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니 산문집 <삶을 돌아보는 산문집>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음 편히 커피 한잔 마실 수 없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꿈에 집중하던 때, 주머니 사정마저 희미해져 차 한 잔이 사치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만나서 차 한잔하자."라는 말이, 서른 중반을 훌쩍 넘은 내게 "결혼은 언제 하니?"라는 말보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뭐 이게 자랑이라고 내 사연을 구구절절 나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저 "바쁜 일 좀 끝나면 보자!"라며 애써 처량함을 감추었다.
나의 이 거짓말은 ‘20대의 가난은 당연하지만, 30대의 가난은 초라하다’라고 여겼기 때문일 터다. 누가 그랬던가.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가난이라고. 이것은 숨기려 할수록 더 드러난다고. 눈치로 이미 내 사정을 아는 벗이 말없이 커피 교환권을 보냈다. 글을 쓸 때 영감을 얻으라며 책을 사준 벗도 있다. 그리고, 평생 내 길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반쪽이 있다. 이들의 사랑으로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곁을 지키고 도와준 이는 절대로 잊지 말라고 하더라. 그래, 죽어도 그들의 사랑을 못 잊는다. 넉넉하진 않지만, 이따금 은혜를 갚고 있다. 무엇보다, 평생 축복을 빌어줄 거다. 달빛마저 차가운 이 밤, 따스한 기억으로 온몸이 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