. 대부분 글쓰기(가 아니어도) 수업을 진행하는 분들의 태도는 단아함이 기본이며, 목소리의 높낮이가 크게 구별되지 않는 평온함을 유지하기에 그렇다. 아마 나처럼 "제 목소리가 걸걸하지요?", "보시는 것처럼 저는 리액션이 좋습니다. 과거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맨 앞자리에 앉아 호응을 참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지요. 하하."라며 누구 하나 묻지도 않은 말에 오지랖 세우는 강사는 많지 않으리라. 이건 뭐,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들장미 소녀 캔디'와 맞먹을 정도의 발랄함이다.







입만 열면 깨는 여자




결혼 전, 밥 먹듯 소개팅하던 시절을 잠시 꺼낸다.


"지니야, 넌 소개팅에서 말 많이 하지 말고, 그냥 미소만 지어"

"왜?"

"넌 입만 열면 ㄲ ㅐ니까... ㅋㅋ"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호감도 아닌지라, 입만 열지 않으면 기본은 한다며 친구의 소개팅 성사를 위해 해주는 조언이란다. 내숭과 나는 지구 반대편만큼 거리가 멀기에, 상대방 남자의 발언에 현란한 맞장구는 기본, 오지랖 넓은 발언을 할 게 뻔하다는 거다. 그렇게 해서 점수를 깎이지 말란 뜻이다. 하지만 난 지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연극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야. 조신한 척해서 그들이 좋아한들, 얼마 가지 못해 내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날 떠나겠지."라며 가수 유희열 님의 멋들어진 말을 빌리곤 했다.








나를 나답게!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지 어느덧 2년 차, 유희열 님의 명언을 잊은 채 여느 강사님들처럼 차분하게 진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또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하여, 실제로 수업할 때 말도 좀 더 천천히 하고, 웃을 때도 "하하"가 아닌,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린 채 "호호"라고 하며 나를 숨겼다.


하지만 '거짓된 내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던 걸까? 그토록 바라던 모습을 10분도 지속할 수 없었다. 신이 날 이렇게 빚었고, 부모님이 날 이렇게 낳고 기르셨으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나를 깨웠다. 누가 봐도 단점이고, 나쁜 습관이면 바뀌려고 노력해야 마땅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무엇보다 지금껏 수업을 진행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분이 많다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되리라!








이런 수업인 줄 몰랐어요...




결정적인 이유는 9월 29일 10시에 진행한 수업에서다. 첫 수업마다 나는 수강생분들께 "이 수업을 신청하신 이유가 뭔가요?"라고 묻는데, S 님이 "일단, 저는 이런 수업인 줄 전혀 몰랐어요."라며 첫마디를 건네시는 게 아닌가! 무대 전 공포증으로 어렵게 진정된 심장이 또다시 나대기 시작했다.


'이런, 내 수업이 마음에 안 드셨구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틀.렸.다.



"대부분 글쓰기 수업이라고 하면 진행하시는 분이 차분하시고, 그래서 수업 분위기도 뭔가 조용한데, 이 수업은 강사님부터 밝은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시고, 강의 내용 하나하나 동기가 너무 부여돼서 앞으로 남은 수업도 기대가 큽니다!"






세.상.에

엄마... 나 울어도 돼?

(기쁨의 눈물은 이럴 때 흘리는 거라고 배웠어요)





S 님의 말을 들으니, <5년 차 무명작가 이지니, 하늘을 날다>라는 제목으로 저예산 영화를 찍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어디를 가든 매 수업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이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신 이유가 뭔가요? 수업 내용만 잘 듣기 위해서가 아닌, 수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꾸준히 글을 쓰고 싶으셔서 신청하셨을 겁니다. 제가 단 4주 동안 여러분의 글쓰기 실력을 높여드린다는 말은 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드리는 것만큼은 자신 있게 도울게요!"



이 말을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S 님이 어찌 아시고 귀한 말씀을 먼저 하시다니, 감사했다. 진지하지만 유쾌한 수업을, 시들은 글쓰기에 불을 지피는 수업을, 그래서 수강생분들이 목표가 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지. 더 깊은 사명감으로 수업에 임해야지.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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