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만 통화한 그녀를 처음 본 날이었다. 큰 키에 상큼한 골프웨어 차림의 쇼트커트 머리. 시원하게 드러난 귀에 3~4개의 피어싱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짐이 빠진 2층 빌라 빈집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우리 집, 낯설다.
‘생각보다, 꽤 넓네. 다행히 크게 파손된 곳도 없고.’‘좀 낡긴 낡았네. 도배랑 장판은 새로 해줘야 월세가 빠지겠는 걸.’
“여기, 베란다 바깥 창문이 좀 깨져 있는데요.”
“아, 그거요. 저희 이사 올 때부터 원래 깨져 있던 거였어요.”
“제가 이 집 살 때 집을 보질 못해서, 처음부터 그랬는지 알 수가 없네요. 그전에 찍어 두신 사진은 없으신가요?”
“어떻게 집을 안 보고 사셨어요?”
그랬다. 2년 전 이 집을 살 때 내부를 보지 않고 계약을 했었다. 빌라 앞 도로변에서 창문을 올려다보며, 집 위치만 확인한 것이 전부였다. 졸지에 집도 안 보고 계약하는 투기꾼이 된 기분이 들었다.
부동산을 살 때 집의 내부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먼저 집에 큰 하자가 없는지 방 구조나 실제 크기는 어떤지 확인을 한다. 앞이나 옆 동에 의한 가리지는 않는지 베란다의 결로 상태 등 세세하게 보아야 할 것들이 많다. 특히나 매매 확률이 높은 물건일수록 꼼꼼히 확인하여 다만 얼마라도 매매가를 낮출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낸다면 더욱 좋다.
집안 내부 확인 시 체크 사항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집안 내부를 보지 않고 어떻게 부동산을 샀을까? 가급적 내부를 확인하고 집을 사야 하지만, 나처럼 집을 보지 않고 사는 경우가 생긴다. 어떠한 경우가 그러한지, 집을 안 보고 사도 괜찮은지, 주의할 사항은 무엇인지 나의 경험 이야기를 해보겠다.
재개발 지역 오래된 빌라, 다가구
“사장님, 집 내부도 보고 싶은데요.”
“얼마 있으면 헐릴 물건인데, 뭐 하러 집을 보세요.”
“그래도, 집에 큰 하자가 있으면 이주 전에 혹시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작년에 베란다 누수되는 거 공사 다 했다고 해요. 그리고 세입자가 이주 전까지 계속 산다는 조건이니까, 집 볼 필요 없어요.”
집 안을 볼 필요 없다는 사장님의 기운에 내가 그만 밀려 버렸다. 임차인이 이주 때까지 산다고 하니 계속 보여 달라 말하면 괜히 떼를 부리는 것 같아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집안을 보지 않고 매수한 물건이 생기게 되었다. 당시 사업 시행 인가되었고 감정 평가를 기다리는 재개발 지역 빌라였다. ‘하긴, 곧 헐릴 물건이고 세입자도 계속 산다니 집안을 볼 필요 있나. 별 일 없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 안심의 주문을 내리고 1년 반이 지날 무렵, 쇼트커트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 OO빌라 세입자인데요. 제가 이사를 나가야 해서 전화했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이주하실 때까지 계속 살기로 하시지 않았나요?”
“네? 제가요? 전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는데요. 집 만기일도 6개월 지났어요.”
부랴부랴 핸드폰에 저장해 둔 계약서를 열어 보았다. 아뿔싸. 그랬다. 만기일이 6개월이 지난 상태였다. 분명 세입자가 이주할 때까지 살기로 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관리처분 신청 중이라 이주하려면 일 년은 넘게 남았는데 말이다. 계약서를 다시 보며 임차인이 이주 시까지 거주한다는 문장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아, 없네. 이상하다. 분명히 이주할 때까지 산다고 부동산 사장님이 그랬었는데.’ 돌이켜보니 이주 때까지 거주한다는 부동산중개업소 사장님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 기존 전세계약서는 그런 문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의 실수다.
이렇게 되면 내가 주장하는 권리는 내 기억 속의 허상일 뿐. 전세계약은 ‘묵시적 갱신’이 되었고 임대차 보호법에 의하여 임차인은 언제든 원할 때 집을 나갈 수가 있다. 부동산 중개 사장님께 전화해서 따질까 생각도 했지만,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옛 기억을 소환하며 잘잘못을 따져 봤자, 정신적 소모만 있을 뿐 돌이킬 수 없기에 시간 낭비하기 싫었다.
재개발 지역 빌라, 다가구 주택은 대지지분도 작고 오래되어서 많이 낡았다. 이런 물건을 살 때, 관리처분 인가 전이라면 반드시 집안 내부를 살펴봐야 한다. 나의 경우 매수 당시 사업시행 인가가 되어 이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2년이 지나도 관리처분이 안되었으니 재개발은 속도를 예상하기 어렵다. 집안을 보지 않고 샀다가 내부가 썩은 물건이라면 정말 골치 아프다. 재개발 지역 물건을 임장 할 때, 집안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특히 많다. 중개사 입장에서 힘들게 임차인과 연락해서 집안을 보여줬는데 사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귀찮을 것이라 이해는 된다. 하지만 중개 보수료를 받는 이유가 이런 부분이 다 포함된 것이라 생각하다.
