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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Nov 19. 2023

초고를 쓸 때는 글쓰기 조언 따위 잊어라

울리는 문장을 써라 10

초고는 흑백입니다. 편집(다시 쓰기)은 이야기에 색깔을 입힙니다.
- 엠마 힐

글을 잘 쓰기 위해 글쓰기 책을 읽거나 혹은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 

책상 앞에 앉아서 심기일전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감명 깊게 들은 그 조언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또 지금 쓰려는 글에는 어떤 방법이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

레시피를 찾아보고 재료를 사 와서 레시피에 적힌 순서대로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요리 재료처럼 글쓰기의 '소재'까지는 찾은 것 같은데 도통 첫 문장부터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레시피처럼 1번이 뭘까?를 생각하면 '첫 문장이 중요하다'라는 조언이 떠오르지만 내가 생각한 첫 문장은 그다지 매력적인 것 같지 않다. 

첫 문장마저 제대로 못쓰는 내가 과연 이 소재를 가지고 잘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오늘도 포기하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기웃거린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초고를 쓸 때는 글쓰기 조언 따위 잊으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이유는 글쓰기가 가장 즐거울 때는 초고를 쓸 때이기 때문이다. 마치 비극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첫사랑의 소년 같은 심정으로 오로지 지금의 눈앞의 사랑만 보이는 때다. 

글쓰기가 괴로운 것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아니라 엉망인 초고를 고쳐야 하고, 고치는 작업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최소한 초고룰 쓸 때는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젓가락을 막 집어들 때처럼 입에 침이 고이듯 설렘과 몰입의 즐거움을 느낀다.  

초고가 즐겁기 위해서는 남의 조언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한참 연애에 빠져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 안 들리는 것처럼 글쓰기 조언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글쓰기의 가장 즐거운 순간은 초고의 마침표를 찍었을 때이다. 

그 순간 나는 대단한 작품을 쓴 것 같고, 이대로 사람들에게 공개해도 극찬을 받을 갓 같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는 순간 자신감은 급격히 떨어진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맞춤법도 많이 틀렸고 글의 길이는 너무 짧거나 길고 또 그다지 재미도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추어선 안된다. 이제부터 글쓰기의 조언을 하나하나 떠올려야 한다. 글쓰기의 조언은 고쳐쓰기에서 적용시키는 것이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첫 문장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문장은 짧게 써야 한다.'등의 조언을 생각하며 다시 써야 한다.

이 때는 되도록이면 많은 조언을 떠올리며(본인이 알고 있는 전부) 여러 번 수정해야 한다.

나도 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초고의 모습은 사라질 수 있다. 마치 포토샵으로 전혀 다른 얼굴이 된 내 사진을 보는 듯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글이 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집에서는 쌩얼로 있지만 밖에 나가려면 화장을 하고 외출복을 입는다. 

단순히 집 앞의 편의점을 나갈 때의 화장과 옷차람, 또 동네 음식점을 나갈 때, 서울에 갈 때(수도권 거주자로서), 국내 여행을 갈 때, 해외여행을 갈 때....

화장하고 차려입는 시간이 달라진다. 이걸 전문 용어로는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추는 것이라고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대다수에게 보이는 글이라면 더 열심히 공들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집안에서 노메이크업으로 편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편하게 초고를 써라. 

또한 초고의 마침표 기쁨을 최고로 누리려면 그 순간만큼은 남들 조언 따위는 잊고 첫사랑에 빠져들어 열정을 불사르듯 초고를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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