만약 정말 마음에 드는 가격이라 꼭 사고 싶은데 집안 내부를 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집의 실제 위치를 확인하여 밖에서 외관 상태, 일조권 등을 확인한다.
2)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거주하는 임차인과 전화통화(스피커폰)하여 집안의 하자나 거주 시 불편사항은 없는지 확인한다.
3) 임차인이 이주 전까지 살기로 했다면 계약서에 적혀 있는지 확인한다. 적혀있지 않다면 매매계약서 작성 시 임대차계약서도 신규 작성하는 것으로 협의한다.
나는 집안을 보지 않고 계약하긴 했지만 1), 2) 번을 확인하였기에 안심하고 계약을 했었다. 다만 이주 시점까지 거주한다는 것을 문서에 남겨 놓지 못하고 묵시적 갱신을 하는 실수를 하였다. 다행히 도배, 장판을 새로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을 하였다. 수리 비용이 나가지만 빈 집으로 일 년을 그냥 두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하여 결정하였다. 그나마 빌라가 2층이고 집 내부도 넓고 하자가 없었기에 가능하였다.
재개발 오래된 빌라, 도배 장판 전, 후
경매나 공매 물건
내 집이 경매로 넘어갈 판인데 집을 호락호락 잘 보여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경매나 공매로 나온 집안 내부를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해당 경매 물건이 아파트라면 동일한 면적의 다른 집 구조를 보면 될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전세를 구하는 척하며 같은 동에서 비슷한 층수의 집을 보면 좋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하여 해당 호수 관리비 문의를 하며 혹시 위 아랫집에 누수 등의 이력은 없었는지 물어볼 수도 있다.
구조가 동일한 아파트와 달리 빌라, 다가구 주택은 내부 구조와 상태가 천차만별이다. 그나마 세대수가 있는 빌라인 경우는 운 좋게 매물로 나온 물건을 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경매로 나온 집을 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집주인이라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임차인은 낙찰 차가 낸 금액으로 본인의 보증금을 받고 나가야 할 사람들이다. 보증금을 받으려면 낙찰자의 동의 서류가 필요하기 때문에 집주인이 거주하는 경우보다는 훨씬 협조적이다. 경매 절차를 잘 모르는 임차인일 경우에는 이러한 상황을 잘 설명해 주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임차인은 의외로 쉽게 문을 열고 집안을 보여 준다.
나는 경매와 공매 입찰 경험이 몇 번 있는데, 대부분 임차인이 거주하는 물건이었다. 처음이 어렵지 용기 내어 초인종을 눌러보면 의외로 많은 경우 집을 보여 주었었다. (남자보다 여자 특히 아줌마여서 편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경매로 관심 있어 보러 왔어요. 혹시 집안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아이고, 어쩌다가 집이 이렇게 되가지고. 천천히 봐요.그 방은 우리 손녀가 쓰는 방이야.”
한 번은 허리가 굽으신 할머니가 집을 열어 주셨다. 세입자의 시어머니였고 며느리는 일을 나가고 집에 없었다. 집 안을 보는 내내 딱한 며느리 이야기에 몸 둘 바를 몰랐었다. 법 없이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오히려 법 앞에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기는 현실이 안타깝다.
전세를 끼고 사는 Gap 투자 물건
전세 임차인이 살고 있어 전세보증금과 매매금액의 차액만을 내 돈으로 투자하는 경우를 Gap 투자라고 한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 있다면 많이 들어봤을 단어이다. 전세를 살고 있는 임차인 입장에서 보면 전세 만기가 아직 남았는데 집주인이 바뀌는 것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현 집주인과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까다로운 세입자라면 집안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맞벌이라 평일은 보여드릴 수 없어요. 주말에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만 가능해요"라는 식으로 집을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그래서 전세를 끼고 나오는 집은 시세 대비 얼마 정도 디스카운트가 들어가게 된다.
매력적인 가격의 Gap 투자 물건이 나왔는데, 세입자가 집을 안 보여주는 경우라면 어떻게할까? 이럴 때 대부분 부동산 중개사 사장님은 다른 호수의 집을 대신 보여주며 매매를 권유한다. 아파트는 내부에 큰 하자가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다른 집을 보고 매수를 결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훗날 임차인 때문에 속을 썩일 확률이 아주 높다. 까다로운 성격의 임차인은 내가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
집을 잘 보여주지 않았던 까칠한 세입자를 끼고 Gap 투자를 하였다면 임대 만기 시점에 맞추어 세입자를 바꾸거나 매도 계획이 있다면 파는 것을 추천한다. 예상치 못한 사정으로 내가 세입자를 두고 집을 팔아야 한다면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집을 보여주지 않아 집이 잘 나가지 않고, 결국 매매가를 낮춰서 팔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는 주택이나 땅 등 움직이지 않는 물건을 상대로 거래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거래이다. 나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요구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불쾌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사람 간의 거래에는 불만과 잡음이 항상 생기기 마련이다. 집안을 보지 않고 하는 투자는 또 하나의 큰 Risk 사항이 된다. 집을 안 보고 투자할 경우가 생긴다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여 소중한 나의 돈과 마음을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